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익과 사생활, 그 경계에서, 김건희 수용번호 유출을 보며

인물·칼럼 / 최성호 기자 / 2025-08-13 15:27:26

▲김건희 수용번호 유출을 보며/이덕형 칼럼
피의자 김건희의 수용번호가 유출되며 사회적 논란이 될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사안을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부부 동시 수감’이라는 상징성, 혹은 정치적 공방의 연장선에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이 침묵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여전히 취약함을 보여준다.


수용번호는 교정시설이 수용자를 식별·관리하기 위해 부여하는 고유 식별번호다. 법률상 명백한 개인정보이며, 그 공개는 당사자의 사생활과 인격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수용번호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수용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낙인과도 같다. 한 번 공개되면 인터넷과 기록 속에서 사실상 영구히 남아, 형기 이후에도 사회적 낙인과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피의자 김건희가 전임 대통령 배우자라는 ‘공인’이라는 이유로, 이런 민감 정보가 무단으로 공개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다. 공인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해도, 그 사생활과 존엄은 보호받아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명분이 모든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특히 형사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수용자의 인권은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영역이다.

유엔 ‘피구금자 인권 원칙’과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 모두, 수용자에 대한 존엄성 보호와 사생활 비밀 보장을 명시한다. 이는 권력자든 평범한 시민이든 차이가 없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정치권과 언론은 이를 외면하고, 정치적 이해득실에만 몰두했다. 야당은 ‘사필귀정’을 외치고, 여당은 ‘정치공작’을 주장했지만, 어느 쪽도 인권 침해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단지 한 개인의 명예 문제를 넘어, 공익과 사생활 보호 사이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우리는 누군가의 인권이 무너질 때 그 다음은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권은 정치의 무기가 아니라 민주사회의 최후 보루다. 필자 역시 학생운동 전력이 있고, 피의자 신분으로 수용번호를 받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훈장이겠는가? 아니다. 사회에서는 이것을 ‘주홍글씨’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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