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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한국의 미래인가?/이덕형 칼럼 |
1989년 12월, 일본 닛케이 주가는 38,957포인트에 도달했다. 도쿄 도심의 땅값은 미국 전역의 부동산 가치를 넘긴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이 거대한 자산 버블은 1년 만에 무너졌고, 일본 경제는 30년간 회복하지 못했다. 그 침체의 세월은 ‘잃어버린 30년(失われた30年)’으로 불린다. 오늘날 한국은 일본의 '전철지계(前轍之戒)'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처음엔 ‘잃어버린 10년’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의 저성장과 디플레이션은 2000년대에도, 2010년대에도 이어졌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며 내수 기반은 약화됐고, 정부는 반복되는 경기부양책에 의존했지만 실질적 변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혁신은 더뎠고, 신산업 육성은 기존 대기업 중심 구조에 가로막혔다. 결국 일본은 30년을 잃었다.
자산 거품의 붕괴, 그 자체가 위기가 아니었다. 일본 경제가 길을 잃은 것은 버블이 꺼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 이후의 대응이 미흡했고, 변화는 끝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불량채권을 제때 정리하지 못했고, 기업들은 손실을 숨기며 ‘좀비 기업’으로 연명했다.
정치권은 개혁보다 안정을 택했고, 국민은 디플레이션 속에서 소비를 줄였다. 젊은이들은 정규직을 포기하고 비정규직에 머물렀으며, ‘사토리 세대’란 단어가 등장했다. 더 바라지 않고, 더 나아가지 않으려는 침묵의 세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 같은 ‘구조개혁의 실패’와 ‘심리의 마비’가 일본을 장기침체로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기회의 사다리는 사라졌고, 개인의 열망은 줄었으며, 국가는 방향을 잃었다.
한국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한국은 1990년대 초 일본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부동산 가격은 고점에서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고 △가계부채는 GDP의 105%를 넘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청년층은 취업난에 시달리고 △고령화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생산가능인구는 줄고 있고 △출산율은 OECD 최저다 △경기 부양책은 반복되고 있지만, 내수 회복은 지지부진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일본의 전철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과거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정치권은 대통령 선거를 치루면서 근본 개혁보다 단기 현금성 정책에 몰두했다. 기업들은 여전히 각종 규제 속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투자 시기를 놓치면서 중국의 발빠른 추적에 허우적 대고 있다. 일본처럼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들. 우리는 아직 ‘잃어버린 30년’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선 지금 이 순간, 방향을 바꿔야 한다.
△버블을 억제하고 실물경제로 자본을 유도하는 금융세제 개편 △고령화 사회를 대비한 이민 정책과 노동시장 유연화 △부동산 의존에서 탈피한 신성장 산업 중심의 투자 전략 △청년층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교육·고용 개혁이 절실하다.
단기적 경기부양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장기적 구조 전환과 연계되지 않으면 일본의 길을 반복할 뿐이다. 특히, 경기침체가 시작되었을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공공근로나 건설이 아니라, 경제 체질 개선과 혁신 생태계 구축이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일본은 경제 위기보다 더 무서운 것, 즉 사회 전체가 변화의 필요성을 외면하고 체념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보여줬다. 한국이 같은 길을 걷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미 인구 감소, 부동산 고점, 내수 부진 등 유사한 경고 등이 켜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정치권과 정부, 기업과 시민사회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처럼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면서, 일본이 한 선택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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