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엔솔, 2조원 규모 ESS 입찰 불참…국내 저가 경쟁 대신 ‘북미 수익·에너지 솔루션’ 택했다

K-Biz. / 이국열 기자 / 2026-11-06 09:45:58
1·2차 단가 30원대→20원대 하락 속 3차 입찰 빠져… 3차 판세는 삼성SDI·SK온 ‘2파전’
북미 수주잔고 160GWh로 생산 여력 소진… SI·AI 운영·VPP 중심 ‘에너지 플랫폼’ 전환 속도

[소셜밸류=이국열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정부의 제3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앙계약시장 경쟁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회사는 지난 5일 “가격 경쟁을 통한 단기적인 물량 확보보다 ‘선택과 집중’을 바탕으로 사업 운영의 효율성과 중장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이번 결정을 ‘국내 출혈 경쟁에서 손을 떼고, 수익성이 검증된 북미와 솔루션 사업에 자원을 몰아주겠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 역대 최대 입찰, 한 곳에도 이름 안 올려

이번 3차 입찰은 총 1180MW(7080MWh) 규모다. 1·2차를 합친 것보다 크고, 사업 규모는 약 2조원으로 추산된다. 지난 4일 마감된 입찰에는 60여 개 컨소시엄이 참여했다.

 

전력거래소는 11일까지 최종 증빙서류를 받아 이달 중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할 계획이다. 선정 사업자는 2029년 2월까지 설비를 완공해야 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입찰에서 어떤 컨소시엄에도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 ‘팔수록 남지 않는’ 국내 단가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가격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앙계약시장 평균 입찰가격은 1차 때 kWh당 30원대였지만 2차에서는 20원대로 내려갔다. 2차 낙찰 단가가 kWh당 20원 아래까지 떨어졌다는 보도도 있다.

 

중앙계약시장은 사업자가 써낸 가격으로 장기간 수익을 정산받는 구조다. 계약가격이 낮아지면 사업자는 배터리 조달비와 건설비를 줄여야 하고, 그만큼 배터리 제조사도 납품가를 낮추라는 압박을 받게 된다.

 

업계에서는 1·2차 입찰가격이 국내 배터리 3사가 미국에서 받는 ESS 판매가격과 비교해 사업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2차 입찰 이후에는 배터리 3사와 협회를 중심으로 출혈 경쟁을 막을 제도가 필요하다는 논의도 나왔다.

 

◇ 북미에 생산 여력이 묶였다

국내 시장보다 수익성이 좋은 수요처가 이미 생산 여력을 채우고 있다는 점도 컸다. LG에너지솔루션은 3분기 콘퍼런스콜에서 ESS 수주잔고가 160GWh라고 밝혔다. 계획된 생산능력을 기준으로 2028년까지 북미 생산 물량 대부분을 확보했다는 설명이다.

 

북미 ESS 생산능력은 올해 말 50GWh 이상, 내년 말 70GWh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과 ESS 직접 공급계약을 맺어 고객을 새로 확보하기도 했다.

 

실적도 이 전략을 뒷받침한다. 3분기 매출은 9조6434억원, 영업이익은 756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59%, 25.7%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 CI 이미지/사진=LG에너지솔루션 제공
 

매출은 분기 기준 역대 최대다. 이창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 3일 실적설명회에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강화하여 제한된 자원으로 사업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생산 여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국내 저가 물량을 받으면, 마진이 높은 북미 물량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이 생긴다는 계산이다.

 

◇ 줄어든 점유율과 파트너 결별

국내 중앙계약시장에서의 입지도 1차 이후 계속 좁아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1차에서 전체 563MW 중 135MW(24.2%)를 확보했지만, 2차에서는 565MW 중 79MW(14.0%)에 그쳤다.

 

1차는 삼성SDI가 75.8%, 2차는 SK온이 50.3%를 가져갔다. 1·2차 누적 점유율은 삼성SDI 56%, SK온 25%, LG에너지솔루션 19%다.

 

2차 때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사모펀드 KKR과 합작법인 코리아기가플랫폼(KGP)을 세워 반격에 나섰지만, 성과는 해남 79MW 한 건이었다. 3차를 앞두고 양측 협상은 이견으로 결렬됐다.

 

KGP는 SK온과 손잡고 이번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수익성을 걱정한 LG에너지솔루션과 신규 물량이 필요했던 파트너의 이해관계가 엇갈렸다는 분석이다.

 

◇ 셀 공급사에서 에너지 플랫폼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제시한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업 모델을 셀 판매에서 시스템 통합(SI), AI 기반 운영, 가상발전소(VPP)로 넓히는 것이다.

 

회사는 2024년부터 제주에서 배전망 연계형 ESS와 VPP를 운영해 왔다. 지난 7월에는 신한자산운용과 ‘햇빛배전망에너지’ 컨소시엄을 꾸려 ‘AI 활용 배전망 ESS 구축 지원 사업’ 운영사업자로 선정됐다.

 

이 사업으로 호남권 7개 배전선로에 140MWh 규모 ESS를 구축하고, 2027년부터 20년간 운영한다. 140MWh는 운영사업자 한 곳이 확보할 수 있는 최대 물량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공급과 설비 구축, AI 운영을 맡고 신한자산운용은 금융 구조화를 담당한다. 북미에서는 SI 법인 버테크(Vertech)가 설계부터 설치, 운영·유지보수까지 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입찰 경쟁이 단가 싸움이라면, 운영 사업은 20년 동안 발전량 예측과 충·방전 최적화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가격 경쟁보다 기술과 운영 역량이 수익을 좌우하는 영역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차세대 제품으로 원가 경쟁력을 다시 확보하는 것이다. 회사는 오창 에너지플랜트에서 ESS용 소듐이온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올해 안에 샘플 생산을 시작하고 2027년 북미 고객사에 시험용 제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리튬인산철(LFP)에 탭리스 기술을 적용한 2170 원통형 배터리는 2027년 상반기 양산이 목표다. 회사는 소듐이온 배터리 등 차세대 제품으로 4차 물량 이후를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의 LFP 단가로는 국내 저가 입찰에서 승산이 낮지만, 원재료 비용을 낮춘 제품으로 다시 들어오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 ESS 경쟁입찰 불참은 선택적 전략

회사는 지난 5일 이번 불참이 국내 ESS 사업 축소나 투자 축소를 뜻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국내 1위 배터리사가 정부 핵심 ESS 조달 시장에서 스스로 빠졌다는 사실은 중앙계약시장 제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 결정이 “중앙계약시장의 문제로 제기돼 온 과도한 가격 경쟁과 수익성 저하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결국 LG에너지솔루션이 4차 입찰에 돌아올지는 세 가지에 달려 있다. 정부가 가격 중심의 평가 구조를 얼마나 손보는지, 북미 생산 여력에 언제 여유가 생기는지, 소듐이온 등 저원가 제품이 언제 상용화되는지다.

 

이번 불참은 국내 시장 철수라기보다 ‘조건이 맞을 때 다시 들어가겠다’는 선택적 참여 전략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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