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먹고 사는 이야기] 1회

문학 / 노영은 / 2019-12-12 23:50:00
: 왈이의 마음단련장 운영기먹고 살만 하니?

“그래서 요즘은 좀 먹고 살만 하니?”



부산 사는 엄마가 전화기 너머로 안부를 묻는다. 마음건강을 돌보는 일을 하겠다 다짐한 지 3년차, 여전히 가까운 사람들의 걱정스런 눈빛을 산다. “잘 먹고 살아요” 하고 너스레를 떨어본다. 주어 없이 이야기가 오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뭐 거짓말은 아니니까 하고 침을 삼켰다.



2030 직장인을 대상으로 퇴근길에 마음을 돌보는 마음헬스장, 왈이의 마음단련장을 만들고 있다. 위로는 호젓한 남산, 아래로는 시끌시끌한 이태원 사이에 있는 작은 공간이다. 주요 헬스기구는 ‘명상’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맞춤 명상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명상대신멍상 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멍상이라고 하면 잘못 쓴 거 아니냐고 하는데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돌보는 멍멍이 왈이(마음단련장 캐릭터)가 주인인 곳이라 멍상이고, 심오한 표정을 하고 앉는 대신 편하게, 멍하게 시작해보자는 의미로 멍상이다. 어렵게만 다가오는 명상을 쉽게, 종교색 없이, 또래가 모여서 한다는 게 또 하나의 특징이다.



마음 먹기*


‘마음을 돌봐야 한다. 마음이 나를 돕게 하려면 우선 마음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명제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지만 3년 전까지 만해도 마음을 전혀 돌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3년 전에는 전형적인 학교를 졸업하고 전형적인 회사에 들어갔다. 놀랍지 않은 순서였다. 아 이제 고생 끝났구나, 하는 순진한 생각으로 신입사원 명함을 받았다. 큰 코 다칠 줄 모르고서. 25일은 물 속에 꼴깍 잠겨 있다 잠시 간의 산소를 공급받는 날이었다. 그렇게 월급날만 기다리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로 행복을 유예하며 살았다. 회사에서 연말 보너스로 나온 상여금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보냈다. ‘어른이 다 되었구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뿌듯해했다. 툭툭 끊어진 몇 순간들만이 나를 나로 만들어주었다. ‘여기가 아닌 것 같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닌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혼란스러운 생각들이 밤낮 괴롭혔다. 한 번도 고민하지 않았던 질문들이 밀알처럼 우수수 떨어졌다. 1년 만에 사직서를 냈다.



‘원하는 것을 하려면 매일 마음을 돌봐야 한다’는 명제가 이제는 자연스러워졌지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만해도 나는 마음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전혀 몰랐다. 여전의 바깥의 기준에 나를 맞추며 좌절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2016년, 사람들의 출근길 표정을 바꾸겠다는 다짐을 하고 매일 아침 8시에 짧은 글을 보내는 서비스 ‘왈’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돈 되지 않는 일’을 했다. 또 일 년이 지났고 퇴직금이 다 떨어졌다. 함께 시작했던 옆 팀은 다음 투자를 받고 더 넓은 공간으로 옮겨갔다. 성공, 성장 그리고 돈에 대한 압박은 거머리처럼 딱 달라붙어서 남은 힘을 다 뽑아먹고 있었다. 이러고도 네가 살 수 있을 것 같아? 하고 교활하게 웃는 것 같았다.



*이 글에서 마음을 ‘먹는다'는 표현은 마음을 ‘돌본다’의 은어로 활용했다



문제해결보다 마음회복이 우선


실패했다. 외부상황에 대한 실패보다 내 안을 돌보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6명이었던 팀원들은 이제 2명만 남았다. 어두운 집에 들어가면 불도 켜지 않고 밤새 울었다. 우울증이라고 했다. 몇 년, 아니 몇십 년간 마음을 아무렇게나 대한 결과였다.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쳐버린 이 쑥대밭을 눈 딱 감고 지나갈 마음의 힘이 하나도 없었다. 심리상담 8개월, 약물치료 10개월, 그리고 명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몸을 단련할 때면 유산소 운동도 하고 무산소 운동도 하고 식단조절도 하듯, 마음을 단련하는 여러 가지 솔루션을 한꺼번에 시작했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효과는 서서히 또렷하게 나타났다. 문제 해결은 완전히 되지 않았지만 어떤 외부적 상황에도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 끊임없이 넘실대는 파도가 있는 바다에 있는 건 전과 같은데, 이제 서핑 보드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문제해결보다 마음의 회복이 우선이에요.” 당시 만났던 상담심리전문가 김지연 선생님이 해준 말이 맞았다. “네. 정말이네요” 하고 늦은 대답을 보냈다.



마음 먹은 후


명상은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헬스장 가듯 방석에 앉는다. 매일 매일 마음을 단련하는 방법으로는 명상이 최적이다. 무슨 생각에, 어떤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아차린다. 감정과 나를 분리하는 연습을 한다. 나를 압도하는 감정을 미워하지 않고 다정하게 대한다. 외부 조건들에 평정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평정을 만들고 유지한다. 사실 하루라도 빠지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하며 비틀거린다. 하지만 마음이 쉬는 작은 방이 하나 있으니 전보다 불안이 덜하다.



3년 전보다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마음단련장 다음 달 월세를 조금 미뤄서 내도 되겠냐 하고 주인할머니께 몸을 낮추어 전화하기도 한다. 그래도 아주 불행하지는 않다. 변화무쌍한 외부 상황에 직격탄으로 맞지 않는다. 약간 비껴간달까. 대일밴드 살짝 붙여둘 정도랄까. 이럴 때를 대비해 마음을 단련하니 이럴 때 마음이 나를 가장 많이 돕는다. 작은 씨앗에서 시작한 나무를 충분히 클 때까지 돌보고 또 돌보니 이제는 나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마음 나눠 먹기


프리허그 대신 프리멍상**. 지난 달부터 왈이의 마음단련장에서 ‘프리멍상’을 시작했다. 무료로 4주 간 명상을 배울 수 있는 기회다. 4주가 지나면 자신이 느낀 만큼, 다른 사람도 이 평정심을 단련하길 원한다면 기부금을 내면 된다. 2019년 6월에 처음 시작한 프리멍상은 기부금으로 7월에도 순조롭게 열렸다. 7월 초인 지금, 8월 모집도 마감 직전이다. 공짜로 명상 수업을 연다고 했을 때 받은 질문은 두 가지로 추려진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살아요?” “아 단체 후원 받으셨나봐요.” 프리멍상은 어떤 단체의 후원도 없다. 밀레니얼 세대가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서로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독립 프로젝트다. 진짜 커뮤니티는 이런 게 아닐까 한다.



7월 첫 수업을 열면서 북극 펭귄의 허들링을 문 앞에 붙여두었다. 영하 30도의 강추위 북극에서 어린 펭귄들이 서로를 안아주고 있는 사진이다. 자리를 바꿔가며 바람을 막아주고 온기를 나눠준다. 그들은 이 세찬 바람이 지나가면 함께 물속에 뛰어들어 신나게 놀 것이다. 그러다 다시 더한 바람이 와도 당황하지 않을 거다. 서로에게는 서로가 있으니까. 왈이는 그런 커뮤니티를 꿈꾸며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다.



“잘 먹고 살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한테 거짓말은 안한 것 같다. 마음 잘 먹고 사니까 커피 몇 잔 못 먹어도, 옷 몇 벌 못 사도 괜찮다. 3년 전에 나를 괴롭힌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여기인 것 같아요, 언제까지나 계속 이렇게 살고 싶어요, 내가 원한 건 이런 거예요, 마음 잘 먹고 사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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