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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고(故) 고촌 이종근 회장/사진=종근당 제공 |
이번 추모행사는 온라인으로 구성, 온라인 헌화, 추모사, 추모 갤러리, 추모 영상으로 추진했다. 이 갤러리에는 생전 모습과 음성을 복원한 홀로그램 영상으로 고인의 업적과 도전정신, 나눔의 정신 등을 담아 운영하고 있다.
종근당 김영주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원료의 약품을 국산화하고 신약 개발의 초석을 마련해 국민 건강에 기여하고 제약주권을 바로 세우셨던 회장님의 약업보국 정신을 이어받아 제약기술 혁신으로 현재의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고 인류가 질병에서 자유로워지는 날까지 제약 기업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것이다"고 다짐했다.
종근당고촌재단도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버추얼고촌홀'을 오픈했다. 버추얼고촌홀은 종근당 본사에 마련된 이종근 회장 기념관 '고촌홀'을 비대면으로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191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이종근 회장은 고사리, 칡뿌리를 뜯어 팔며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친 이택기(李宅基) 공(公)과 모친 신택순(申宅順) 여사와의 사이에 차남으로 태어났다. 한일합방의 망국적인 슬픔과 빈곤을 몸소 체험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이 회장은 13세에 서울로 올라와 서대문구 송월동 토막촌에 정착했다.
이어 1934년 화광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 생계를 잇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철공소 견습을 시작으로 쌀 배달에 이르기까지 가족 생계와 자신의 땀의 대가를 배워 가며 수많은 일을 전전했다.
그는 1935년 철공소 견습공과 스즈키 전기상회 사동, 1936년 경성정미소 쌀배달부를 거쳐 1939년 약품외판원을 하며 마침내 약과 인연을 맺었다.
1960~70년대 국내 최대 규모의 원료합성·발효공장을 설립해 100% 수입에 의존하던 의약품 원료의 국산화를 이뤄냈다. 1968년 국내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한 항생제 '클로람페니콜'을 일본, 미국 등에 수출해 한국 제약 산업의 현대화와 국제화에 업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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