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숨진 노동자에 ‘손해배상’…70대 노모에 책임 넘기나

자동차·기계 / 최성호 기자 / 2025-06-23 13:20:58
대법원서 정규직 판결 받은 고인에게 손배 청구 유지… “과잉 소송” 비판 확산
▲현대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파업 손배 대법 선고에 따른 금속노조 기자회견/사진=연합뉴스 제공/최성호기자

 

[소셜밸류=최성호 기자] 현대자동차가 과거 사내하청 불법파견에 맞서 정규직 지위를 인정받고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손해배상 책임을 유족에게 넘기기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망자에 대한 과잉 손배 청구”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23일 자동차 업계 및 법조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근 부산고등법원과 울산지방법원에 정규직 인정 판결을 받은 뒤 올해 1월 숨진 노동자 A씨의 ‘소송 수계 신청서’를 제출했다. 수계 신청은 소송 당사자가 사망했을 경우, 상속인에게 법적 책임을 넘겨 소송을 이어가는 절차다.

◇ 불법파견 투쟁 → 정규직 인정 → 사망 → 손해배상 상속?

고 A씨는 2003년부터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근무해왔다. 그는 2010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불법파견 철폐를 요구하며 진행된 비정규직노조의 파업에 참여했다. 파업으로 생산라인이 잠시 중단됐다는 이유로 현대차는 A씨를 포함한 파업 참가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1심 울산지법은 A씨 등 5명에게 2,300만 원, 2심 부산고법은 A씨 등 2명에게 3,700만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생산 차질이 실제 매출 손실로 이어지지 않은 경우 손해액 산정에서 제외돼야 한다”며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그 사이 지연이자 등으로 손배 총액은 약 1억7,700만 원까지 불어났다. 문제는 이 손배 책임을 현대차가 고인의 유족, 특히 70대 노모에게까지 청구하려 한다는 점이다.

◇“죽은 자에게도 고통을 넘기나”… 노동계 반발 확산

노동계와 시민단체는 현대차의 이 같은 조치를 두고 “인권적 감수성이 결여된 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시민단체 ‘손잡고’의 윤지선 활동가는 “대법원이 고인을 정규직으로 인정했음에도 손해배상 청구를 유지한 것은 판결의 취지와 맞지 않다”며, “망자가 사망했음에도 소송을 유족에게 넘기는 경우는 사실상 전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법적 절차에 따른 정당한 신청”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손해배상 청구는 회사 자산 보호 차원에서 어쩔 수 없는 절차”라고 전했다.

◇ 대법원 "정규직 맞다"… 손배 유지 논란
 

이번 사건의 핵심은 A씨가 대법원에서 이미 정규직으로 인정받은 노동자라는 점이다.2022년 10월 대법원은 A씨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정규직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즉, 파업 당시 ‘불법파견 상태’에서 스스로의 권리를 주장한 것으로, 정당성 있는 투쟁이었음이 사법부에 의해 확인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법원에서 정규직이라 해놓고, 정당한 권리 주장을 이유로 유족에게 손해배상을 넘기는 것은 모순"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론 악화·노조 재반발·ESG 경영 타격 우려

현대차는 최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내세우며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사망한 노동자에게까지 소송을 이어간다"는 부정적 인식으로 인해 ESG 실천과 이미지 사이의 괴리가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는 최근 잇따른 파업 예고 속에 사측과 갈등이 깊어진 상태다. 이번 사건은 노사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수 있으며, 국내외 투자자 및 소비자들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결 확정 전, 채권 보호 차원?

현대차가 법적 절차를 밟아 수계 신청을 한 배경에는, 정식 확정 판결 전까지 채권 포기 위험을 줄이려는 기업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A씨의 소송이 아직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고, 대법원 환송심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향후 판결에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면 상속인에게 이를 전가하기 위한 사전 조치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법리적 정당성과 별개로 사회적 상식선에서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유족, 특히 고령의 어머니에게 청구서를 들이민다는 방식 자체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 “노동자의 죽음조차 끝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노동 손배 가압류 제도의 맹점을 드러낸다.
불법파견으로 20년 넘게 비정규직으로 일해온 노동자가 정규직 지위를 법원에서 인정받았음에도, 투쟁의 대가로 유족에게 거액의 빚이 남겨지는 현실은 사회 정의와 법 정의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노동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망자에 대한 손배 승계 중단’, ‘손배가압류 제도 개선’ 등 입법적 해결을 촉구할 가능성이 크다. 독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단순한 노사 분쟁을 넘어, 기업의 윤리 경영, 노동권 보장, 사법적 정의에 대한 논란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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