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이 꺼낸 호남 반도체 ‘속도전’...관건은 투자 의지 아닌 실행 일정

K-Biz. / 이국열 기자 / 2026-10-12 11:05:05
광주 군공항 부지 첫 방문...용인·호남 생산시설 병행 건설 가능성 제시
전력·용수 공급 전 선행 공사도 검토...부지 확보·기반시설 구축 일정 맞물려야

[소셜밸류=이국열 기자]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초점이 투자 구상에서 실행 일정으로 옮겨가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광주 군공항 부지를 처음 방문해 용인과 호남의 생산시설을 병행 건설할 가능성을 제시하면서다.

 

최 회장은 전력과 용수 공급이 늦어지더라도 가능한 공사를 먼저 진행하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메모리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시설 확보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총수의 속도전 주문이 실제 생산으로 이어지려면 부지 확보와 공장 건설, 기반시설 공급 일정이 맞물려야 한다. 이번 방문으로 그룹 차원의 추진 의지는 확인됐지만, 착공과 가동 시점을 구체화하는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태원 SK하이닉스 회장이 9일 오후 반도체 산단이 들어설 전남광주 서구 군공항 부지에서 현장 방문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용인 다음이 아닌 용인과 함께...호남 거점의 역할 확대

 

최 회장은 지난 9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과 함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지인 광주 군공항과 탄약고 일대를 찾았다.

 

SK하이닉스 경영진이 사업 추진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적은 있지만, 최 회장의 공식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최 회장은 산업단지 조성 계획과 전력·용수·교통 등 기반시설 준비 상황을 확인했다. 현장 방문 대상에는 전체 산업단지 예정부지 약 250만평 가운데 탄약고 등 우선 개발이 가능한 약 63만평이 포함됐다.

 

최 회장이 제시한 호남 생산거점의 구상은 용인 클러스터와 비교할 만한 규모다. 그는 “현재까지는 용인의 한 3분의 2 정도 사이즈의 계획을 갖고 있다”며 “땅이 더 있고 수요가 더 있다면 이쪽이 더 커질 것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남을 추가 생산거점으로 육성하되, 수요와 부지 여건에 따라 규모를 확대할 가능성도 열어둔 것이다. 다만 ‘용인의 3분의 2’라는 설명이 구체적인 생산능력이나 시설 규모의 확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업 규모는 확보할 수 있는 부지와 기반시설 준비 상황에 따라 구체화될 전망이다. 이번 발언에서 규모보다 주목할 대목은 건설 시점이다. 용인 투자를 마무리한 뒤 호남으로 확장하는 순차적 접근을 넘어, 두 거점의 생산시설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는 방향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2년 앞당긴 용인도 부족...생산시설 확보가 수요 대응의 핵심

 

SK하이닉스는 용인 클러스터에 반도체 생산공장인 팹 4기를 순차적으로 건설할 계획이다. 전체 완공 목표는 당초 2045년에서 2033년으로 12년 앞당겼다.

 

최 회장은 이처럼 일정을 단축해도 수요 대응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비쳤다. 그는 “12년을 앞당긴 것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또 다른 부지와 조성이 더 필요한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병행해서라도 지어야 할 사정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호남 클러스터 조성을 서두르는 배경에는 AI 시장 확대에 따른 메모리 수요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뿐 아니라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도 증가하는 반면, 신규 생산시설을 확보하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수요가 늘어난 뒤 공장 건설에 나서는 방식으로는 공급 시점을 맞추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다. 용인 건설 일정을 앞당기는 동시에 호남의 부지 조성과 생산시설 건설을 추진해 수요 증가와 공급 확대 사이의 시차를 줄이겠다는 구상으로 읽힌다.

 

다만 병행 건설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구체적인 투자·공사 일정이 확정된 것은 구분해야 한다. 두 거점의 건설을 실제로 어느 시점에, 어떤 규모로 함께 추진할지는 후속 계획을 통해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 전력·용수 늦어도 먼저..공사와 가동 시간표는 달라

 

최 회장은 기반시설 구축을 기다리는 동안 가능한 공사를 먼저 진행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최 회장은 “설사 용수와 전력이 늦는다 하더라도 타이밍을 빨리 맞출 수만 있으면 먼저 들어가겠다는 생각”이라며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껴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기초 기둥 공사 등을 선행해 전체 사업 기간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는 기반시설이 모두 갖춰진 뒤 공사를 시작하기보다, 진행할 수 있는 공정부터 착수해 대기 시간을 줄이겠다는 접근이다.

 

그러나 선행 공사는 생산시설 가동을 앞당기기 위한 수단이지, 전력과 용수 확보를 대신하는 해법은 아니다. 공장 건설이 진척되더라도 실제 생산에 필요한 기반시설 공급이 뒤따르지 않으면 가동 일정은 별도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 회장도 구체적인 착공 시점에는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지방자치단체의 부지 준비 상황과 국가의 전력·용수 공급 계획, 회사의 공사 일정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결국 속도전의 성패는 “공사를 얼마나 빨리 시작하느냐”뿐 아니라 “공장 완공과 기반시설 공급 시점을 얼마나 정교하게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착공 시점과 가동 가능 시점을 구분해 사업 진척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우선 개발부지 확보가 첫 관문...정부·지자체 협업 시험대

 

실행 단계의 첫 관문은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번 방문에서 살펴본 약 63만평의 우선 개발 가능 부지를 언제, 어떤 범위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가 초기 사업 속도를 좌우할 주요 변수다.

 

전체 산업단지 조성과 우선 개발구역의 공장 건설, 전력·용수 공급을 어떤 순서로 연결할지도 중요하다. 일부 구역의 선행 개발이 전체 사업 기간 단축으로 이어지려면 각 단계의 일정과 책임 주체가 구체화돼야 한다.

 

최 회장은 경영진에게 정부·지자체와 긴밀히 협업해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최대한 속도감 있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현장에 참석한 지자체도 부지·전력·용수 등 핵심 기반시설과 인력 확보 여건을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역의 과제 역시 공장 유치에 그치지 않는다. 생산시설을 운영할 인재를 양성하고, 인력이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주거·생활 여건을 갖추는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공장 건설과 기반시설 구축, 인력 확보가 별개의 사업으로 진행돼서는 생산거점 조성의 속도를 높이기 어렵다.

 

◇총수 방문 이후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최 회장의 첫 현장 방문은 호남 사업이 뒤로 밀릴 수 있다는 우려에 그룹 차원의 추진 의지를 보여준 행보로 풀이된다. 용인과의 병행 건설 가능성에 더해 기반시설 완비 이전의 선행 공사까지 언급하면서, 호남 거점의 조기 확보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이제 판단 기준은 발언의 강도보다 후속 계획의 구체성이다. 우선 개발부지 확보 시점, 실제 착공 일정, 전력·용수 공급 계획이 제시돼야 속도전의 실현 가능성도 가늠할 수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는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를 넘어 ‘언제 생산에 들어갈 수 있는가’를 답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총수의 현장 방문이 실행의 전환점이 될지는 기업의 건설 계획과 정부·지자체의 기반시설 구축 계획이 하나의 시간표로 연결되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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