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헌: 세종의 아내

문학 / 반다일 / 2019-09-11 00:04:06
그녀를 기억하며<br>소헌과 이도<br><1장> (1) 변해버린 성군


[1장]




***




세종이 이렇게 막무가내로 고집 피운적은 처음이었다. 옥좌에 앉아 있는 세종을 향해 6조의 판서들이 울먹이는 수준으로 말했다.








"전하. 궁궐 안에 불당을 지으시겠다니요!! 궁은 사사로울 수 없는 곳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내가 큰 절을 짓겠다는 것도 아니고… 작은 불당 하나 소박하게 마련하겠다는것인데,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란 말이냐."






어두운 표정으로 옥좌에 앉아 있는 왕은 신하들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것은 조선의 근본이념이옵니다. 만약 불교 사찰을 궁안에 들여놨다가는… 이것은 나라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신하들은 감히 생각도 하기 싫다는듯 고개를 저으며 얘기하였지만 세종도 지지 않았다.






"그래서 중장 밖인 문소전에 짓는 것이 아니냐."




"궁궐의 가장 자리라도 궁은 궁안입니다. 더군다나 문소전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곳인데, 승려들이 얼씬거린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뭣이?! 궁궐의 가장 자리라니! 창덕궁의 문소전은 궐내가 아니고 담 바깥이 아닌가?!




도대체 그것을 너희가 무슨 권리로 반대하느냔 말이다!!"




그제야 신하들은 세종과 눈을 마주치었다. 신하들은 파르르 떨리고 있는 전하의 눈을 보고, 전하께서도 마음고생이 심하시단걸 단박에 알수 있었다.


왕 또한 신하들을, 자신들을 두려워 한다. 두려움을 이기려 애써 강하게 나가시는 것이다. 곧 우리의 말을 참작하실것이다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왕의 일탈같은 행동은 이것이 시작이었다.








*




6조 판서들만의 상소로는 세종이 듣는 척도 하지 않자, 이들은 사헌부, 사간원까지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내불당 건립을 반대하는 정국으로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십수명의 신하들이 세종의 앞에 엎드린다. 예조판서 허후가 읍하며 기조 발언을 마친후 본격적으로 따져 들어갔다.


"불교를 억제하는 일환으로 장차 멀리있는 흥천사와 흥덕사도 없애려고 계획하는 마당에 하물며 궁안에 새로운 절이라니요?"


무표정으로 듣고 있던 세종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진다.


"오호 그래? 경은 그 두 절을 없애고 싶다고? 그럼 내가 당장 일꾼을 뽑아줄테니 지금 바로 가서 무너뜨려 보거라!"


"아니..저…전하…"


왕의 거친 기세는 날이 갈수록 세어지었다. 신하들은 당황하여, 준비했던 말들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그 뒤로 몇마디를 간신히 올렸을뿐 효과는 없었다. 왕이 이깟 논쟁에 죽기살기로 완강하게 버티는 모습에 신하들을 질리게 하였다.


대신들은 이번에도 입술을 깨물고 다음 상소를 기약하며 일단 후퇴할수 밖에 없었다.










*





궁의 북쪽 끝에 자리잡은 성균관 학당이다. 소나무가 드리운 학당 처마 사이로 공부하고 있는 성균관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성균관의 유생들을 지도하는 좌승지 조서안은 앞에서 책을 펴놓고 강의를 하고 있었지만




마음의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유생들의 기척을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다.






성균관의 학생들도 왕이 궁궐에 절을 지으려한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허나 중견 대신들이 반대하고 있기에 전하께서 곧 그치시겠지 하는 생각으로 참는 중이었다.




그 때 수업시간을 맞추지 못한 한 학생이 다급하게 자리로 뛰어 들어왔다.






"어허! 제시간에 다니지 못할까!!"




선생인 자신의 일갈에도, 늦은 학생은 자신이 늦는 것 따위는 지금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뚱한 표정으로 선생을 보는둥 마는둥하고 자리에 앉았다.


심지어 이 놈은 들어와서 가만있기는 커녕 다른 학생들에게 쪽지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한다.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동요한다. 자신의


주의에도 불구하고 더 소란스러워지는 걸 보고는 조서안은 더 이상 참을수 없었다.




"도대체 늦게 온 녀석이 무엇이 당당하다고 더 떠드는겐가!"




조서안은 호통을 치자 학생들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도끼같은 따가운 시선들이 느껴진다.




학생들의 기에 지지 않으려 조서안은 큰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학생의 본분은 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전하께서 대호군을 시켜, 동궁저하(문종)와 함께 시계도 만들었지 않느냐!"




전하얘기를 괜히 꺼냈나 보다. 그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또 다른 학생이 신경질적으로 일어난다.




"정말 전하께서 내불당을 들이려는 고집을 꺽지 않으신단 말입니까? 저희 같은 학생이 보기에도 이 사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도 이를 앙다물고, 세모 꼴의 눈을 한 채, 이 의견에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덩달아 일어났다.






조서안이 크게 당황하였다.




"아...아니...자네들..이게 무슨 불경이란 말인가."




이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엄한 표정으로 꾸짖었다.




"전하께선 이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분이시다! 너희들이 감히 뭐라 할 수 있는 분이 아니야!"




"그것은 젊은 시절의 전하이시지요!"




자신의 일갈에도 눈을 시퍼렇게 뜨고 달려드는 아이들의 당돌함에 조서안은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자네.."




치기에 넘치는 학생들이라 그런지 거침없이 스승의 말을 잘라먹는다.




"그렇습니다!! 전하께선 젊은 시절 조세제도를 시행 하실때는, 일반 관리와 백성들에게 까지 물어보라 하셨다고 들었는데, 선배들께 전해 듣는것과 너무 다르지 않습니까."




한번 고삐가 풀리기 시작하니 망둥이 같은 말들이 날뛸 뿐이었다.




이 어린학생들이 전해듣기에는, 세종이 젊을때는 그리 성군이셨다 들었지만, 갓 약관도 넘기지 않은 이들은 그런 모습을 실제로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당시의 세종의 모습을 외형적으로 표현할것 같으면, 오랜 병마에 싸운 탓에, 등은 약간 굽어 고개는 앞으로 살짝 빠져나왔고, 아픈다리를 절때면 나온 고개때문에 다리를 절뚝거리는것이 더 눈에 띄어 보였다.


항상 신하들을 못마땅해 하는 눈빛으로 다니는 그에게 흘러나오는 기세는 마치 전형적인 못된 노인네 같아 보이게 하였다.




또 그러다가도 어느 날은 완전히 풀죽은 모습으로 다니기만 하는 날도 있어, 신하들이 종잡을 수가 없었다.




외모에서도 성군의 느낌이 많이 없어졌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나라의 기강은




군주께서 가장 먼저 지켜내야만 할 일이 아닙니까."








학생들도 지들 입장에선 나름, 최대한 헤아려 본다고 생각한 것이 터진것이다.


한명 한명이 격해지는 분을 못 이기고 일어나서 애꿏은 조서안을 노려보았다. 자기들 선생한테 무슨 죄가 있다고.




조서안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본다. 버릇없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자신 역시 젋은시절.. 전하가 천문을 연구한다하실 때 저처럼 반대하던 신하가 아니였던가… 물론 천문과 언문(한글),




그리고 내불당의 일은 성격이 많이 다른 것이지만 말이다.




조서안은 숨을 고른뒤 학생들을 조용히 타이르려 했다.




"..그대들은 결코 한순간의 모습을 보고 전부를 평해서는 안 될 것이야."




학생들도 언젠간 깨달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제발 이쯤에서 그렇게 진정되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우두머리 격인 이시준이 선생을 보고 삿대짓을 하며 선언한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십쇼!! 저희 성균관 유생들은 전하께서 내불당 건립을 취소하실 때까지 수업을 거부하겠습니다."




조서안을 잡아먹을 듯 쏘아보더니 이내 학생들에게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모든 학생들이 책걸상을 거칠게 밀치며 학당을 나가버린다.






학당에는 단 한명도 남아있지 않았다.






텅비어 버린 학당에 조서안은 허탈할 뿐이었다.






‘허.. 참.."




지금이라도 붙잡아 학당에 앉혀야 하나, 아니면 아이들의 입장으로 이해해주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때였다. 학당을 빠져나가던 학생들 중 누군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것이 들렸다.




"망군의 망조에 누가 응하겠는가!!!’




'...!!!!!'




조서안은 자신도 모르게 책상에 양손을 짚었다.


눈앞이 캄캄해지었다. 분노에 부르르 떨리는 손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저놈 들은 전하가 어떤 분이신지를 모른다. 학생의 혈기만이 가득할뿐이다.’






애써 그렇게 이해하려 해도 마음 속에서는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전하께서 조선을 위해 어떤 희생을 하셨는지 너희들이 아느냐며 두들겨 패고 싶은 마음이었다.




조서안은 떨리는 손으로 탁상을 붙들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쓰느라 안간힘을 다하였다.




비명같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전하....’








***




이렇듯 신하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한지 여러 날이 흘렀지만, 세종은 내불당 건립 의지를 조금도 접지 않았다.


이런 세종의 모습에 중견 신하들도 점차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신하들 전체에서 의견이 일치하였다. 그리하여 천문은 물론, 언문창제를 반대하던 이들과 , 심지어 언문창제를 극찬하며 번역에 참가했던 집현전 성삼문, 신숙주,


세종이 젊을때부터 수족처럼 지내며 천문을 관측했던 관상감의 직원들까지 내불당 반대를 위해 모였다.






어전 앞에는 이들의 내불당 반대 의견을 모아둔 상소문과 항의서만도 수레로 너다섯채를 가득 채워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였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신하들이 애타게 전하를 외친다. 궁밖의 소란이 계속 되자 세종이 귀챦은듯이 걸어나온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짜증만이 가득 섞인 말투였다.




왕이 모습을 드러내자 허후가 첫마디를 뗀다






"전하. 내불당 건립은 정부 6조와 의금부, 모두가 반대하는 일로서…"




무슨말을 하나 보자라며 시큰둥하게 듣고 있던 세종은 내불당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얼굴이 분노로 흉측하게 일그러진다.




다음 발언을 준비하던 황희가 이 모습을 보고 얼어붙고 말았다.




‘전하께서 왕자였을때부터 봐왔지만 단 한번도 저런 표정을 본적이 없다. 저 분이 정녕 내가 아는 전하란 말인가.’





'황정승 뭐하시오! ...'




허후가 자신의 발언을 마치고 황희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아...!"




황희의 발언 차례였으나 황희는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말을 잃었다.








세종이 황희와 허후를 보며 너희들 뭐하냐는 눈빛으로 보더니 허후를 보고 손가락질 한다.




"또 그 소리인가. 이미 정해진 일이다! 다시 말할 것도, 생각할 것도 없다."




세종이 신경질적으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피하려 하자 등뒤에 비수같은 말이 날라왔다.





"전하께선 나라가 태평하니 교만해지고 편안해지셔서 토목을 일으키려 하십니까."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허후의 날 선 말이었다.




뒤돌아 나가던 세종이 등을 천천히 돌렸다.






"방금 토목이라 하였는가."








왕은 당장이라도 폭발할것 같은 얼굴이었다.




"나를 두고 한 말인가."




치켜들린 눈썹, 구겨진 눈에






당장이라도 고함을 칠것 같은 세종의 모습에 얼어버린 신하들이 식은 땀을 흘리며 서로 눈치를 본다.




자신의 기세에 눌린 신하들을 보며 세종은 한심하다는 혀를 끌끌거린다.




"쯧쯧…너희들은 나이가 많아 사고방식이 낡아빠져서 그런 것이다."






신하들에게 반격의 때는 이때였다.




"그럼 젊은이들의 생각이 궁금하십니까? 성균관의 학생들이 내불당 건립에 크게 반대하며 모두 조퇴하였다고 합니다. 받아들이시기 전까지 등관을 거부하겠다 하옵니다."




"!!!!"




정초의 발언이 효과가 있었던지 세종은 충격을 받은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신하들은 왕의 그런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팠지만, 전하도 이제는 상황을 파악 하시겠지하고 생각했다.




왕이 옥좌의 계단에서 내려와 이 발언을 한 정초에게 다가간다. 왕이 다가오자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속마음은, '이번만큼은 내 절대 전하에게 밀리지 않으리.'라는 마음으로 무장했다.


어느새 눈 앞까지 다가온 세종은 정초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놈의 이름이 무엇인가."






"네? 전하 이름이라니요..?"








뜻밖의 질문에 당황한 정초는 바로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등관을 거부하겠다고 한 녀석의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저...전하 지금 그것이 중요하십니까."




"...내 말하라 하였다..."




세종의 눈에 살기가 뿜어져 나왓다.




황희는 계속 기억을 되짚고 있었다.


지금 전하의 얼굴은 분명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이었다.


이제야 떠올랐다.






'그래 ...저것은 흡사 생전의...!'




그것은 악귀 같던 선왕 태종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모습이었다.






정초는 세종의 무서운 기세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떨리는 몸을 주체할수 없었다.


그냥 모든 발언을 다 접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신하의 도리는 조선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왕에게 충직한 간언을 하는것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버티었다. 하지만 꿇어앉은 무릎 안은 이미 식은땀으로 가득 차있었다.




"하...한 두명이 아니고, 모두 동시에 자리를 떠나자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답이 아니었던지 세종은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었다.






"감히 이 어린것들이....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세종은 분이 안풀리는지 신하들의 앞을 절뚝이면서도, 거칠게 왔다 갔다 하였다.





"그 중에서 분명히 주도적인 인물이 있을 것이다."












예상을 계속 벗어나는 전하의 반응에 신하들이야 말로 제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이를 악물고 대답하였다.





"전하 그들은 아직 어린 학생들입니다. 감정적으로 나가실 일이 아닙니다."




그때 세종의 소리가 궁궐이 떠나가도록 쩌렁쩌렁 거렸다.







"대체 몇!번을 말하느냐!!! 이것은 조정의 일이 아니라!! 왕실의 일이다!!!"










전하의 기세에 눌리지 않으려 정창손이 빠르게 말을 이어간다.




"전하. 학생들은 예전에 공법을 물을때처럼 여론을 조사하길 원합니다. 아무리 무지렁이라도 지금 전하의 명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살펴주시옵소서."



신하들의 발언 또한 도를 넘은 지경이다. 이전에 언문에 대한 비판을 할 때도 야비하고 상스러운 말이라고 비판할 때는 물론이고, 오늘에선 토목이고 교만이라는 말까지 하더니, 급기야 무지렁이를 들먹이며 대립하는 이 상황은. 정상적인 정쟁의 모습이 아니었다.




듣는 세종에게도 역시 이 말이 상처가 되었나 보다. 신하들을 찬찬히 바라본다. 너무들 한다는 표정이다.






"너희는 내가 처음 즉위했을 때는 현군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내가 하는 말마다 잘못됐다고 무어라 하는구나!"






신하들은 가슴이 아팠지만, 전하의 말을 애써 못들은척 하며 말을 이어갔다.




"전하! 제왕은 모름지기 대의를 살피셔야 합니다."






"...뭐라.."




왕은 허탈한듯 한참을 웃어댄다.




‘대의... 방금 '대의' 라 하였느냐.. '






세종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였다. 그러더니 돌연 울음을 참는 듯한 소년의 표정으로 변했다.




"그럼 말해보거라. 내가 이제껏 해왔던 것들은… 무어란 말이냐…."






신하들은 극단적인 감정변화를 모습을 보이는 전하를 보며, 여전히 왕을 존경하는 이천을 비롯한 신하 몇몇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 불세출의 천재이자 어진 전하께서. 도대체 왜 내불당 같은것을 고집하여 이런 험한 상황을 당하셔야 하는지 말이다.




‘나는 대의도 없었던 왕이었더냐.. 말해보거라. 너희들은 정녕 나를 왕으로 여기기나 한다는 말이냐!!’




훌쩍거림을 애써 참는듯하던 얼굴은. 순식간에 다시 무섭게 바뀐다.




그리고는 신하들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노려보며 나와 천천히 옆으로 걸으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맞아 ...그랬다.. 너희들은 내가 젊을때부터 내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반대하기만 했지. 너희들은 언제나 그랬다."




또 다시 급변한 왕의 상태에 갈피를 못잡는 신하들이 아연실색한 사이에 세종은 조서안의 앞으로 절뚝거리며 성큼성큼 걸어갔다.




"이번 성균관 일의 주동자를 색출하라!!!! 밝혀내지 못하면 하옥되는 것은 네가 될 것이다."




조서안은 울음을 겨우 참고 있었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자신이 그토록 존경했던 전하가 이리 되어버린 것이 슬퍼서였다.


하지만 왕은 감상에 빠질 틈을 주지 않았다.




"그 중 20살이 넘은 이들은 모조리 국문에 처할것이다! 주동자를 색출시 그 자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경우엔!"




신하들은 전하께서 이 다음에 하신 말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음성은 또박하게 들렸다.




하지만 그것이 도저히 전하가 하셨을 말이 나올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고문을 하여도 좋다!"








신하들이 엎드려 있는 근정전이 작은 소리하나 없이 고요해졌다.




신하들도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머리 속이 아득해져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깊은 정적을 깨고 엎드려 있던 김종서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복잡하다.







"이제까지 그 어떠한 실수를 하신 적이 없으셨는데, 이번엔 많이 실망했습니다."








발길을 돌려 걸어나가는 김종서를 하연이 화들짝 놀라며 말렸지만, 김종서는 못들은체 하며 그대로 근정전을 빠져나갔다.








***



문종이 사정전에서 수심어린 얼굴로 밖을 보며 서있다.




문종 또한 당연히 내불당에 관련된 이 사태를 모두 전해 듣고 있었다. 수심 어린 문종에게 하연이 다가온다.




‘동궁전하만이 전하를 막으실 수 있습니다. 부디 저희의 충심을 간언하여 주시옵소서.’




간곡한 하연의 부탁에도 뒷짐을 진채 바깥만을 보고있던 문종은 그에게 대답을 주진 않았지만, 아바마마께 한번은 말씀 드려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밤. 세종의 처소인 강녕전에 문종이 찾아간다. 촛불로 밝혀진 어두운 방. 풀죽어 보이는 세종이 앉아 있다. 문종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지만, 애써 못본체 하며 옆에 자리했다.






"아바마마, 좀 괜챦으십니까."




아바마마의 상한 마음을 염려해서 물어보지만 세종은 말이 없다.




"아바마마. 저야 아바마마의 뜻을 잘 아는 바이나. 이번 일은 대신들의 반대가 심상치 않습니다. 일찍이 천문을 연구하시려 하였을때나 언문을 반포하셨을때와는 양상이 너무 다릅니다."




문종이 재차 물으니 힘없이 앉아있던 세종이 느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의 어미를 위한 일이 아니더냐."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그 말은 많은 것을 의미했다.




문종도 그 뜻을 모를리 없었다.








세종은 아련한 그리움에 잠긴 표정으로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네 어미는 그런 아픔의 삶을 살아내면서도 나를 보필하는것에 마음을 다하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그 당시엔 나도 그 아픔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 것 같구나."






말을 하는 도중에도 감정이 격해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나는 성군이란 말을 들으면서도 실은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아바마마…!"






문종은 고개를 떨구었다.




자신도 생전 어머니의 모습들이 떠올라 큰 슬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안될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까지 약해질 수는 없었다.




애써 참는 문종의 마음을 모르는듯이 세종은 글썽이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재촉했다.




"동궁은 내 마음을 알지 않느냐! 나는...이렇게라도...!"




세종은 말을 끝내지 않고 다시 눈을 떨구었지만 문종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문종은 자신도 세자로서 해야만 하는 일과 간언해야할 말이 존재했다.


하지만 아바마마가 자식인 자신한테 이 정도까지 마음을 아프게 털어놓으시니 정작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밤새 평안하시라는 문안 인사를 드리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






홀로 강녕전에 남게 된 세종은 촛불을 끄지 않은채, 천천히 몸을 옆으로 누였다.


흔들리는 촛불을 보며, 소헌, 그녀의 흔적들만을 어둠속에서 바라보았다.








오늘 밤도. 어제처럼.


매일마다 그저 되짚을 뿐이었다.




소박한 시절부터,


영광의 날들.


그리고 아픔의 날들을.




그녀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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