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침대 커플이 새벽 댓바람(3:30AM) 부터 요란하게 짐을 싸는 바람에 일찍 눈을 떴다. 8인실에서 수면권을 주장하기란 쉽지 않다. 헤드랜턴까지 켜두고 부스럭대는 그들은 나머지 침대 6개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큼지막한 배낭에 옷을 넣고, 침낭을 넣고, 알 수 없는 비닐봉지도 넣고, 심지어 노트북도 넣는다. 히말라야에 노트북을? 그러는 동안 곤히 잠든 내 밑 침대 청년의 코골이가 잔잔하게 들렸다. 내쉬는 숨에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인상적인 침대에서는 뒤척일 때마다 오래된 고택의 마룻바닥을 밟을 때와 같은 소리가 났다. 짐 싸는 소리와 코골이, 그리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어우러진 모습에 웃다가 졸다가 두어 시간을 보내며 아침을 시작했다.
7시에 라잔과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아침 먹을 여유가 있었다. 바로 앞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메리칸 스타일 조식을 시켰는데 30분이 지나도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손님은 나 혼자였다. 언제 나오냐고 물었더니 금방 된다고 함박웃음을 짓고는 15분이 더 지나서 기어이 갖다 줬다. 45분 동안 구운 베이컨의 맛은 평범했다. 엄청난 양을 허겁지겁 삼켜대는데 라잔이 택시에서 내려 숙소 골목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손을 흔들었지만 나를 보지 못했다. 반도 못 먹었는데 약속시간이 되버린 터라 대충 삼키고 남은 음식은 포장을 부탁했다. 아차차. 혹시 또 오래 걸릴까 싶어 직접 쌀 테니 호일을 갖다달라고 했더니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봤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로비에 앉아있는 라잔은 전 날처럼 두 손 모아 내게 인사를 건넸다. 45리터 배낭을 그에게 맡기는데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가 내 배낭에 그의 배낭까지 묶어 메고 있으니 안 그래도 작은 체구가 더 가냘 퍼 보였다. 내가 지불하는 일당 2만 5천원이 과연 그의 어깨에 실린 고난에 합당한 금액일까? 걱정하는 나의 눈초리를 가볍게 무시하며 새 같은 다리로 번쩍 일어나 성큼 앞장 서는 그를 따라 나섰다. 일정이 긴 날이었다.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에 들렀다가 딸까지 지프를 타려고 계획했다. 서울에서 대구 정도의 거리지만 덜컹거리는 차로 네팔의 열악한 왕복2차선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으므로 체감은 서울에서 모스크바를 가는 기분이었다. 카트만두 버스터미널로 가는 택시 안에서 이미 그 날의 예고편을 봤다. 택시 유리창이 더러운 건지 카트만두 시내 공기가 좋지 않는 건지 아님 둘 다인지 뿌연 공기를 헤치고 달리는 동안 길에는 주인이 없었다. 내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될지니. 깜빡이도 없었다. 차머리를 들이밀면 만사 오케이. 차들은 계속해서 경적을 울리고 나는 몇 번을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르겠지만 신기하게도 사고 한번 없이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공터에 택시가 도착하고 호객꾼들이 창문에 들러붙는다. BGM은 레이디가가의 파파라찌. 헐리웃 스타는 이런 기분이겠다. 흙카펫을 밟으며 내린 내 얼굴에 티켓들을 흔들어대는 사람들. 라잔에게도 바짝 붙어 쫓아가던 호객꾼들은 미리 구매해둔 버스티켓 부적을 꺼내 흔드니 약속이라도 한 썰물처럼 사라진다. 숙소에서 버스터미널까지 택시비 300 루피. 카트만두에서 베시사하르행 버스는 라잔 것까지 해서 940 루피. (네팔 환율은 0하나를 더 붙이면 얼추 맞는다. 100루피에 1000원 이런 식으로.) 현지인과 외국인 가격이 다르며 가격은 언제나 유동적이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가격들은 현실과 달랐다.
버스의 출발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람을 일정 수준 이상 채워야 가는 시스템으로 딱딱 맞는 여행 일정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빈자리 없이 꾸역꾸역 밀어 넣은 채로 출발한 버스는 휴식도 하차도 식사도 기사 마음대로였다. 앞에 앉은 귀여운(엉큼한) 네팔 할아버지가 6시간의 운행시간 동안 4시간을 날 향해 뒤돌아보며 웃으며 내 손을 잡으려고 애썼다. 같이 탄 손녀 옆구리를 쿡 찔러 단어 하나씩을 배워 mountain 이니 river니 내게 계속 말을 건네다가 결국 라잔에게 제지당했다.

포장을 하다만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심하게 덜컹거렸다. 좌석은 낡을 대로 낡았고 에어컨 같은 하이 테크놀로지는 없었다. 기사는 승객들이 더 이상 몸을 구길 수가 없을 때까지 달리는 중간에 어디서든 멈춰 서서 타겠다는 손님을 흔쾌히 태웠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자리가 없으면 바닥에 앉아가고, 부대끼기가 출퇴근 지하철 같았지만 분위기만큼은 금요일의 홍대거리 같았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은 오랜만에 동네잔치에서 만나 회포를 풀 듯 6시간 내내 웃으며 떠들었다. 중간에 내리고 타며 멤버가 바뀌어도 유지되던 그 분위기는 정말 놀라웠다. 심지어 공기도 텁텁한 좁은 버스 안에서 말이다. 그 순간 비좁은 퇴근길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한다며 내 얼굴을 고의로 치고 내려버린 중년 아저씨가 떠올랐다. 가득찬 사람들 사이로 내린 탓에 화내러 쫓아가지도 못하고 벙 쪄 있었던 그 날의 기억. 부대낌으로 치면 다를 바 없었고 오히려 에어컨 덕에 한국의 지하철이 쾌적했을텐데 두 공간의 분노 게이지 차이가 인상적이었다.

기나긴 운행 동안 휴게소에 들리는 시간도 당연히 정해져 있지 않아서 물 한 모금 마시기도 조심스러웠다. 물론 요청하면 언제든 차를 세우고 고속도로에서 노상방뇨를 권장했겠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내린 휴게소에서는 소박한 간이식당과 매점, 화장실이 있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승객들은 모두 달밧(네팔 백반)을 먹었다. 손으로. 할아버지……. 아까 나랑 악수했는데 아침 먹은 손이었나요. 달밧은 대표적인 네팔 음식으로 밥과 카레, 채소절임과 달 수프를 기본으로 집마다 한두 개 반찬을 더 얹는 한 그릇 요리다. 나는 익숙한 차우메인(중국식 볶음면)을 시켰다. 90 루피. 900원이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가격인가. 맛은...3일 치 권장 소금 양을 다 넣은 맛이었다. 사해에서 헤엄치다가 물을 먹으면 이런 맛이겠거니. 쿠션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좌석에 앉아 미세먼지 재난 문자 발송이 올 것 같은 뿌연 공기 너머 희미한 설산의 흔적들을 찾아봤다.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차우메인이 잔뜩 불어나는 것 같았다. 마이크로버스는 이번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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