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는 것만으로 괜스레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아련한 단어, ‘첫사랑’. 첫사랑을 주제로 한 무수한 작품과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결코 식상하거나 진부한 소재로 치부되지 않는 까닭은 그야말로 ‘세상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절대적인 요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와 성별, 문화권을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첫사랑. 오늘은 결코 공통점을 찾아내기 힘들 것 같은 두 연인의 첫사랑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강신재 작가의 단편소설 ‘젊은 느티나무’는 50여 년이 흐른 세월이 흐른 지금 읽어도 세련되고 간결한 문체가 돋보이는 것은 물론, 설레는 첫사랑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수작이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소설의 첫 문장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는 현재까지도 다양한 형태로 패러디되고 있는 명대사이기도 하다. “무얼해?”, “인제 오우?”, 등 다소 예스런 대사들을 통해 1960년대 시대적 배경이 고스란히 와 닿음에도 불구, 전반적인 인상이 요즘 연애 소설에 비교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듯한 이유는 바로 기가 막힌 소설적 구성에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숙희는 어머니의 재가로 인해 이복 오빠인 현규와 한 집에 살게 된다. 교내 퀸으로 뽑힐 정도로 어여쁜 외모를 자랑하는 숙희와, 명문대 물리학도이며 스포츠에도 뛰어난 현규. 둘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지만 숙희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그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감정을 갖게 된 자신을 책망한다. 그러던 중 현규의 친구에게 연애편지를 받게 되고, 그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된 현규의 입에서 또 하나의 명대사가 탄생한다.
"편지를 거기 둔 건 나 읽으라는 친절인가?"

늘 점잖고 침착하던 현규는 질투에 이성을 잃고, 그 모습에 숙희는 오히려 기쁨으로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는다. 그들의 미성숙하고 풋풋한 첫사랑이 어떤 결실을 맺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서로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리란 것은 분명하다.
이런 첫사랑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남자가 있다. 바로 영화 [45년 후]의 주인공 제프이다. 그는 아름답고 현명한 아내인 케이트와 45년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유지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멀리서 편지 한 통이 날아온다. 바로 수십 년 전 알프스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첫사랑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내용이다.

사실 첫사랑이 그토록 오래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단지 ‘처음이기 때문에’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너무나 미숙하고 어리석었기에 제대로 시도해보지도 못했던, 혹은 마무리 짓지 못했던 미완성의 기억이 그들을 더욱 아름답고 신비스럽게 만들어 주는 탓이 클 것이다. 프로스트가 선택하지 못한 길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듯이, 어찌 보면 첫사랑에 대한 환상은 내가 미처 끝내지 못한 미련에 불과하다. 그러니 그 환상을 적당히 양심껏 즐기되 지나치게 빠져들지는 않는 것만이 현실 속 또 다른 두 번째 미련을 만들어 내지 않을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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