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껏 거드럭거리던 대학 생활을 졸업한 이후, 나의 소망은 언제나 일잘러, 그러니까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나름의 흔적을 남기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그려본 미래일 게다. 첫 직장에 입사한 때부터 시나브로 흘러간 7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일로 그득한 삶을 산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이 과정이 나만의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것이라 굳게 믿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쉼 없이 내달리던 사람도, 이쯤 되면 잠시 멈추고 신발끈을 고쳐 매기 마련이다. 그리고는 내가 뛰고, 걷고, 넘어지고, 거듭 일어서고, 또다시 달려온 길을 되돌아봤다. ‘왜 하필 지금?’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지금껏 일 해온 시간이 제법 묵직하게 느껴졌기 때문은 아닐지. 앳된 신입사원 티를 벗은 지는 오래고, 마음에 쏙 드는 일을 벌여보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시기, 그러나 그리 작지 않은 회사에서 만족할만한 권한을 쟁취하거나 책임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내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 내게 7년이라는 경력의 질량은 그 정도다.
이쯤 되니 마음 한켠에 불안하기 짝이 없는 의문이 자리 잡더라. 그래서, 나는 어지간한 경력만큼 일을 잘하는 사람일까. 이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할 이가 얼마나 되겠냐만, 적어도 애초에 마음먹었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발급하는 성적표에 연연하길 원치 않았고, 지인들의 북돋음은 성에 차지 않았다. 스스로 어림짐작하는 것 역시 썩 만족스럽지 않았고. 그래서 근래 시도해본 것이 ‘이직’이었다.
제딴은 자신감이 넘쳤다. 내 경력을 증빙해줄 이력서에 적힌 몇 줄의 정보보다는, 무던히도 애써온 지난날에 대한 믿음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 이런 낭만을 품고 평소 선망하던 몇몇 회사에서 지원했다. 하지만 묘한 안도감과 들뜬 마음, 약간의 긴장과 옅은 만족감이 뒤섞인 시간 끝에 남은 것은 찝찝함이었다. 이나저나 내가 일을 잘하냐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구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1년이든 7년이든 10년이든 ‘경력’은 일잘러의 증표가 되기엔 모자라다. 내가 속한 조직이나 이직의 성공 여부 역시 마찬가지다. 일해 온 시간의 길이를 재보거나 직함, 또는 연봉의 무게를 달아보는 것만으로는 일을 잘하는 이를 가려낼 수 없다. 이른 승진을 자랑하는 선배의 조악한 됨됨이, 사람 좋은 동료의 무른 일처리, 재기 넘치는 후배의 무책임함, 내가 저지른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들은 이력서에 담겨있지 않으니까.
이렇게 보면 ‘일하며 남긴 흔적’의 값을 후하게 쳐주는 것만큼 씁쓸한 일이 없다.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업무는 혼자가 아닌 같이하는 것이고, 어떤 사람이 흔적을 남기는 데 얼마큼의 힘을 보탰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이는 함께 일한 동료들이다. 그러니 언제나 ‘제 값’의 기준은 경력이 아닌 평판이어야만 한다. 시답잖은 인기투표의 승자가 아닌,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야말로 일잘러다. 정말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일터에서 가장 반가운 말은 단연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있는데, 같이 해볼래요?’다. 눈을 반짝이는 동료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래! 이거지!’라며 내적 쾌재를 부르곤 한다. 그 순간만큼은 그토록 바라던 일잘러가 된 기분이다. 물론 진짜배기 일잘러로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날 친구가 건네주었던,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이라는 책에 담긴 한 문장을 곱씹다 보면 언젠가 그곳에 닿을 것만 같다. “함께 있으면 각자에게서 최고의 것이 풍성하고 자연스럽게 쏟아져 나와 지금도 우리를 놀라게 하고 겸허하게 만든다.”
[뮤즈: 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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