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스:하리하리 작가]
너무 멀리 생각하지 말아라.
그것은 단순히 하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
임현 [고두]中
Simple is the best thing이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궁극의 아름다움은 곧 단순함이라고 한다. 오늘 시작한 인문학 스터디에서 느낀 차 맛의 질감과 다기의 순수함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말하는 단순미의 극치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오늘부터 인문학 스터디를 시작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아 바로 나의 최애 혼술집, 바라라 라디오에 와서 그것을 공유하려고 바로 노트북을 켰다.
내가 뜬금없이 인문학 스터디를 하기로 한 이유는 새로운 토양에서 전혀 다른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그것이 내 글의 깊이를 더해 줄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 스터디 외에도 역사 스터디, 글쓰기 모임 그리고 아름다운 가게 봉사활동 등 이전에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우후죽순처럼 신청했다. 그 새로운 나의 영역들 중 오늘 이 스터디가 첫 스타트였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알지만, 새로움을 접하기 직전에 심장 터지는 기분 잘 알 것이다. 어색한 감정, 스터디 장이나 카톡으로 몇 번 이야기 나누지, 그 외에는 완전히 처음 보는 것 아닌가? 다행히 나는 그 낯섦을 즐기는 타입이라 이런 새로운 환경에 어렵지 않게 발을 들이는 편이다. 이런 기질을 만들어 준 엄마, 아빠에게 개인적으로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우리가 모인 곳은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인사동의 찻집이었다. 사전에 어떤 식으로 스터디가 진행된다, 무엇을 주제로 얘기 나눌 거다 등 어떤 정보도 듣지 못한 채로 만나는 거라 뜬금없이 찻집이라고 해서 궁금했다. 가는 길에 생각해 보니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차와 친숙하지는 않다. 나 역시도 단골로 가는 술집, 바라라 라디오가 낮에 하는 카페, 다다랩 혹은 스타벅스(다이어리 받으러)에나 거의 가다 보니 커피와 자주 접하는 환경이지, 차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안 해 봤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으로 스터디에 들어가니 왜 이 사람들이 장소를 찻집으로 정했는지 알았다.
오늘 얘기 나눌 주제는 '옥색 찻잔'이었다. 일단 색깔과 명사를 조합해 제시어를 정하고, 그 제시어를 토대로 각자가 생각하는 바를 자료로 만들어 와 소소하게 생각을 나누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각자 전공인 미술, 영미문화, 사학 혹은 관심 있어 하는 영화까지 다양한 소재를 자신만의 관점으로 녹여서 간략하게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게 몽글몽글한 영감을 심어 주었다.
첫 번째 발표자는 영문학 전공자답게 영국의 차 문화를 주제로 했다. 영국에서 먹는 차 문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좋았지만, 특이한 것은 차와 함께 먹는 디저트, 오이 샌드위치였다. 실제로 오이 샌드위치와 차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소개해 주니 더욱 신기하게 들렸다. 오이 샌드위치에 열광하는 그들의 문화가 짐짓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세계 시민 아닌가? 그들의 열광하는 포인트를 집어내 훗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게 된다면, 그런 점을 활용한다면 더욱 영국에 밀착된 비즈니스적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전직 경영학도로서 들었다.
두 번째 발표자는 중국의 차 문화를 다루었다. 특히 자기가 요새 빠져 있는 중국 드라마 속에서 예외 없이 뚜껑이 달린 찻잔에 차를 담아 먹는 것을 보고 느낀 궁금증에서 오늘의 발표로까지 확장시킨 것이 인상 깊었다. 특히 미대 출신답게 차를 담는 그릇인 다기에 대해 한국과 중국을 비교해 가며 접근하는 내용 역시 흥미 있게 들었다. 추가로, 더 깨끗하게 차를 먹는 것을 목표로 사람들끼리 겨룬다는 풍습을 보고 흡사 요즘 누가 누가 더 술 잘먹나? 라는 것을 주제로 경쟁하는 (나를 포함한)현대인들의 치기 어린 경쟁이 떠올랐다. 물론, 차와 술은 영역이 완전히 다르다. 차 앞에서는 누구라도 예외 없이 경건해진다. 나도 명색이 찻집이다 보니 국화차를 시켜 보았는데 우려 나오고, 뜨거운 차를 후후 불어가며 먹으니 진심으로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요새 친하게 지내는 동생과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해 심도 있게 얘기 나누던 와중에 차를 마시니 그 공간 속에서만큼은 바깥에 있는 이들보다 더욱 느리게 사는 것 같고, 그 느림이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많아지게 만드는 것 같아 괜스레 기뻤다. 차를 먹으니 이런 소소한 기쁨도 얻고, 게다가 이런 발표를 들으니 그런 기쁨이 다시 한번 나에게 생생하게 피부로 와 닿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발표자는 고려청자를 주제로 다뤘다. 차 문화가 상대적으로 발달한 중국, 고려 말 이후 무자비하게 우리나라 도공들을 납치해 간 일본 두 나라 모두 차 문화가 발달해 있기 때문에 다기로 청자를 쓸 것임은 충분히 예측해 볼 수 있다. 역사 전공자답게 사료를 통해 중국에서 청자를 얼마나 높게 쳐 줬는지 확인시켜 줬다. 민무늬가 만들어내는 초기 청자의 오묘함, 조각을 덧붙여 만들어지는 후기 청자의 입체감 모두 좋았다. 좀 더 선호하는 것은, 단순함이 좀 더 극대화되어 있는 초기 청자였다. 고려의 수도가 개성이었다 보니 고려 문화의 뿌리가 대부분 북한에 집중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최근 남북 관계가 좋아지며 북한에 산재해 있던 고려의 유물들(청자 포함)이 대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획전으로 들어온다는 사실도 알았다. 혹시 시간 되는 분들은, 가 보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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