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베시사하르에 도착했다. 쉬는 시간까지 합해 7시간쯤 걸렸다. 처음 두어 시간은 화수분처럼 솟는 유쾌함에 함께 웃었지만 날리는 흙먼지와 뻣뻣한 좌석에 미소는 점점 사라져갔고 30년 후 미래의 내가 낼 법한 앓는 소리가 이따금씩 튀어나왔다. 기사 아저씨가 외치던 ‘베시사하르! 베시사하르!’어찌나 반갑던지. 무감각해진 허리를 부여잡고 내리는데 지프차 기사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었다. 호객행위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긴 올까. 지프로 갈 수 있는 도로가 꽤 길어져서 베시사하르에서 하루에 차메, 마낭까지도 간다고 하는데 나는 네팔에 걸으러 오기도 했고 시간 여유도 있어서 그럴 필요는 없었다. 평온한 얼굴의 라잔은 베시사하르에서 하루 자고 가는 걸 권했다. 첫 날부터 일정을 늘리는 잔꾀를 부리려 하다니! 못 들은 척하고 기사에게 가격을 묻는데 딸 마을 까지 6000루피를 부른다. 블로그에서 2500루피에 타고 갔단 글을 기억하고 따졌다.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 올리며 비수기라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 가격은 네 명이 탈 때의 각자 가격이고 넌 혼자 가지 않느냐고. 묘하게 설득력 있었다. 눈알을 굴리며 고민하던 내게 지프차 기사가 큰 선심이라도 쓰는 듯 부르는 ‘샹게까지 1500 루피’에 바로 승낙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청 바가지! 가이드북에는 성수기 기준 500루피라고 했다.) 결국 첫 날 부터 세웠던 일정에서 하루가 늘어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타고 온 마이크로버스와 좌석이 별반 다르지 않았던 지프는 출발한지 10분도 안돼서 이 집 저 집을 들리더니 현지인들을 셋이나 더 태운다. 이건 또 무슨 상황. 편하게 갈 줄 알았더니 네팔은 정말 아무것도 내 맘대로 안 된다. 그 김에 마을 구경하는 거지 뭐.
베시사하르는 ACT(라운딩) 트래킹의 시작점이다. 카트만두에서는 7시간, 포카라에서는 5시간 정도가 걸린다. 베시사하르에서부터 도보로 트래킹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달리는 차들이 뿜는 매연과 날리는 흙먼지에서 정취를 느끼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쿠디까지는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약 1시간 소요) 시간 여유가 많지 않은 여행자들은 지프를 타고 마낭까지 가기도 한다. 도보로 갈 것이라면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지프 로드 말고 예전의 트래킹 길로 가는 것이 훨씬 풍경도 마을도 볼 것이 많고 걷기도 편하다. (그리고 흙먼지에서 해방된다.)

지프 가격은 둘째 치고라도 딸까지 가지 않은 건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절벽을 깎아 만든 도로는 아스팔트 포장은 만무하고 낙석주의 포장이나 가드레일 같은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날 것의 길이었다. 이런 비포장도로를 낡은 지프를 타고 달린다는 건 전신에 고문을 주는 일이었다. 통돌이 세탁기 안에 들어간 해파리는 이렇게 춤을 추겠지. 자세를 고쳐 잡으려고 애쓰기보다는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차라리 근육통을 덜 유발할 것이다. (대신 머리는 유리창에 좀 박겠지만.) 대체 마낭까지 지프를 타고 가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인 건지! 존경스러웠다.

지프가 멈춘다. 불행하게도 도착은 아니었다. 한번 내리니 다신 타기 싫던 지프. 간이 찻집에서 블랙티(60루피)를 마시며 창밖을 감상했다. ‘내가 여기 오긴 왔구나, 네팔에.’ 이때까지도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앞으로 갈 길이 먼데 잘 해낼 수 있을까.'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났다.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도. 기다리던 소식도 있었고.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게서 자유롭고자 여행을 떠난 게 아니었던가. 떠오르는 생각들을 애써 가라앉혔다.

긴장했던 몸을 풀며 주변을 돌아봤다. 튼실한 닭들이 유유자적 돌아다녔다. ‘떠돌이 개도 많던데 이렇게 풀어놔도 되나?’ 닭, 개, 염소, 사람들이 위화감 없이 자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그 곳에서 타지인은 나 혼자였다. 그 순간 외국인, 여자가 혼자서 네팔에 여행 왔다는 사실은 내게 마치 대단한 훈장을 받은 것 처럼 으쓱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을 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으쓱 내려간 어깨를 다시 내리며 블랙티의 향을 맡았다. 다가오는 먹구름 사이로 부는 바람에 오방색 깃발이 흔들렸다.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어 시간을 더 달려 지프는 샹게에 우리를 토해냈다. 부디 그 차가 내가 타는 마지막 지프였길. 포터 겸 가이드와 함께 다니면 그가 숙소를 잡는다. 롯지는 당연히 인터넷으로 예약하는 시스템 같은 건 없으므로, 만약 홀로 여행 중이라면 여기저기 둘러보며 흥정하고 숙소를 잡아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물론 가이드가 정해주는 숙소는 단순 친분에 의해 데려갈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항상 확인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좋다. 나는 그때 이미 어둠이 지천에 깔린 시간이었고 비는 내리고 허리는 얼얼했으므로 라잔이 데려간 첫 번째 숙소에서 묵기로 했다.
숙소는 식사와 숙박을 겸업하는 시스템이다. 비수기에 매 끼니를 롯지에서 먹을 경우 방값을 받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때에 따라서 성수기에 인심 좋은 주인은 방값을 안 받을 수도 있고, 비수기에 욕심 많은 주인은 방 값을 꼬박꼬박 받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쪽 롯지들은 여분의 담요 요청에도 돈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방 값이나 식사 값이나 큰 돈들은 아니지만 인색한 사람에게 느껴지는 그 한기가 반갑지는 않다. 식당에는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당일 새벽 카트만두 숙소에서 전쟁 중에 피난이라도 가는 듯 요란하게 짐을 싸던 그 커플도 앉아 있었다. 그 많은 마을 중에, 그 많은 롯지 중에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하필. 다행히도 이 날은 그들과 방을 같이 쓰지 않음에 안도했다.
롯지에서의 첫 식사, 저녁으로 달밧을 주문했다. 집마다 맛이 각양각색인 네팔의 대표음식 달밧은 무려 리필도 가능하다고 했다. 가끔 무한리필 음식점에 가서 정말 맘껏 퍼먹을 때 뒤통수에 느껴지는 뜨뜻한 눈초리를 느껴본 적 있는가. 버젓이 쓰여 있는 문구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보게 되는 그 상황이 네팔도 마찬가지일지 궁금했다. 하지만 마이크로버스와 지프차가 흔들어 놓은 탓에 입맛이 영 없었다. 양은 또 어찌나 많은지. 사극에서나 보던 고봉밥을 마주하는 동안 심심찮게 정전이 됐다. 빛이 없어도 음식은 입을 잘 찾아갔다. 롯지 주인은 익숙한 일이라는 듯 능숙하게 양초를 켜서 돌렸다.

개인 화장실이 딸린 방에는 두개의 침대가 있었다. 네팔의 롯지는 기본 2인 1실이다. 라잔은 성수기에 혼자 여행 중이라면 타인과 방을 써야 한다고 했다. 방이 없으면 부엌에서 자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현명하게도 비수기에 여행 중이라 혼자서 방을 독차지했다. (낮에 비수기라 지프 비싸게 탄 건 벌써 잊음) 분홍색 벽이 부담스러운 방에서는 곰팡이 냄새가 많이 났다. 어느 집의 사랑의 교회나 불자의 집 스티커처럼 화장실 문에 붙여져 있던 노스페이스 로고가 인상적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비수기라 방을 혼자 써서 짐 정리하기에, 옷 갈아입기에 여러모로 좋았다. 저녁 650, 샤워 100, 다음날 아침 310 해서 총 1060 루피 들었다. 1,200미터 고도의 밥값치고는 비싼 편이었다. 비수기라 방값은 따로 받지 않았다.

온수 샤워는 100루피를 내고 별도의 샤워실에서 이용할 수 있었다. 태양열 또는 한물간 보일러로 데운 온수는 무한대로 콸콸 나오지 않으니 조심스럽게 계산하여 씻기를 권장한다. 펑펑 쓰다 보면 마무리는 냉수마찰 고행길이 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샤워가 힘들 거란 말에 의무감에 차올라 세면도구를 챙겼다. 3천 미터 이상에서는 고산병의 위험이 높아져서 체온유지가 중요하므로 샤워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높은 고도의 롯지일수록 온수를 만나기가 힘들다.) 식당과 마찬가지로 샤워실의 전구도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미러볼이 있었으면 덜 무서웠을까. 정전은 히말라야에서 흔한 일이었다. 챙겨 온 헤드랜턴을 켜두고 열심히 씻는 동안 헐거운 창살 사이로 손바닥만 한 나방들이 들어왔다. 끄고 씻자니 어둠이 무섭고, 켜고 씻자니 줄줄이 소환되는 나방이 무섭고. 최대한 구석에서 몸을 쭈그리고 있는 듯 없는 듯 힘겹게 씻었다. 젖은 나방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나방은 내가 더 무서웠겠지만.
*여담으론 샹게(Syange)보다는 근처의 자갓(Jagat) 마을이 숙소도, 전경도 낫다고 하니 가실 분은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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