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랑은 늘 제 멋대로 인가요

문학 / Jess / 2019-11-05 20:26:00
면도날 x 더 랍스터

[달과 6펜스] 그리고 [인간의 굴레]와 더불어 서머싯 몸의 3대 작품으로 손꼽히는 [면도날]은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많은 유명세를 타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통찰력과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거대한 분량을 잊게 만드는 뛰어난 몰입감, 실존 인물들로 착각할 법한 생생한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쉬는 작품으로 많은 문학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측면 중에서도 ‘아이러니한 사랑의 감정’에 중점적으로 초점을 맞추어 살펴볼까 한다.


서머싯 몸은 [면도날] 속에 자기 자신을 1인칭 관찰자로서 등장시키며 마치 자서전과 소설을 넘나드는 듯한 묘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오직 그의 시선과 생각의 흐름에 기대 독자는 모든 이야기를 보고, 듣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때로는 재등장하지만 작품 속 그가 가장 애착을 가지고 바라보는 인물은 바로 ‘래리’라는 청년과 ‘이사벨’이라는 처녀일 것이다. 각광받는 작가인 서머싯은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으며 그들을 알게 된다. 둘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사랑스러운 연인으로, 서로 결혼할 것을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전쟁에서 돌아온 래리는 세속적인 삶에 흥미를 잃고 여러 곳을 떠돌며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 하고, 현실적인 이사벨은 자신을 위해 안정적으로 정착하지 않으려는 래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둘은 갈라서고 이사벨은 다른 청년과 결혼을 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재회한 이들은 친구로서 다시 어울린다. 아이러니는 이제 시작된다. 이사벨은 서머싯에게 지금의 남편과 삶에 만족하고 후회도 없지만, 자신이 평생 사랑한 사람은 래리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한다. 반면 래리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진정 결혼하고 싶던 여자는 이사벨이 아닌 다른 여인이었음을 밝힌다. 왜 사랑은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울까? 이사벨이 자신의 완벽한 남편을 사랑했더라면? 래리가 잠깐 스쳐간 다른 여인이 아닌 이사벨을 사랑했더라면? 그랬더라면 인생은 얼마나 쉽고 단순했을까.


[더 랍스터]는 바로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이 지닌 난해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영화이다. 판타지와 멜로를 넘나드는 이 작품 속에서 호텔에 갇힌 솔로들은 45일 안에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 강압적인 호텔의 규율 아래에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짝을 찾아 헤매지만 인위적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주인공 역시 커플이 되기를 거부하고 숲으로 도망쳐 솔로들의 무리에 합류하지만, 사랑에 빠지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이곳에서야 진정한 제 짝을 찾는다. 처음부터 그 둘이 호텔에서 만났더라면, 혹은 그저 동료로서 평화롭게 솔로 생활을 이어갔다면? 그랬더라면 얼마나 편했을까. 억지로 하라면 못하겠는데 적작 하지 말라면 마구 샘솟는, 사랑이란 드센 감정이 지닌 아이러니함이다.


셰익스피어 역시 ‘말리면 말릴수록 불타는 것이 사랑’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사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그토록 뜨겁게 불타오를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장애물 때문이다. 막상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나면 그토록 신비하고 아름답게 보이던 대상도 예전만큼의 의미를 가지지는 못한다. 마치 멀리서 바라볼 때 훨씬 아름다운 별처럼, 진정 자신이 원하던 것은 스스로의 기대와 바람이 결합되어 만들어 낸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더 랍스터]의 결말이 더없이 예상 밖이지만 현실적이고, 허무하면서도 완전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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