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와 과정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문화·예술 / 이정준 / 2020-02-29 19:29:35
Focus on now

목적 없는 산책, 목적 없는 책 읽기,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는 그 자체만이 유일한 목적이 되는 그림 그리는 일, 오로지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만나는 사람. 그런 것들로 세상이 반짝인다.




황경신 [밤 열한 시] 中






자주 글에서 말했지만,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다. 그런데 최근에 어머니가 들려 준 말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내가 올해 글/자소서로 얼마를 버는지 안 뒤, 나에 대한 의심 or 불신이 누그러졌다." 요새의 나는 그런 말마저 듣고 싶지 않았다. 수치 혹은 결과로 평가받는 현재의 사회 시스템이 싫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시적 결과를 얻는다는 목적/목표를 언제나 마음 속에 품고 있다. 왜냐하면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속도로 성장한 우리나라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는 '결과 위주'였기 때문이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다면 만사 오케이라는 방식은 산업화 시대에선 굉장히 먹히는 이데올로기였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결과와 과정 사이의 갈등은 12월의 나에게도 유효하다. 과정을 중요시해야 하는 작업인 글쓰기를 주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 결과에 대한 압박감은 족쇄 같았다. 내가 쓰는 글/자기소개서에 대한 결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볼 수 있다. 첫째, 자기소개서를 의뢰한 이가 갖는 만족감이다. 반년에 한두 명 꼴로 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경우가 있다. 그 때엔 참 아프다. 나는 이상하게 아픈 지적을 받아들이지 못해 왔다. 얼마 전 지적도 꽤 아팠다. 그런데 이번 지적은 예전과 다르게 내 마음에 박혀서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문장력이 기대 이하다' 이 구절을 받아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실제로 말하며 글을 쓰는 내 입장에서 문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내 근본적 skill에 대해 재탐구를 요하는 코멘트였다. 사실 이거보다 더 괴로운 결과가 있다.




나의 글/자기소개서로 서류 지원한 친구가 떨어졌다는 결과를 공유해 줄 때의 자괴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내 글이 무조건 대단한데 거기에 스크래치가 나서가 절대 아니다. 난 자기소개서를 쓸 때, 소위 말해 친구에게 빙의를 한다. 친구의 삶의 흔적을 쫓아간다. 한 사람의 삶 안에는 소위 희로애락이 다 들어 있다. 어떤 이들은 내가 하는 게 대필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단언코 대필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터뷰다. 그들과 인터뷰를 해서 그 인터뷰 속 진심을 끌어내고, 그 진심을 실마리 삼아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 간다. 왜냐하면 이렇게 써야 그들이 서류를 혹시라도 통과해 면접엘 가게 된다면 서류에 보여줬던 기조/메시지와 동일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입을 하며 자소서 작업을 하다 보니 그 사람의 기쁨/슬픔이 곧 나의 기쁨/슬픔이 된다. 최종 문턱에서 떨어지는 애들은 차마 얼굴을 못 보겠다. 다 내 책임인 것만 같아서...




이렇게 결과 위주로 평가받는 시장에 던지는 나의 글은 웬만한 고민의 과정이 없이는 제대로 나오기 어렵다. 과정에 엄청나게 공을 들이고서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로 인해 겪는 좌절감이 크다. 그리고 과정에 대해 어떠한 인정도 받지 못하고 합격 아니면 탈락이라는 냉혹한 이분법적 결과를 받아 들어야 하는 아이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일을 하고, 결과와 과정 사이에서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보니 어느 순간 내 마음이 어떤지 들여다 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점점 여유가 사라지니 정체성에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내가 글/자소서 쓰는 것은 누구보다 잘 하고, 게다가 빨리 만들기까지 하니 자신 있었다. 1년여를 풀타임으로 하면서 느끼는 건, 불확실이다. 글쓰는 것을 정식으로 배우지도 않은 사람이 경청하고 얘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소서/글을 내놓고 있다 보니 모든 사람들이 내 결과물에 100% 만족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템플 스테이를 다녀온 것이 조금의 분기점이 되었다. "비움" 모두가 예외 없이 내 글을 좋아할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기대가 실망을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내 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등도 결국 결과의 범주에 들어간다. 결과에 아예 신경 끄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독자/고객들의 생각을 최종 결과로 상정하지 않고 내 생각이 고스란히 잘 들어가 있고, 나의 처음 의도를 쭈욱 이어가는 글이 나왔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해야겠다. 달리기로 치면 완주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보는 격이다. 목적이 없다는 것은 목적지를 상정하지 않고 걷는 삶과 같다. 그 삶이 불안하다고 해서 억지로 목적지를 상정하기보다는 목적(지)를 잊고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길에 집중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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