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보험 일 하는데요?] 3회

문학 / 달분자 / 2019-11-12 01:24:00
사기치지 맙시다.

야근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회사와 남들 다 정시 퇴근하는데 혼자 야근하는 척 수당을 타먹는 직원, 어느 쪽이 더 나쁠까? 타인의 돈을 부당하게 갈취한다는 지점에서 둘 다, 고약하다.



보험 가입 9개월 만에 암 진단을 받은 고객이 있다. 보험금으로 받은 돈이 이미 내 돈보다 40배는 많다. 앞으로 내기로 약속된 보험료의 90% 이상은 평생 내지 않아도 되는 ‘보험료 납입면제’ 혜택도 받았다. 이 고객은 보험사에게 손해를 끼친 것일까? 전혀 아니다(회사 입장에서는 아주 속 쓰린 일은 맞겠지만). 보험사는 질병이나 사고에 관한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험료를 책정하기 때문이다. ‘암 진단 사례는 가입자의 3분의 1’이라는 확률에 맞아떨어진 것이므로 보험사는 끄떡없다. 단, 고객이 나쁘지 않다는 결론에는 보험 가입 전 병력을 숨기지 않았다는 필요조건이 있어야 한다.



납입한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료가 많고,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회사는 ‘이전에 병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 보험 조사관이 파견되고, 한 달 정도 조사가 진행되는 이유다. 이 고객도 예외는 없었다. 다행이 가입 전 보험사가 요구하는 ‘중요하게 알릴 의무’에 위배되는 사항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즉시 보험금이 고객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그런데 추가 청구 건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보험금이 눈에 띄게 조금 들어온 것이다. 당황한 고객은 즉시 내게 연락을 했다. 역시 당황한 나는 보험금 지급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왜 보험금이 덜 지급된 것이죠?”
“어머 고객님! 모르시나 본데요. 2017년부터 주사제 치료는 특약으로 빠졌거든요?”



매우 당당하고 쌀쌀맞은 목소리였다.



“아… 저기, 모르시나요? 금융감독원에서 2017년에 공문으로 암환자 치료 관련한 내용을 명시했는데요.”
“그런 게 있다고요? 어디 보내줘 보세요.”
“보내드릴 것도 없고요. 보험 약관 읽어보시면 해당 내용이 명확하게 기재돼 있습니다.”
“혹시… OOO 고객님 담당 설계사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오호호호. 어머, 죄송해요. 그런 사항이 있었나요? 제가 확인해보고 연락드릴게요. 번호 좀 알려주세요오.”



가증스러운 여자 같으니라고… 나의 소중한 고객님이 전화했으면 얼마나 난리였을까 싶어 화가 났지만, 불필요한 싸움은 에너지 낭비니 번호를 남기고 끊었다. 연락은 전혀 없었다. 일주일 정도가 지나 보험금이 추가 지급되었다는 문자가 날라 왔을 뿐. 아마도 어느 쪽이든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일부러 주지 않았다고 하기는 너무 나쁘고, 몰라서 안 줬다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니까. 어느 쪽이든 고객 입장에선 “나쁜 보험사 새끼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다. 해당 회사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이다.



무지한 지급 담당자 못지않게 답답한 사람 유형도 있다.



어느 푹푹 찌는 날, 안산에서 만난 서른 중반의 여성 Q씨는 실손보험과 암보험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다. 여느 상담과 마찬가지로 직전 3개월, 1년, 5년 단위로 병력에 관해 자세히 물었다.



“저는 아팠던 적이 별로 없어요.”


“단순하게 병원 가신 적이나 약 처방받으신 적도 없나요?”


“내시경 하니까 위염 있다고 해서 작년에 두 달 동안 약 먹었고요. 손가락에 염증 생겨서 고름 짜낸 것 말고는 없어요.”
“해당 내용을 고지할 것이고, 보장에 일부 제한을 둘 수 있어요. 회사 복귀해서 연락 또 드리겠습니다.”



회사는 Q씨의 보험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위와 관련한 보장은 하지 않겠다’고 결론지었다. 예상했던 바다. 어떤 병력도 없는 사람과 약을 상당 기간 처방받아 먹어야 할 정도로 아팠던 이력이 있는 사람에게 동일한 보험료를 받고, 똑같은 보장을 해주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다.



하지만 Q씨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까짓 거 약 좀 먹었다고’ 위에 관한 보장을 안 해준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본인이 아팠던 부분이 걱정되어 가입하겠다는 건데, 그것만 빼고 보장해주겠다는 것은 나쁘다며 화를 냈다. 그녀는 더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그후로 연락이 없다.



위염은 사람들이 흔히 겪는 것이고 보장에 제한을 두는 것은 비인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 보험회사는 사람이 아니다. 인간적으로 행동할 리 없는 것이다. Q씨가 어디선가 보험 가입을 했다면, 병력을 고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에 문제가 발생되고 고지 의무 위반 사실이 발각된다면, 보험사는 그녀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이다. 이윤 추구가 목적인 모든 회사는 아주 철저하고, 계산적이다.




고객이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보험사에 대적하기 쉽지 않은 건 사실이다.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몰라서 혹은 정말 나쁜 마음으로 고객에게 사기를 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회사보다 약간 더 고객의 편에 기울어 서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선량한 고객 한정으로 말이다(보험사기 나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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