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만난 것 그리고 사진

정치 / 김미진 기자 / 2019-12-31 11:28:29
<길에서 만나다> 저자 김진화



책 소개


[길에서 만나다]는 김진화 작가의 포토에세이다.


책은 출근길과 퇴근길, 길을 걸으며 생각한 것, 길을 걷다 일어난 일, 내가 가고 있는 길, 이미 지나간 길, 내가 가야 할 길, 누군가 먼저 가버린 길, 그리고 길에서 만난 것, 이런 것들을 사진과 함께 담았다.


김진화 작가의 포토에세이 [길에서 만나다]는 독자들에게 그동안 걸어온 자신의 길은 어떠했는지 물음을 던진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김진화


10년 차 영화예술강사, 전남 순천에서 살고 있다.


여러 학교을 다니며 학생들과 영화를 찍는다.


토이의 '길에서 만나다'에 꽂혀 대학 때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사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꽤 오래 갖고 살았으며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산다.


08년생 고양이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사는 게 뭔지]를 출간했다.


목차


눈 / 육교 / 시 / 인대의 추억 1 / 인대의 추억 2 / 보라색 잠바 아저씨 / 18 / 그럴 필요 / 소소와 중대 1 / 소소와 중대 2 / 꿈 1 / 정리 / 소확행 / 다섯시 반 / 낮잠 / 계란의 맛 / 할아버지 1 / 꿈 2 / 빡 / 꿈 3 / 순간 / 한때 / 제정신으로 살기 / 좋아하는 것 / 병상일기 / 이것은 하루 동안 출근을 위해 탄 버스 / 과거 / 할아버지 2 / 어제 안 놀았으면 어쩔뻔했어 / 2013. 제주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꿈 4 / 초원 사진관 / 걷다 / 19 / 33 / 진로 변경 / 고흥 터미널 / 출장 / 친구들 / 술 / 20 / 천왕봉 / 30 / 길에서 만나다(단편영화 시나리오)


본문


두시간짜리 수업을 하기 위해 3시간을 이동해 출근했다. 수업을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학생들을 보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눈이 많이 오기 시작해 단축 수업이 결정 난 것이다. 눈은 금세 발목까지 쌓였다. 집에 갈 것이 걱정되었다. 눈을 맞으며 터미널까지 20분을 걸었다. 버스가 제시간보다 한시간 늦게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두시간을 갔다. 터미널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77번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생각했다.


'난 오늘 뭘 한 거지?'


눈은 그칠 생각이 없어보였다.


- '눈' 중에서 -


터미널로 가려면 77번 버스를 타야 하고 그 버스를 타려면 육교를 건너야 한다.


고등학교 3년을 오갔던 육교를 다시 오른다. 육교 위에서 보는 풍경이 익숙하다.


해가 뜰 때나 해가 질 때, 한 여름의 푸른빛과 늦가을의 갈색빛,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언제나 아름답다. 내 출근의 팔 할은 눈에 비치는 풍경이다.


곧 77번 버스가 온다.


- '육교' 중에서 -


시를 배우고 싶어 지리산을 찾았다.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서어나무숲을 산책했다.


함께한 어느 동화 작가가 술이 덜 깬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시가 좋니?"


"모르겠어요."


"그럼 뭐가 좋아?"


"가만히 있는 거요."


"그게 시야."


- '시' 중에서 -


택시를 타려고 인도에서 내려온 순간 발목이 접혔다.


너무 아파서 머리가 찌릿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처음으로 깁스를 했다.


종아리가 가늘어져서 좋았다.


한쪽만 가늘어져서 안 좋았다.


늘어난 인대는 2주 만에 돌아왔다.


- '인대의 추억 1' 중에서 -


피자스쿨에서 피자와 콜라를 샀다. 엄마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내 쪽으로 오는 차가 멈출 생각을 안 한다.


'어쭈 저거봐라'생각한 순간 차에 치였다.


눈을 떴을 때 바닥에 떨어진 피자박스가 보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목과 다리가 움직이는 걸 확인하고 속으로 말했다.


'아... 쪽팔려..'


누군가 내 신용카드와 이어폰을 챙겨줬다.


이어폰을 신용카드에 돌돌 말아 곱게도 챙겨줬다.


119가 왔고 구급 대원이 내 목에 보호대를 채우려고 했는데 거절했다. 응급실로 갔다. 머리가 아팠고 손으로 만져보니 엄청 큰 혹이 났다.


발목도 아팠다. 많이 아팠다. 병원에서는 근육통일 거라고 했고 별다른 더 이상의 처치 없이 지나갔다.


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발목이 아프다.


- '인대의 추억 2' 중에서 -


버스에 내려 학교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보라색 잠바를 입은 아저씨가 뒤에서 불렀다.



"아가씨! 어디 가요."


"초등학교에요."


"나는 요기 일 보러 가요."


"저는 일하러 가요."


"미안허요. 말 시켜서."


"아니에요."


별 의미 없는 짧은 대화가 기억에 남았다.


왜 말을 걸었을까, 무엇이 미안했을까.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기도 하고.


- '보라색 잠바 아저씨' 중에서 -


꿈에 나는 유럽여행 중이었다.


안 가봤기 때문에 정확하게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기분상 파리라고 치자. 다른 곳으로 이동할 기차를 기다리는 중에 어느 노천 카페에 가서 커피 세잔을 시켰다. 나 말고 두 명이 더 있었을 테지만 누군지는 모른다. 주문을 하며 내가 건넨 것은 3프레임 짜리 필름이었다. 잘리지 않은 그 필름을 지갑에서 꺼내 카페 주인에게 건넸다. 필름이 화폐인 곳을 여행 중이라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카페 주인이 돈으로 달라고 해서 김샜다.


- '꿈 1' 중에서 -












[ⓒ 사회가치 공유 언론-소셜밸류.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김미진 기자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

    S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