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쎄 말이야, 내가 A브랜드 접시로 플레이팅한 사진을 올렸었는데 B가 똑같은 그릇을 사서 올린 거 있지? 이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야.”
친구는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의 B가 어쩐지 자신의 취향을 그대로 카피하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그 기분이 영 좋지 않다는 거다. 인플루언서의 감정으로 바라보면 어떻겠느냐고 조언했지만 친구는 그것과는 묘하게 다르다고 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서로 아는 사이인 데다 서로의 피드에 게시물이 올라오면 보게 될 거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알면서도 그런다는 걸 생각하니 어딘지 모르게 기분이 더 나쁘다는 거였다. 듣다보니 나 역시 살금살금 친구의 기분에 공감이 되기 시작했다.
B는 인스타에 친구가 올렸던 접시로 플레이팅을 해서, [내가 애정하는 무화과. 비스듬히 잘라서 아끼는 접시에 올렸더니 그림이네.] 라는 식으로 자신의 본투비 취향인양 내건다고 했다.
“음... B가 그 접시를 이미 사용하고 있던 건 아닐까?” 하고 묻자 친구는 대답했다.
“속도가 언제나 나보다 늦어.”
오래전, 인상 깊게 본 강의 하나가 있었다. 저널리스트, 요한 하리의 테드 강의였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독에 관한 대부분이 틀렸음을 설명한다. 15분이 채 안 되는 강의에서 그가 말한 핵심은 교류였다. 강의 내용 중 그가 든 사례가 있다.
심리학 교수 브루스 알렉산더가 한 유명한 실험이라고 한다. 교수는 우리에 쥐 한 마리를 넣고, 물병 두 개를 넣었다. 한 병은 그냥 물이고 다른 한 병에는 헤로인이 들었다. 쥐들은 대부분 마약이 든 물을 선택한다. 그리고 망가져갔다. 교수는 결과를 보다가 고립된 쥐에게 선택권은 헤로인 밖에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는 실험 환경을 바꾸었다. 쥐공원을 만든 것이다. 쥐들에게 천국 같은 놀이 공간을 만들고, 충분한 치즈와 많은 친구를 넣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두 개의 물병이 주어진다. 물과 헤로인이 든 물병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쥐공원이 주어지자 쥐들은 헤로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충동적으로 복용하거나 남용하는 쥐도 없었다. 고립된 상태에서는 백퍼센트 남용하지만 교류가 있을 땐 중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한 하리는 말한다.
“우린 온갖 종류의 중독에 취약한 문화권에 살고 있다. 소통의 단절이 중독의 주된 요인이고, 단절은 늘어나고 있다. 분명 세상은 더 긴밀히 연결되었지만 지금의 교류는 그저 인간관계의 ‘흉내’일 뿐이다.”
그리고 중독의 반대말을 짚어주며 우리를 둘러싼 중독의 유혹을 이기는 답을 내린다.
“중독의 반대는 단지 맑은 정신이 아니다. 중독의 반대는 관계이다. 우리는 사회를 ‘쥐 공원’에 가깝기보다는 고립된 ‘쥐 우리’에 가깝게 만들었다. 내 삶 속 중독자들에게 그들과 더 교류하고 싶다고 말하라.”
친구가 내게 그릇 고민을 이야기학 얼마가 지났을 때, B에게서 디엠이 왔다고 했다. 자신이 올린 그릇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데 브랜드를 알고 싶어서 안부도 물을 겸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친구는 자신의 취향을 가져다 자신의 본투비 취향인 양 하던 B의 게시물이 정말 자신의 게시물에서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물증을 잡은 거였다. 그런데 디엠을 받는 순간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이 올린 그릇의 브랜드를 여러 개 알려주었다고 했다. 안부와 함께 물어온 B의 질문이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요한 하리의 강의가 명확하게 떠올랐었다.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에는 용납할 수 없지만, 안부를 묻는 사이엔 용납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그게 관계이고, 또 그 안에서 우리의 결핍이 채워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뮤즈: 라봉클럽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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