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함이란 뭘까. 생각해본다.
대청마루에 누워있다가, 전화가 울리면 몸 한번 굴려서 닿지 못하고 으레 배에 힘을 주고 일어나 걸어갔다가 집 안의 누군가 전화를 받으러 왔으면 힘이 축 빠져 내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가야 한다.
소박하다는 건 지금이나 그때나 불량식이지만 너무 싸서, 100원에 이 만큼을 주는 게 놀라워 이런 거 파는 문방구 아저씨랑 조금이라도 친해져 보려 하는 그런 느낌 같다.
소박하다는 건 하고 싶은 말 다 못하고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이런 말 저런 말 중에 가장 긴박한 용건만 하고 못내 한 말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씹히는 그 씁쓸하고 달콤한 뒷맛이 아닐까 싶다.
기억난다. 계란초라는 게 있었다. 삶은 계란을 칼로 반을 잘라 오이 조금을 얹어서 또 초장을 얹어 200원에 파는 분식집. 그거... 그게 너무 먹고 싶어, 아니 그거를 먹을 수 있어서 하루를 살았다. 더 비싼 건 맛이 없었다. 계란의 텁텁함을 오이가 잡아주고 오이의 비린맛을 초장이 감싸준다.?
이런 조화로운 음식을 단 돈 200원에 판다는 사실에 아저씨의 인정이 느껴져. 그 하나를 먹으면 너무 행복했다.
그런 소박함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갑자기 인스타그램 필터처럼 하루가 노랗게 바뀌고 하늘이 과거의 앨범 사진처럼
칙칙한 색이 됐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누가 나를 부른다.
날 현찬이라고 부르는 그 친구는 지금은 연락이 안 되는 내 어릴 적 친구다.
아침에 삐삐 보낸 거 확인했냐며 멀리서 핫도그를 들고 달려온다.
핫도그 얼마냐고 주머니를 뒤져보지만 십 원짜리 몇 개만 딸랑거리는데 친구가 반씩 나눠먹자며 대뜸 반을 먹고 내게 내민다. 한 입 베어 무는데 또 한쪽 주머니에선 핸드폰이 울린다. 친구가 그게 뭐냐고 묻는다.
난 자랑스럽게 이건 미래의 물건이며 내가 연락하고 싶은 사람한테 지금 즉시 연락할 수 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린 시절의 친구가 대뜸.
"미래 재미없네"라고 말한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핸드폰을 들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보여주고 이 놀라운 기술을 직접 보라고 얼굴에 들이밀어도 친구는 관심 없는 표정으로 핫도그만 먹는다.
지금은 카카오톡의 메시지 1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면 안 읽었다는 거야. 신기하지 않아?’
친구의 마지막 말이 의미심장하다.
‘불확실하구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한 곳이구나’
쑥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 속으로 사라진 핸드폰은 다시 잡히지 않았다. 친구가 갑자기 벨 누르고 튀기를 하자고 제안한다. 현찬아 저 집에 예쁜 애 산다? 잘하면 사귈 수 있을지도? 그런 이상한 물건 버리고 우리 진짜를 찾자.
망설이는 나에게 친구가 주머니에서 아폴로를 꺼내 입에 물린다. 닥치고 하자는 의미다.
벨을 눌렀다.
떨린다. 너무 그리운 이 떨림.
이 순간이 너무 그리웠다.
소박하지만 너무 확실한 행복이다.
내 마음에 사라지지 않던 의문문 하나가 비로소 쏙 하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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