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까지 7일 x 스틸 앨리스
‘어머니’. 단 세 글자만으로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그 단어, 아낌없는 사랑과 헌신의 상징이자 메말라버린 감수성조차 일깨우는 그 존재. 상상하기조차 싫겠지만 어느 날 만약, 내 어머니가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면 어떻겠는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족의 중심이자 가정을 지탱하고 있는 이가 바로 어머니라는 점은 변함없나 보다. 한 일본 소설과 미국 영화 속에서 그려진 어느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을 살펴보자.
[출처: Google Art&Cluture]
먼저 소설 [이별까지 7일] 속 가정주부 레이코는 잦은 기억상실증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유명 가수나 사물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더니, 급기야는 가족의 얼굴까지 일시적으로 알아보지 못한다. 결국 병원 진단 끝에 심각한 뇌종양을 판정받는 그녀.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7일. 온갖 빛과 마음고생에 시달리게 만든 무능력한 남편 가쓰아키, 우울했던 학창 시절과 달리 대기업에 취직해 곧 아이를 낳을 예정인 큰아들 고스케, 방황하며 늘 손만 벌리는 작은 아들 슌페이. 사실상 무너져 가고 있던 한 가정은 엄마의 병환으로 인해 다시금 제자리에 모이게 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변해버린 엄마. 그제야 세 남자는 레이코가 혼자 끌어안고 있던 가정의 어두운 그림자와 대면하게 된다. 밀린 빛은 산더미고, 가족 간에 진솔한 대화가 끊긴지는 오래다. 오직 엄마 혼자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가며, 모래성처럼 부서져가는 그녀의 가족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다. 세 남자가 레이코를 구하기 위해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일주일은 그들 가족 자신을 구하는 일과도 다름이 없다.
[출처: Google Art&Cluture]
한편 영화 [스틸 앨리스]의 어머니 앨리스는 갑작스럽게 희귀성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다. 완벽한 엄마이자 아내, 교수이기도 한 그녀는 자신이 쌓아왔던,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이 사라져 간다는 커다란 공포감과 마주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저명한 언어학자인 자신의 경력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든든한 지지를 바탕으로 지워져 가는 삶과 꿋꿋이 맞서 싸운다. 하지만 늘 가던 길도 잃어버리고 쉬운 단어 하나도 제대로 읽지 못하기 시작하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은 힘들기만 하다. 사랑하는 아내, 현명한 엄마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하는 가족들에게도 그것은 똑같이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앨리스는 스스로의 모습을 잃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여전히 자기 자신’, ‘여전히 앨리스’ 임을 잊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그렇기에 그녀의 모습은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안타까우면서도 숭고하다.
[출처: Google Art&Cluture]
흥미롭게도 [이별까지 7일] 역시 영화화되어 국내 개봉한 바 있으며, [스틸 앨리스] 역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두 작품이 모두 눈물샘을 자극하는 뭉클한 감동, 그리고 잊혀 있던 가족애를 일깨워준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하지만 사실 둘 중 한 작품을 보며 다른 하나를 떠올리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병환’이라는 동일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 사실 둘은 어쩌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전라북도 교육청 공모전 동시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이별까지 7일]이 ‘거품경제 속 붕괴된 일본의 한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스틸 앨리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한 여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동양의 전형적인 가정주부인 레이코에 비해 앨리스는 사회적으로도 높은 명성을 쌓은 커리어 우먼이다. 레이코의 가족은 병원비 마련하기도 급급하지만 앨리스는 평화로운 요양지에서 해변가를 거닌다. 물론 어떠한 부와 명성이라 한들 병마 앞에서 무용지물인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두 작품을 곱씹어 비교해볼수록 어쩐지 씁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레이코, 그녀의 유일한 소원은 ‘행복한 가정을 갖는 것’.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아있길 간절히 바랐던 앨리스와 달리 가족에 자기 자신을 묻어버린 레이코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어머니들과도 똑 닮아 있어 마음을 더욱 아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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