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한번 해볼까] 1회

문학 / 이수민 / 2019-11-03 16:31:57
여든 번의 소개팅
사진: 영화 [Her] 스틸


소개팅은 애증의 단어다. 필요악, 귀차니즘, 어색함, 정적, 강남역...생각나는 것을 죽 써보니 뭐 하나 좋은 게 없다. 귀찮고 싫은데 안 할 순 없고. 또 막상 그마저도 끊기면 불안해지는 게 소개팅이었다. 생전 첨 보는 이성과 얼굴 맞대고 파스타 먹으며 "여행 좋아하세요?" 같은 뻔한 질문을 주고받는 행위. 이런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주말에 소개팅하러 갈 때마다 꼰대 팀장이랑 주말 워크샵으로 등산 가는 게 더 낫겠단 생각이 들었었다.




토요일 오후. 강남역 5번 출구나 11번 출구 앞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처지였다. 운명적인 만남(그런 건 없다)과 이성의 선택을 기다리는 처지.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오늘 나의 파트너와 접선해 매드포갈릭에서 밥을 먹는다. 양 옆이 다 소개팅 테이블이라(싫다!) 일부러 목소리 낮춰가며 서로 공통점을 찾기 위한 대화를 이어가다가, 남자가 밥 샀으니 커피는 내가 사야한다는 의무감에 커피까지 마신다. 밥 먹고 커피까지 마셔도 시계를 보면 2시간이 채 지나 있지 않았다.



극장에서 마블 영화 볼 땐 3시간이 30분 같은데 소개팅은 체감 시간이 어찌나 긴지. 그래도 이걸 안 하면 이성 만날 기회가 없다는 게 참 딜레마였다. 누가 소개팅 할래? 하고 물어보면 우선 2초 정도는 기분이 좀 좋았다. 내가 아직은 소개팅 시장에 내놓을 만한 상품이로구나 하는 으쓱함과, 누군가 나를 좋게 봐줬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연락처 교환하고 이모티콘 섞인 카톡 몇 번 주고받다 보면 '아, 이번 주말도 이 쓸모 없는 짓에 할애해야 하는구나'하는 짜증과 우울감이 밀려왔다.



물론 소개팅에서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난 적도 있었다. 나는 결혼 전까지 50번 보다는 분명 많고, 100번 보다는 적은 횟수의 소개팅을 했다. 어림잡아 80번 정도 한 것 같은데, 이중 맘에 드는 이성이 한 명도 없었을 리는 없다. '이 남자다!' 싶은 사람은 없었지만 '이 정도면 괜찮네' 싶은 사람들은 꽤 있었다. 문제는 내가 상대에게 호감을 느끼면 상대는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거였다.




나의 이성으로서의 매력도를 7점이라고 치면, 나는 보통 8점이나 9점 정도의 남자들에게 끌렸다. 나는 나보다 매력도가 높은 사람들에게 끌리는데, 그들은 부족한 나에게 끌리지 않았다. 애프터를 신청하는 사람들은 7보다 낮은 매력도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소개팅 애프터의 메카니즘은 수학 공식처럼 정확했다.



지난한 과정은 생략하고 결론으로 직행하면, 나는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다. 6수 만에 대학에 합격한 기분이었다. 시험을 치고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이번 생에 합격은 없겠다는 냉소와 절망이 마음 깊이 자리잡았을 때였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남자라면 저 사람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와 비슷한 외모와 성격, 스팩, 커리어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나와 남편은 이성으로서의 매력도가 비슷했다. 과목별 점수는 다르지만 평균 점수는 비슷한 두 남녀의 조합이었다.




결국 소개팅으로 인연을 만났으니 그동안의 삽질이 무의미했다고 말하긴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에게 소개팅을 적극 권하고 싶지도 않다. 나처럼 여든 번의 소개팅을 참고 하려면 이성과의 만남이 간절해야 하고, 비혼주의자가 아니어야 하고, 운명적인 상대와의 불꽃 튀는 로맨스는 나에겐 해당 사항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만약 저 조건에 부합한다면, 소개팅이라는 어색하고 귀찮은 만남을 열심히 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언젠가는' 나와 맞는 사람이 이 매력 없는 게임에 등 떠밀린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뮤즈: 이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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