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은 유루시아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따뜻한 교실툰을 그리는 초등 교사 '루루쌤'(필명)이 2017년부터 에듀콜라에 연재한 글, 그림을 다듬고 엮은 기록이다.
작가는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교실에서 만나는 어린이들과 함께 삶을 가꾸고자 노력했다. 교실에서 마주치는 사소하지만 반짝이는 순간(때로는 아주 정반대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때마다 든 생각과 고민들을 한 권의 책으로 모았다.
유루시아 작가의 에세이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과 함께 펼쳐지는 따듯한 교실 이야기, 또 교사로서 한 번쯤 겪었고 공감할 수 있는 고민들로 독자들을 찾아갈 것이다.

저자 소개
저자: 유루시아
화려하진 않더라도 나와 아이들이 지금 여기서 더 나은 삶을 가꾸어 나가는 교실살이를 꿈꿉니다. 그림과 글을 어쨌거나 꾸준히 풀어내고 있습니다. 혼자 고민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 자꾸 옆길로 새곤 합니다. 게다가 멍을 잘 때리는 길치입니다 이를 어쩌죠.
목차
책을 펴내며 2
1부.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
저학년과 고학년, 극과 극 10 / 교실 문을 열며 16 / 이토록 솔직한 아홉 살 인생 22 / 꿀 같은 쉬는 시간 29 / 밤편지 (1) 36 / 밤편지 (2) 45 / 밤편지 (3) 51 / 시트콤 (1) 59 / 시트콤 (2) 64
2부. 반짝임 줍는 교실살이
흔들리고 헤매는 신규 교사 70 /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 사람인가 84 / '상자 밖'에 있는 사람이고 싶다 89 / 교실에서 어린이들에게 옮다 95 / 누가 어린애인지 모르겠다 101 / 사람이니까, 상처를 받는다 106 / '오답공책'을 버릴 용기 111 / 때로는 '답정너'가 될 것 115 / 회복은 힘이 세다 119 / 반짝임 줍는 교실살이 123
본문
올해 처음으로 저학년인 2학년 담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학년을 연달아 맡다가 저학년을 맡으면 그 다름이 아주 뚜렷합니다. 이 존재들이 커서 저 존재가 된다니. 마치 곤충의 탈바꿈 못지않게 신비롭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2학년과 6학년의 대비는 마치 의욕이 가장 충만한 청춘과 의욕이 가라앉는 노년(!) 같아서 '극과 극'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2학년은 박수를 몇 번 쳐 보는 등 아주 작은 것들도 하나의 놀이가 됩니다. 잘 이끌기만 하면 즐거움과 기쁨으로 거의 정신을 못 차릴 만큼 잘 놀 수 있습니다. 반면에 6학년은 교실에서 손짓이나 말을 자꾸 시키려 하면 '저 인간 갑자기 왜 저래?'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겁니다.
#1. 이야기를 나눌 때
6학년이라면 보통 또래와 더 친밀해서 선생님이 너무 불쑥 다가가면 아무래도 어려워합니다. 그래도 교사 입장에서는 많은 설명을 보태지 않더라도 편하게 폭넓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대화가 재미있습니다.
그럼 2학년은? 선생님이 하는 작은 행동도 신기한 구경거리처럼 바라봅니다. 특히 선생님 책상에 있는 온갖 종이, 물건, 글씨 등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모르는 새에 불쑥 다가와 이것 저것 살펴보며 묻는 바람에 '아, 내가 책상 정리를 너무 안 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됩니다. 전혀 다른 질문을 하러 나왔다가도 책상 위의 클립을 발견하고 만지다가 무아지경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치 레이저 불빛을 본 고양이처럼요)
처음에는 아홉 살 어린이들이 이야기 나누는 방식을 이해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나도 어렸을 땐 그랬을 텐데 기억이...) 교사는 학생들 전체에게 이야기하는데도, 아홉 살 어린이들은 1 대 1 대화로 생각하고 '저는요?' '저는요?' 하고 끊임없이 자기도 확인을 받아야 안심이 되는 모양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래 그 나이에는 전체 상황을 고려하는 눈이 아직 없거나 생기는 중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크면서도 그 눈이 잘 안 생기는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2. 교사가 지치는 시점
저학년과 고학년은 교사가 지치는 시점도, 그 이유도 조금씩 다릅니다. 2학년은 저학년이라 원래 교과전담이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며, 게다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생활'이라는 교과가 새롭게 생겨 작년에 비해 교사가 수업해야 하는 주당 수업 시수가 1시간 늘어났습니다. 학생들과 연달아 5교시를 함께 하니 체력이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몸이 힘들고 특히 목이 아파지면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어린이들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기도 하고, 소진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교사가 중재하거나 챙겨주고 알려주어야만 하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기 때문에 체력과 건강한 정신력이 없으면 힘듭니다.
이와 달리 6학년을 만나 특히 힘들었던 일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6학년이 될 때까지 복잡하게 얽히고 쌓여 온 교우관계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지속적인 상담으로도 해결되지 않으면 참 불안하고, 마음은 피곤해집니다. 하나 더 꼽자면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후반기에 진도에 쫓기면서 학생들이 힘들어 할 때, 설상가상으로 진도가 빨라 여유 있게 학급 행사를 하는 옆반과 우리반을 자꾸 비교하며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하던 때 기운이 많이 빠졌던 것 같습니다.
고학년 어린이들은 저학년 어린이들보다 각자 쌓아온 실패와 상처의 경험이 더 많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날카로운 가시나 딱딱한 껍데기를 만들어 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걸 헤아리기도, 파고들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때로 학생들과의 관계에서 건너기 힘든 심연을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엔 '가르칠 수 있는 용기'(파커 J. 파머)에서 '지옥에서 온 학생'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는 교사의 공포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3. 그래서, 씁니다.
그런 순간에 나는 학생들에게, 학생들은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괴물처럼 보였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한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구할수록 알게 되는 것은, 답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제대로 바라보아야 해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제대로 바라보고 싶어서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 삶의 의미에 대한 책, 영화 등을 찾았습니다. 삶에 활용해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습관 단 하나를 새로이 만들려고 해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겉보기에 저는 큰 변화나 성장이 보이지 않는 도돌이표와 같지 싶습니다. 한때는 그게 화가 났습니다.
그래도 고민 중에 문득 얻은 통찰이나 위로를 공유하면 그것이 누구에게는 쉼표가 되기도 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것이 힘을 북돋워주는 재료가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깜냥이 되지는 않더라도 이런 저런 고민과 그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쓰고, 부끄럽지만 남들에게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날이 넓어지고 깊어지려고 힘쓰고 있는 중입니다.
- '저학년과 고학년, 극과 극' 중에서 -
학교에서 보내는 하루는, 교실 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 아침 일찍, 학교가 조용할 때 가장 먼저 도착해서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하고, 차를 한 잔 마시는 여유란! 하지만 그렇지 못한 날이 매우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첫 발령이 났던 학교는 집에서 도보로 15~20분쯤 걸으면 도착하는 곳이었습니다. 아니,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거의 10분 만에 도착하지요. 하지만 학교가 가깝다는 생각에 여유를 부리게 되어, 오히려 출근 시간이 늦어지곤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출근 시간보다 30분 이상 일찍 가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아침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어린이들과 비슷한 시간에 등교하며 아침을 늘 분주하게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4년 후 집과 한참 먼 곳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동네는 조금만 늦게 나서면 출퇴근길에 교통지옥이 펼쳐지는 곳이었습니다. 비록 버스를 타지만, 버스 안의 인구밀도는 단 30분 차이로 어마어마하게 달랐습니다. 그리하여, 교통지옥의 위력이 아침잠을 이기고 말았습니다. 이전 학교에 근무할 때에는 일어나던 시각이, 이제 집에서 나오는 시각이 되어 버린 겁니다. 세상에나.
그렇게 일찍 도착한 아침, 교실 문을 혼자 열고 조용한 교실에서 이것저것 하다 보면 6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8시 25분이 지나서 어슬렁어슬렁 교실로 오곤 했습니다. 아, 평화로운 아침. 아침형 인간들은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니! 학창시절 부끄럽게도 아슬아슬한 지각을 달고 살았던 저로선 참 여유롭고 상큼한 기분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 런. 데. 말입니다. 6학년에서 갑자기 2학년 담임으로 변신하자, 첫날 아침부터 뭔가 다른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평화로운 아침 8시, 분명히 복도가 조용해야 하는데, 어디선가 큰 목청으로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일이지?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서 조그만 어린이 몇 명이 생각지도 못한 이른 시간부터 복도를 재잘거림으로 가득 채우며 등교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보아도 분명히 학생들이었습니다. 설마 첫날이라 일찍 왔겠지 했는데 그 다음날도, 다음 날도... 알고 보니 학원차를 타고 등교한다거나 부모님 출근 차를 타고 온다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일찍 오는 어린이들이었습니다. 결국 아침잠 없는 꼬마들 덕분에 평화로운 아침과 작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나는 혼자 아침을 시작한 뒤 여유로운 마음으로 너희를 맞이하고 싶단 말이다. 제발···.'
- '교실 문을 열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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