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측정 플랫폼 ‘SEE SV’ 연말 베타...경제간접 쏠림·환경 개선은 숙제
[소셜밸류=이국열 기자]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책임을 다하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화두로 등장한 지 오래다. ESG 경영은 실행 여부에 따라 기업의 생사가 갈릴 정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이에 소셜밸류(SV)는 기업의 ESG 전략과 실천 의지를 살펴보고, 지속가능한 기업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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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그룹 CI 로고 이미지/사진=SK 제공 |
기업의 '선한 활동'은 그동안 보도자료 속 미담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봉사 시간, 기부 금액, 수혜자 수가 성과의 전부였다.
SK그룹은 이 관행에 8년째 맞서고 있다. 사회에 기여한 가치를 매년 화폐 단위로 환산해 공개하고, 그 숫자를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사회적가치(SV) 측정’이다.
2028년부터 국내 대기업의 지속가능성(ESG) 공시가 법정 의무가 되고, 연말에는 인공지능(AI) 기반 측정 플랫폼이 베타 서비스를 시작한다. 국내 ESG 경영의 원조로 불리는 이 실험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 8년 만에 두 배...매출 1억원당 SV 1404만원
SK가 지난 6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그룹은 지난해 약 32조2000억원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했다. 첫 측정을 시작한 2018년(16조원)의 약 두 배이며, 누적 창출액은 155조원에 이른다.
분야별로 보면 고용·배당·납세 등 경제간접 기여성과가 31조8000억원으로 전년보다 6조2000억원 늘었다. 계열사 주력 사업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고용과 납세 성과가 확대됐다.
삶의 질 개선 제품·서비스, 노동환경 개선, 동반성장, 사회공헌 등을 포함한 사회성과는 3조4000억원이었다.
SK는 안전보건과 상생협력 분야에서만 약 1000억원의 가치를 추가로 창출했다고 밝혔다. AI 기반 스마트 안전 시스템을 확대하고 협력사의 기술 역량 강화를 지원한 결과다.
효율 지표도 나아졌다. 매출 1억원당 사회적 가치 창출액은 2023년 1058만원에서 지난해 1404만원으로 3년 새 33% 늘었다. 몸집만 커진 것이 아니라 같은 매출로 더 많은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 불리한 숫자도 공개...환경성과 -3조1000억원
SK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불리한 숫자도 감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환경성과는 -3조1000억원으로 전년(-2조9000억원)보다 부정적 영향이 커졌다. AI·반도체 제품 생산량이 늘면서 온실가스 배출 등 환경 부담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이 ESG 보고서에서 긍정적인 수치를 앞세우는 것과 달리, SK는 경영활동이 환경에 끼친 ‘비용’을 마이너스 숫자로 그대로 공개했다. 측정 산식과 관련 데이터도 외부에 공개해 다른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SK는 주요 계열사들이 전력 소모가 적은 고효율 장비를 도입하고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을 늘려 온실가스 배출 증가세를 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반도체 호황이 가져온 ‘성장의 그늘’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 측정에서 보상으로...사회성과인센티브 10년
SK식 사회적 가치 경영은 ‘측정’에서 끝나지 않고 ‘보상’으로 이어진다. 최태원 회장이 주창해 온 사회성과인센티브(SPC)는 사회적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한 성과를 화폐가치로 환산해 현금으로 보상하는 제도로, 올해로 10년째를 맞았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최 회장은 9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 개회사에서 “470여 개 기업이 5400억원의 사회성과를 만들어냈고, 보상을 받은 기업들의 매출도 35%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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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9월 2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대한민국 사회적가치 페스타’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SK 제공 |
이어 “사회문제를 풀어도 보상이 따라가는 시스템이 되면 경제적 이익과 사회성과가 함께 늘어나는 선순환 생태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생 분야에서도 구체적인 조치가 나왔다. SK그룹은 7월 2일 SK하이닉스·SK텔레콤·SK에코플랜트 등 7개 계열사와 100여 개 협력사가 참여한 ‘SK-1·2·3차 협력사 간 상생 협약’을 맺었다.
1차 중소 협력사에는 마감 후 최대 10일 이내에 대금을 지급하는 등 지급 기한을 줄이고 현금 지급 비중을 늘리기로 했다. 6800억원 규모의 그룹 공통 동반성장 펀드는 지원 대상을 2·3차 협력사까지 넓혔다.
◇ AI로 측정 문턱 낮춘다...SEE SV 연말 베타
다음 단계는 AI다. SK가 설립한 사회적가치연구원은 9월 22일 사회적가치 페스타에서 AI 기반 사회공헌(CSR) 측정·평가 플랫폼 ‘SEE SV’를 처음 공개했다. SK, 한국사회가치평가, 에이아이웍스, 애커턴 파트너스가 함께 개발했다.
SEE SV는 예산·사업 횟수·수혜자 수처럼 투입과 산출 위주였던 기존 CSR 평가에서 벗어나, 수혜자와 사회에 실제로 나타난 ‘변화’까지 측정하도록 설계됐다.
기획·실행·성과 3개 영역, 18개 세부 지표로 구성되며, 사회적 성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는 화폐화 측정도 제공한다.
AI가 근거와 판단안을 제시하면 사람이 검토해 최종 판단하는 ‘휴먼 인 더 루프’ 방식을 적용한 것도 특징이다.
연구원은 올해 말 베타 서비스를 열고, 기업과 비영리단체(NPO)가 참여하는 ‘CSR 성과 측정·평가 협의체’를 운영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적기업과 공공부문까지 활용할 수 있는 SV 측정·평가 허브로 키운다는 구상이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는 “이번 플랫폼 공개가 데이터의 필요성에 대한 단순한 인식을 넘어 사회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행동으로 나아가는 담대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2028년 법정공시...‘측정 역량’이 경쟁력
SK의 시도가 시의성을 갖는 이유는 공시 환경의 변화에 있다. 정부는 2028년(2027 사업연도)부터 연결자산 10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가 지속가능성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담도록 하는 법정공시 로드맵을 확정했다. 2029년에는 대상이 자산 5조원 이상으로 넓어진다.
EU는 올해 3월 옴니버스 개정으로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의 적용 대상을 줄였지만, 대형 기업에는 여전히 환경·사회 정보의 상세 보고를 요구하고 있다.
OECD 등 국제기구와 학계도 환경·사회적 가치를 계량화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규제의 속도는 조절되더라도, 비재무 성과를 숫자로 설명하는 역량이 기업 경쟁력이 되는 흐름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 경제간접 98.8% 쏠림...환경 개선이 다음 시험대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지난해 SV 총액 32조2000억원 가운데 98.8%가 경제간접 기여성과였다. 반도체 업황에 따라 고용·납세 성과가 흔들리면 총액도 크게 출렁일 수 있는 구조다.
환경성과의 마이너스 폭을 실제로 줄이는 것도 숙제다. 숫자를 공개하는 단계를 넘어, 그 숫자를 개선하는 실행력이 SK 사회적 가치 경영의 다음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최 회장은 페스타 개회사에서 “AI와 사회적 가치가 만나는 지점에 우리의 새로운 성장이 있다”며 “AI는 현상이 이렇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그 현상의 진짜 문제를 치유하는 것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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