[돌아온 탕아, 김이솝] 3. 개를 부러워한 늑대

문학 / 심규락 / 2020-10-06 13:24:15

[2-1] 동화 전문 BJ 이솝이










“여러분 안녕하… 에이 됐다, 이 나이에 무슨! 아그들 얼른 들어와라. 이솝 할아부지 왔다.”




언뜻 가늠해도 최소 천 살은 넘은 김이솝, 이제는 허공에다가 말을 하는 정신이상을 보이는 것인가.




“요새 트렌드는 유투-부 동시 송출이니까 요것도 켜야 혀, 깜빡하면 녹화 각 다 날아가버리니께… 엣헴, 이 할아비가 오늘도 동화 하나를 가져왔으니 어때, 한 번 들어볼려? 그러니께 어느 산골 마을에 늑대와 개가 마주쳤는데…”




며칠간 굶은 늑대는 윤기가 나는 애완견을 보게 되어 부러움을 느껴 질문을 내건다.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애완견이라 스스로 먹이를 찾지 않아도 주인님이 알아서 식사를 챙겨주고 따뜻한 집에서 머물게 해준다는 개의 말에 늑대는 당장 애완견이 될 수 있으니 집으로 들여보내 줄 수 없냐고 사정을 했다. 개는 승낙을 했고, 주인님의 집으로 그 둘은 같이 걸어갔다.




“그르든 도중에, 늑대가 떡하니 개의 목에 있는 상처를 보고 물었지. 어쩌다가 상처가 생긴 거냐고 말이지. 아효아효 얼마나 아팠을꼬… 아무튼 그러자 개는 주인님이 채운 목줄 때문에 생겼다고 말을 했단다.”




그 말은 들은 늑대가 다시 산으로 발걸음을 돌리며, 애완견에게 말을 했다. 자신은 그냥 산으로 돌아갈 거라고. 비록 춥고 배고프고 찬비를 맞으면서 산다고 해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지금 이대로가 더 좋다고.







“울었다… 마음이 메어지는 구만… 아이고아이고, 이럴 때 100개 선물 실화?! 뭐? 지금 우셔야 한다고? 할아비 완전 오열 각이다 이것들아!!”






[2-2] (전) 동화 / (현) 술방 전문 BJ 이솝이








*사진출처:[아트박스]








“샷따 올려! 다들 뭐 허냐, 내가 술잔을 들었는데 왜 ‘짠’이라는 말이 안 나오냐… 나 살짝 서운하려 그런다.”




총 3천 명의 시청자들의 ‘짠’ 채팅은 만수르의 쇼핑 영수증 출력 속도만큼이나 쏜살같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또 어떤 이들은 안주 값이라는 명분으로 온라인 풍선들을 보태드렸다.




“키야, 위키! 여기 클래식 한 병 더 가온나! 아 매니저 뭐 하냐. 고려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 애 빨리 쳐내라고!”




가락국수와 조기 한 마리를 앞에 두고 연신 소주잔을 두어 번 수직낙하시킨 뒤, BJ 이솝이는 그의 간판 코너 [이솝이: 이렇게 솝솝한 (섭섭한) 이야기가]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다음 한메일을 통해 매주 시청자의 사연을 받아서, 금요일마다 (정말 정말 말 그대로) 인생 선배로서 상담 및 QnA 시간을 갖는 코너였다. 이번 주의 간택 사연은 엄한 집안 분위기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가는 어느 20대 중반으로부터 보내졌다.




“아니 돋보기안경을 쓸 시간을 줘야 댓글을 보잖아! 소통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너네들이 소통이 될만한 말을 쳐봐 좀. 맨날 나 술만 마신다고 놀리지 말고 좀! 뭐? 틀니만 딱딱 거리지 말고 읽기나 하라고?”




버퍼링 운영 그만하고 얼른 사연이나 읽으라는 채팅에 무참히 패배한 BJ 이솝이는 왼손으로 돋보기안경을 한 번 으쓱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하! 이솝이 할배 하이라는 뜻! 할배요, 어차피 이거 읽을 땐 이미 취해있을 텐데 시간 안 끌고 바로 본론부터 말할게요. 지금 다니는 회사 관두고, 하고 싶었던 연기 분야에 뛰어들어도 괜찮을까요?”




“……”




“아니…… 사연을 말해달라고…… 결론만 말하면 유투브 각 안 나온다고…… 이거 시간 길게 뽑아서 2080 치약 PPL도 넣어야 하는데……”




다행히 스크롤 다운을 해보니 사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구색을 갖춘 문장들이 적혀있었다. 사연을 보낸 이 (이하 P)는 어릴 때부터 엄한 집안에서 자라왔다고 했다. 소위 ‘사’짜 직업을 가지신 부모님은 교육적으로, 생활적으로 엄격하게 P를 길러오셨고 직업에 있어서도 코칭과 지도를 멈추지 않으셨단다. 연기자가 되고 싶은 P의 희망과는 달리, 자녀가 금융업에서 일하길 원하신 부모님은 결국 어느 은행의 의자에 앉아있는 P를 만드는데 성공하셨다.




P는 1년 정도는 어떻게든 버텨내었지만, 결국 스트레스와 고민이 속에서 터져버려 몸 져 앓아눕게 되었다. 그러다 결국 연기 분야에 뛰어들고 싶다는 열정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고 느끼고 다음날 은행에 퇴사 의사를 밝힌다. 며칠 더 생각해보라는 권고에 따라 현재 휴식기를 갖고 있는 P는 결국 이렇게 할배한테 사연을 보냈다고 한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2-3] 자유에 대한 갈망이 낳은 환생










*사진출처:[HuffPost]








“연기 분야가 얼마나 힘든데… 이걸 써서 보낸 P야, 너도 이미 잘 알고 있제? 나도 고대 그리스 때부터 연기판에 있었는데, 이거 여간 고달픈 게 아니라니까.”




채팅창엔 ‘(속보) 할배, 터미네이터 코스프레하다가 결국 미쳐버려…’, ‘구글, 드디어 방부제로 인간 만드는 데 성공’, ‘신배, 그는 할 인가?’ 등의 말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도 일반인들은 그가 환생을 거듭하는 신적 존재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듯하다.




“아 이것들아, 조롱 좀 하지 말라고! 그건 그렇고 아무튼 이건 자유에 대한 문제인데, 네가 드디어 이제 자립을 하길 원하는 거 같구나. 나도 그리스 때 노예였지. 자유롭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는 잘 안다 이 말이야. 그러다 자유인이 되고 지금은 신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에게 자유만큼 소중한 건 읎어.”




신입 BJ 이솝이 아닌, 관록의 카운슬러 김이솝은 쇠수저로 가락국수 한 입을 한 뒤 말을 이어나갔다.




“느그들은 절대 못 믿겠지만, 아니 안 믿겠지만 말이다. 난 그렇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기에 오히려 원한을 가질 정도로 속에 사무친 존재가 되었지. 영화 [신과 함께]처럼 현세에 계속 남아있는 운명이 생긴 거지. 원한이 운명을 만든 셈인데, 그래서 난 죽어도 다시 환생을 해서 이 지구에 남아있는 거다.




채팅창엔 ‘안 사요, 안 산다고요’, ‘님 그럼 김유신 장군하고 맞담 해봄?’ 등의 장난기 가득 담긴 회의적 말투들이 서려있었다.




“생각한 대로 말하는 거,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간다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걸 맘대로 한다는 것만큼 소중한 게 있다고 생각하냐. 오죽하면 그게 한으로 맺혀서 자유인 신분이 되고 나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썰 풀면서 살아갔겠냐. 내가 생각한 대로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걸 시기해서 날 죽인 사람들도 있는 거 보면 마음이 아직도 공허할 뿐이다.”




그러고 나서 김이솝은 조기 한 마리를 ‘한입만’ 해버린 뒤, 다시 말을 명주실처럼 이어갔다.




“이 사연을 보낸 애도 그런 자유가 없는 곳에서 나름 오랫동안 살아와서 고민이 많았을게다. 차라리 독립을 하면 어느 정도 고민이 해결될 수도 있지. 이 어르신을 뜻밖의 BJ로 둔갑시킨 심가놈(?)도 어릴 때 가출을 한 케이스니 이다음 문장도 알아서 잘 써주겠지. 지 스스로는 출가라고 부르지만 뭐 그건 석가모니 한 테나 어울리는 단어고.”




뜨금…… 매니저 뭐 하냐, 요새는 공익제보가 업계 포상인 것인가……




“그래서 주변에 무작정 집을 나와서 자립을 꿈꾸는 애들을 많이 본다. 물론 나는 지지하는 입장이다만,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면 정말 힘들 거다. 그만큼 자신에게 긍정적인 깨달음을 얻을 때도 많지. 스스로 부딪히면서 깨닫는 것만큼 참된 교훈도 없으니까. 너네는 내가 아니야. 인생을 한번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고 싶으면 하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 근데 정말 그 말을 해주려면 그 뒤에 한 문장이 더 들어가야 해.”




다음에 올 말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냥 지루해서 스크린 화면을 켜둔 채 자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실시간 수치 상으론 5천 명의 사람들이 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렇게 기다리지만 말고 이솝이 up 한 번만 시켜주자. 이럴 때아니면 내가 너네들한테 뭘 바라는 일도 없잖누.”




사람들의 타의적 관심을 더 받아내는 것에 성공한 김이솝은 술기운이 갑자기 올라와 횡설수설하다가 몇 분 뒤 대충 방송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컴퓨터 바로 맞은편에 있는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근데 실패와 책임도 모두 오롯이 다 네 거다…… 아가야…… 빌어먹을 실존주의.”





그는 알콜 기운이 섞인 날숨과 함께 아주 나지막이 다음 문장을 뱉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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