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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개정의 역설/이덕형 칼럼 |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기업가치 제고에 항상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아니면 때로는 ‘경영권 흔들기’와 ‘시세차익’이라는 사적 목적을 정당화하는 방패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화 사태에서 보듯, 일부 제1우선주 주주들은 상장폐지 계획이 공시된 이후 되레 주식을 추가 매수하고, 이후에는 언론과 국민청원을 통해 여론몰이에 나섰다. 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희소성을 이유로 높은 가격 매수를 요구하며, 보통주 전환이라는 정관 위반 수준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이는 명백히 ‘시장에서의 정상적 가치 판단’이 아닌, 제도와 여론을 이용한 경영 간섭의 시도다. 문제는 이런 소수가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면, 기업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에 휩싸인다. 정상적 경영 결정이 법적,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고, 불확실성은 곧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우선주 상장폐지 결정은 결코 가볍지 않은 절차다. 거래소의 관리종목 지정 가능성 통보, 장외매수와 할증 지급, 상장폐지 요건 충족, 그리고 자율공시까지. 기업은 이례적일 만큼 상세한 설명과 절차를 밟았다. 그런데도 일부 주주는 이를 ‘음모’로 몰아간다. "일부 주식만 소각했으면 상장 유지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은, 상장 유지가 경영의 본질보다 우선된다는 잘못된 판단이다.
이제 기업 입장에서 이런 행동은 하나의 '경영 리스크'다. 투자자 보호는 자본시장의 기본 원칙이지만, 투자자 중 ‘소수’가 경영 전체를 흔드는 상황까지 허용되어선 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더 큰 우려는 상법 개정 방향이다. 최근 여당과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집중투표제 강제화, 감사위원 분리 선임 등 '주주권 강화'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소액주주 권한이 커지는 만큼, 이 권한이 오남용될 가능성 또한 커진다.
기업들은 주요 전략 수립이나 구조조정, 자회사 상장 등 민감한 사안마다 법적 분쟁과 주주 간 갈등에 휘말릴 수 있다. 경영자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과도한 주주권 강화가 오히려 책임경영의 기반을 훼손하고, 외부세력의 경영개입 도구로 악용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투자자 보호와 기업 자율성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둘은 균형을 이뤄야만 제대로 기능한다. 상법과 자본시장법의 개정은 정치적·이념적 구호가 아닌, 실질적 시장 리스크와 운영 현실에 기반해 논의돼야 한다.
한화 제1우선주 사태는 단순한 종목의 이슈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이 '소수의 소음'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경영 판단권과 자율성, 상장폐지라는 정당한 선택조차 의심받고 여론재판에 휘말리는 사회에서, 누가 기업을 책임 있게 경영할 수 있겠는가?
정부와 국회는 상법 개정 논의에 앞서 지금의 시장 혼란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진짜 개혁은 제도를 남용하지 않고, 소수의 이익이 다수의 질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막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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