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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 중인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사진=연합뉴스 제공/최성호기자 |
[소셜밸류=최성호 기자] 콜마그룹 창업주 윤동한 회장이 장남 윤상현 부회장을 상대로 지분 반환 소송을 제기한 배경에는 단순한 ‘가족 내 갈등’ 이상의 한국식 가계(家系) 승계 구조의 허점이 존재한다. 이 사건은 오너 일가 내부 합의만으로 설계된 승계 구조가 시장과 법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분석된다.
윤 회장은 지난 2019년 12월, 장남 윤상현 부회장에게 콜마홀딩스 주식 230만주를 증여했고, 이후 무상증자로 이 지분은 현재 460만주로 늘었다. 이는 콜마홀딩스 지분의 31.75%에 해당하며, 윤 회장은 5.59%, 차녀 윤여원 콜마비앤에이치 대표는 7.45%를 각각 보유 중이다.
윤 회장은 이 지분을 반환해달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그 배경에는 지난 2018년 윤 회장이 자녀들과 맺은 이른바 ‘3자 합의’가 있다. 해당 합의는 장남이 콜마홀딩스와 한국콜마를, 차녀가 콜마비앤에이치를 맡으며 각자의 경영권을 존중하되, 그룹의 경영 안정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윤상현 부회장이 콜마비앤에이치의 이사회 개편을 시도하고, 본인과 외부 인사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려 하면서 ‘경영 간섭’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윤여원 대표 측은 “콜마비앤에이치는 실적 반등을 시작한 시점에, 돌연 과거 실적 부진을 이유로 경영 교체를 추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콜마비앤에이치는 2023년 실적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약 15% 감소했으나, 2024년 1분기 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8.7% 증가하며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주가는 2023년 고점 대비 약 40% 하락해 여전히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분은 감정이 아닌 계약”…가계승계 구조의 리스크
콜마 사태의 본질은 ‘지분’과 ‘경영권’의 경계가 흐려진 데 있다. 창업주가 자녀들에게 지분을 증여하면서도 구두 합의나 가족 간 신뢰에 기반해 ‘역할 분담’을 설계하는 방식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법적 효력을 입증하기 어렵다.
이는 CJ그룹 이재현 회장 남매 갈등,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전 총괄과 조카 이성수 대표의 충돌 등과 유사한 맥락이다. 한국 재벌 승계는 종종 “지분 증여 → 비공식 합의 → 권한 충돌 → 갈등 심화 → 법정 분쟁”이라는 경로를 반복하고 있다.
콜마홀딩스는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콜마비앤에이치의 최대주주로서 지분 약 45%를 보유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경영 간섭이 가능한 형태다. 지배력은 유지하면서 자율경영을 보장하겠다는 선언은 현실과 충돌한다.
◇한국식 승계, 왜 반복해서 실패하는가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이 승계를 가족 간 합의와 정서에 의존해 설계하는 한, 구조적 리스크는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 재계는 ▲창업주 중심 집중 경영, ▲자녀 지분 증여, ▲지주사 중심 구조, ▲공식 승계 절차 부재, ▲형식적 이사회 운영이라는 5단계 문제 구조를 반복해왔다. 글로벌 기업이 투명한 CEO 후보군 육성과 이사회 중심의 권한 분산을 시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윤 회장은 창립 35주년 행사에서 “역할 분담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지만, 2주 뒤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은 중재 실패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는 창업주 본인의 의지보다, 구조적 장치의 부재가 더 큰 문제였음을 방증한다.
◇가족이 곧 경영이 될 수는 없다
콜마가 당면한 사태는 단지 한 가족의 갈등이 아니다. 이는 “지분은 주되, 권한은 제한하겠다”는 한국식 가족 승계의 환상이 무너지는 장면이다. 지분은 감정이 아닌 계약이며, 승계는 신뢰가 아닌 제도와 시스템으로 보완되어야 하는 법적 구조다.
지금 필요한 건 단순한 중재가 아니다. 한국 기업들이 반복하는 가계 중심 경영의 구조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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