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등 경제8단체 임원들이 19일 국회 소통관에서 본회의에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 권한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료/최성호기자 |
[소셜밸류=최성호 기자]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상법 개정안이 재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액주주의 권리는 강화되는 반면, 기업의 안정적 경영 기반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핵심 조항인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는 특히 지배주주 입장에서 ‘경영권 침해’에 준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정치권은 “주주 자율성과 투명한 지배구조 확보”를 강조하지만,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 수단을 무력화하는 과잉 입법”이라며 입장차를 분명히 했다.
상법 개정안의 핵심 조항 중 하나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다. 현재는 자회사의 잘못에 대해 자회사 주주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된다.
이는 대기업 지주회사 체제에서는 심각한 리스크가 된다. 예컨대 SK그룹이 소유한 수십 개의 자회사 중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SK 주주가 직접 해당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자회사에서 경영실책이 발생할 경우, 본래 책임자는 자회사 이사이지만, 모회사 주주가 끼어들어 경영 전반에 사법적 압박을 가할 수 있다”며 “복잡한 대기업 지배구조에서는 오히려 ‘법적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위원 분리선임제, 사실상 ‘경영권 공격 루트’
상법 개정안에는 또 하나의 민감한 조항이 포함돼 있다. 바로 감사위원 분리선임 요건 강화다. 현재 상장사는 이사회 구성원 중 1명을 감사위원으로 겸직 선임할 수 있는데, 개정안은 감사위원은 이사와 별도로 선출하고, 최대주주의 의결권은 3%로 제한하도록 강제한다.
이는 지난 2020년 공정경제3법 중 하나로 처음 논의됐고, 삼성·LG 등 대기업 집단에서 경영권 방어 실패 사례가 나왔다. 특히 2021년 LG화학 주총에서는 소액주주와 연기금이 연합해 감사위원 후보를 탈락시키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한 대기업 법무담당 임원은 “감사위원은 핵심 내부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인데, 대주주의 방어력은 제한된 반면 외부 주주가 전략적으로 표결에 개입하면 내부 정보를 탈취하는 경로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자투표 의무화”…실효성 있는가?
상법 개정안은 상장기업의 전자투표제 의무화도 포함하고 있다. 이는 주주총회 참여율을 높이고 주주권을 행사하기 쉽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기업들은 “전자투표 시스템 자체가 중소형 기업에겐 과도한 비용 부담이 될 수 있으며, 현실에서는 참여율도 낮다”고 반발한다. 특히 실질적으로 소수 행동주의 주주만이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구조가 정착되면, 오히려 기업 경영의 효율성만 저해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이제 소액주주가 대기업을 흔든다?”…기업들 경영불안 고조
재계는 상법 개정이 통과되면 기업들이 ‘적대적 M&A’, ‘주주행동주의’, ‘사법 리스크’ 3중고에 시달릴 수 있다고 본다. 소액주주의 권리가 지나치게 확장되면, 이들이 특정 목적의 연합 세력으로 행동에 나설 경우 기업이 본질적 경영 판단보다 ‘주총 표 대결’에만 매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행동주의 펀드의 국내 진입 사례가 급증했고, 소액주주 연합이 감사위원·사외이사 선임에 성공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은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 기업들은 내부통제 시스템은 강화되고, 외부는 불확실성만 커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 정치적 논리인가, 제도적 필요인가
법조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상법 개정이 진정한 소액주주 보호가 아닌, 정치적 상징성만 강 조하는 입법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한 경제학 교수는 “상법 개정은 ESG와 투명경영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며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정치 일정과 연계해 처리하는 것은 오히려 제도의 신뢰도를 훼손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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