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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배아 이식’ 선택/이덕형 칼럼 |
한 개인의 결정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순 연예 뉴스가 아니다. 전통적 가족관, 생명 윤리, 여성의 자기결정권, 비혼 출산의 사회적 수용성 등 우리 사회가 회피해온 질문들을 정면으로 끌어냈다. 현재 우리 법에는 이혼 이후의 배아 처분에 대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동결 배아의 처분은 당사자 간 합의에 맡겨져 있다. 이시영은 “상대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폐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 대목은 생명에 대한 윤리적 판단이 법보다 먼저 작동한 드문 사례다. 배아 폐기를 앞두고 내린 선택은 단순한 모성애를 넘어, 삶의 근원적 가치에 대한 선택이었다. “정윤이를 통해 느꼈던 후회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는 문장은 그 진정성을 보여준다.
이시영은 출산의 결정을 혼인 상태 밖에서, 책임은 스스로 지겠다는 전제 아래 내렸다. 이는 우리 사회에 여전히 견고한 ‘결혼→출산→가족’ 공식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물론 이시영은 일반적인 여성들과는 다른 조건에 있다. 경제력, 유명세, 자율성. 그러나 이 결정은 ‘비혼 부모’, ‘독립된 모성’, ‘혼자서도 가족을 만드는 선택’에 대한 담론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아직 ‘가족의 재정의’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이동 중이다. 혈연이 아닌 정서적 관계로, 법적 혼인이 아닌 공동 책임으로 가족을 이뤄가는 흐름은 세계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조 전남편 역시 이 사건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반대했지만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은 매우 이례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혼한 부부가 아이 문제로 갈등하는 현실과 비교하면, 오히려 모범적이고 성숙한 분리 양육의 자세다. 그는 감정적으로는 반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성의 책임을 선택했다. 이는 단순한 법적 의무 이상이다. ‘결혼은 끝났지만, 가족은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이시영의 선택은 불완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을 진실한 책임감으로 끌어안는 방식은 존중받아야 한다. "불완전한 나의 삶을 채워 준 기적", "내가 선택한 생명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고백은 어떤 변명도 없다. 그 자체로 모성의 언어이자,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도달한 정점이다.
그렇다고 이 결정이 모두에게 권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도전이고, 누군가에게는 부담이다. 그래서 이시영의 고백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감당과 선택의 문제로 읽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이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배우 이시영의 선택은 우리에게 묻는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명을 선택할 자격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혼 후에도 부모일 수 있는가. 그리고 사회는 이러한 개인의 결정에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우리는 여전히 이러한 질문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이시영의 용기 있는 선택은 분명히 말했다.
“불완전한 나의 삶을 채워 준 건, 아이였다. 나는 그 책임을 감당할 것이다.” 이 고백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는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그런 선택을 하는 개인을 응원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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