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항소심 열렸지만, 다시 엄격한 '인과관계'?...제조물 책임은 어디로

유통·생활경제 / 이호영 기자 / 2022-08-26 14:22:07
▲'가습기 메이트' 등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항소심이 재판부 변경 후 서울고등법원 303호에서 열리고 있다. 다음 공판일은 10월 27일 오전 10시 10분이다.  /사진=이호영 기자.

 

[소셜밸류=이호영 기자] CMIT·MIT 성분 가습기살균제 공판이 사상 초유 가습기 살균제와 상해 간 인과 관계의 '엄격한 증명'에 초점을 맞추면서 정작 원천적으로 안전성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제품을 출시한 책임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툼의 초점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결함 있는 제조물 위해성과 상해, 사망과의 인과 관계가 아닌 주의 의무 위반 행위와 침해 결과 사이 인과 관계 규명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25일 서울고등법원 제5형사부는 업무상과실치사등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홍지호·안용찬 등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필러물산 전현직 임직원 13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을 진행했다.

재판부 변경 이후 첫 공판인 이날 검찰과 변호인단은 변론을 통해 사안의 쟁점을 짚었다. 검찰은 "2019년 기소돼 2022년까지 3년에 걸친 이 사건 본질은 살균제 사건이라는 것"이라며 "세균을 죽이는 독성의 살균제가 가습기를 매개로 호흡기를 통해 제약 없이 인체에 들어왔다, 집단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라고 했다.


CMIT·MIT 원료는 원래 페인트 섬유 제품 등 공업용 살균 방부제로 사용되는 것이다. 검찰은 "살균제를 초음파 가습기 수조에 넣어 분무하는 제품은 1994년 우리나라 유공이 최초로 개발하기 전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던 제품"이라고 했다.

1994년 유공이 서울대 연구소에 의뢰, 흡입 독성 동물 실험을 간이 형태로 한 결과 독성 반응을 확인, 안전성을 의심할 만한 사정이 있어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았다.

검찰은 "피고인들은 그런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고서도 이를 무시하고 추가적인 안전성 실험 없이 판매를 강행했다"며 "안전 기준이나 근거 없이 표준 사용량을 결정하고 과량 사용 등에 대한 주의 등 고지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제품 판매 중에도 소비자들이 호흡기 불편, 피부 과민 등 불만을 접수했고 영유아·산모에게 안전한지 문의가 많았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결국 본인들이 화학물질 제조 판매업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의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은 "피해자 박나원·박다원 등 44명에게 폐 손상을 입히고 피해자 4명에게 천식 상해를 입혔다는 게 이 사건 공소 사실 요지"라고 했다.

검찰은 동물과 인간 간 종간 차이 등을 무시한 채 동물 실험만으로 인과 관계를 판단하는 등 원심 오류도 지적했다.

검찰은 "전문가 진술, 증거 등을 종합해 인과 관계 인정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이 법률가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원심은 단편적인 접근으로 (과학적인 연구 결과 등) 증거를 개별적으로 분리하고 비합리적인 근거로 주요 증거를 배척했다"며 "증거 전체 취지를 왜곡하고 공소 사실에 부합하는 시험 결과와 전문가 진술 등에 대한 판단을 누락했다"고 했다.

일례로 원심은 이규홍 박사 진술 경우 "천식이 악화된다고 단정적으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는 답변 취지를 왜곡했다. 이는 단 하나의 동물 실험 결과를 가지고 단정적으로 인과 관계를 입증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무엇보다 이 박사 답변 취지는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오히려 "천식 발생에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또 통상 연구자들이 연구 결과에 대한 의견 진술에서 "과학에서 100%는 없다"며 단정적으로 진술하지 않는데, 이런 이유로 원심은 증거에서 배척했다.

인과 관계를 밝힌 이규홍 박사 연구의 실험 방법 '기도 내 점적 방식'을 흡입 독성과 동일시할 수 없다는 원심에 대해서도 "이물을 직접 떨어뜨리는 수준이 아니다"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 용량을 점적, 결국 흡입에 의해 들어가게 된다. 이 때문에 흡입으로 인한 독성 확인에 매우 효과적 실험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PHMG 사건에서도 기관의 점적 투여 실험이 있었고 증거로 채택됐다"고도 했다.

이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등 피해를 다른 원인으로 인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인과 관계를 부인했지만 "하나의 질병은 모든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것"이라며 "이런 호흡기 질환자 등 모든 민감자까지 고려해 애초 안전히 설계했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안전하지 않게 설계해 제조, 판매했고 결국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변호인단은 가습기 메이트 등 CMIT·MIT 성분의 위해성 여부에 대해 PHMG·PGH와 달리 짧은 체내 잔류 기간과 낮은 대사 산물 독성, 침적 여부 불분명, 낮은 하기도 도달 가능성을 주장하면서 피해자들 폐질환·천식 등 발생과 가습기 메이트 등 CMIT·MIT 성분 간 인과 관계가 규명되지 않아 '무죄'라는 원심 판결을 옹호했다.


동시에 미증유 물질인 가습기살균제 상해를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CMIT·MIT 피해자들 전신 질환 주장(폐 질환 위주 판정 기준 이의 제기) 등을 주장에 최대한 활용하는 모습이다. 폐 질환 위주 상해는 PHMG·PGH에서만 보일 뿐 CMIT·MIT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인과 관계가 성립 안 된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현재도 CMIT·MIT 인과 관계 규명 시험은 국가가 나서고 있다. 설령 피고인이 제품 출시에 앞서 안전성 시험을 실시했더라도 제품 위해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는 게 확실하다. 따라서 피고인은 제품을 그대로 제조, 판매했을 것"이라며 "결국 피고인에게는 안전성 검증을 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실과 상해, 사망 결과 사이에 인과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이처럼 "안전성을 확신할 수 없는 제품임에도 불구, 제품을 출시했을 것"이라는 당당한 변호인 변론이 가능한 것은 현재 공판이 오로지 초유의 가습기살균제 위해성과 피해 인과관계에 초점을 맞춰 과실을 다투면서다. 현재 형법상 죄를 다투는 초점이 주의 의무 위반 행위와 침해 결과 사이 인과관계 등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작년 6월 18일 한국환경법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김재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심 판결의 형사법적 쟁점을 짚으면서 "형법상 제조물책임은 대부분 업무상과실치사상죄라는 과실범 성립 여부가 문제되고 주의 의무 위반 행위에 대한 심사가 형법상 제조물책임 여부 검토 출발점이 된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 1심 재판부는 주의 의무 위반 행위와 침해 결과 사이 인과관계가 아닌 그 이전 단계인 결함 있는 제조물 위해성에 대한 인과관계 증명에 초점을 맞춰 재판을 진행, 공판정이 CMIT·MIT 원료 물질의 위해성에 관한 과학시험 결과의 검증장으로 변질된 것 같다"고 했다.

한편 이날 재판엔 앞서 오전, 오후 두 차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다수 참석했다. 회견에서 피해자들은 "동물 실험에서는 이상 없었지만 1만2000명 기형아를 발생한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임산부 입덧 치료제 전례도 있다"며 "철저히 SK케미칼과 애경, 이마트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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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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