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성 작가: 또 새롭게]
가던 길을 잠시 멈춰
지금, 어디로 가는지 가만히
생각 할 때예.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손가락빗으로 머리도 넘기고
신에 묻은 먼지를 떨면
어느샌가 나는
가던 길 위에서
또
새롭게
걷는다.
[김지수 작가: 아직, 새해]
늦은 저녁식사를 할 때, 그래 이 때 쯤인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나의 휴대폰이 탁자에서 혼자 붕붕 돌았다. 쉬지 않고 느린 그 회전에서 내가 아는 사람들의 내가 모르던 열기같은 것이 피어올라 나는 그저 다 식은 식사를 씹으며 휴대폰의 회전을 바라보았다. 그 것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긴 전화벨이 울릴 때 까지 계속되었다.
네 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올해에는 제발 꼭 들어오구.
답을 줄 수없는 나와 답 없는 질문을 뱉은 아버지가 야속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저는 아직 멀었어요. 그래도 저는 안전하게 잘 지내요. 도대체 뭘 이룬다고 아직도 거기있냐. 이제 새해가 다 되었는데.
나는 맛 없고 차가운 식사와, 전화 중에도 계속해서 알림음을 뿜어내는 휴대폰에 입을 앙 다물고 말았다. 턱이 부르르 떨려 뜨거운 전화기와 미세하게 진동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안부를 묻는 친구들과 나의 연인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이란에서의 일들, 윗 층의 꼬마 모르바가 나의 사지를 하나씩 잡고 당기는 기분에 산산히 조각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견디기 위해 어금니가 지긋이 눌러지도록 허공을 깨물었다.
이제 2019년이다. 2019년. 거기에서 돈을 많이 벌었냐, 평생 갈 사람들을 만났냐, 이름을 떨쳤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새해에까지 혼자서 할 셈이냐
내가 입을 벌렸을 때, 내가 놀랄 정도로 큰 소리가 나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요한 이란의 밤거리 속에 꾹꾹 뭉쳐놓은 나의, 그 풀리지 않는 답답함, 내 스스로 물었던 그 많은 질문들이 아버지의 바늘같은 말에 결국 터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여긴 아직 새해 아니에요!
아직 2018년이에요! 작년이에요! 아버지에겐 과거지만 나한텐 지금이라고요.
나는 길에서 시비라도 붙은 것 처럼 주먹을 쥐고 씩씩 거렸다. 전화기에서는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너무 크게 소리질러 통화음이 깨져서 듣지 못한 걸까 싶어, 나의 분노가 아까워질 참이었다.
그렇구나.
아버지의 작고 떨리는 음성이 그 한마디만을 던져놓았다. 꼭 쥔 주먹이 풀리면서 하얗게 손가락 자국이 남은 것을 바지에 탈탈 털었다. 분노를 다 뿜어놓고 식어버린 내 머리는 이제 어떻게 용서를 구할까 하는 비루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래. 새 해가 떴는데. 너는 아직 저 멀리서 오는 중이구나.
아버지가 소파에 털석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땀을 닦고 있을까. 답지않게 눈물을 흘릴만큼 늙어버린 것일까. 아버지가 주저앉는 소리에는 그렇게 큰 무게가 실려있진 않았다.
나는 자마. 몸 조심 해라.
먼저 끊어진 전화기는 아직도 친구들의 시끄러운 설렘으로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전화기를 떼자 나의 볼이 쭉 붙었다 늘어졌다. 나의 고함을 들었는지 말괄량이인 모르바가 바닥을 질주하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 또한 아마 한동안 차가운 창문에 기대 늘어져 가로등만 위태롭게 깜빡이는 저 길을 바라볼 것이다.
아직 두 달 남은 나의 새해에는. 아마 아버지의 음성으로 내가 나에게 혹독한 질문을 해 댈 것이다. 차가운 찌꺼기가 남은 저녁 접시에서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았다.
이마를 차가운 창문에 대는 것이 그 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심스작가: 새해]
새해에는 모두 어제와 다른 오늘을 꿈꾸지
새롭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새로운 희망을 노래해.
하지만 바뀌는건 없어.
오늘 뜨는 저 해가 어제의 그 태양인 것처럼,
주변 사람, 생활공간, 일터 모두 어제와 다르지 않아.
달력의 연도만 바뀌었을 뿐, 다른 것들은 모두 어제와 똑같이 흘러가지.
새해, 진정 변화를 꿈꾼다면
결국 내가 바뀌어야해.
주위 다른 것들의 변화를 바라지 말고,
나 자신부터 하나씩 변화되어야 해.
나부터 조금씩 바뀔 때
조금씩 바뀌다 보면
어느새 변화된 나를 보게 될거야.
새로운 해는 결국
나만이 뜨게 할 수 있어!
[토라 작가: 어젯 밤]
2018년의 마지막 기차를 탔다.
입석티켓으로 카페칸에 앉아 4시간동안 이동해서 도착.
친구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걸어가면 40분거리지만 친구가 얼마전 이웃에게 받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배가 고파서 편의점이라도 들렀다 가고싶은데 주변의 모든 가게가 닫혀 있어서 결국 시내까지 가기로 했다.
친구가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나는 뒤에 탔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출발을 했는데 10미터도 못가서 휘청대더니 옆으로 넘어져버렸다.
무릎이 까졌다.
나는 조금 까졌는데 친구는 많이 까졌다.
다행히도 내가 가져온 알콜솜과 바르는 약이랑 밴드 덕분에 응급처치는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조금 웃었다.
새해 벽두부터 스펙타클하구나.
그래도 오토바이가 가벼워서 다행이다.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넘어진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덕분에 2019년엔 좋은 일만 있을거야 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고 친구 집으로 갔다.
강아지 두 마리가 귀엽게 짖고 있었다.
오토바이 소리만 나면 저렇게 짖는다고 한다.
어두워서 강아지 얼굴이 잘 안보이기에 정식 인사는 내일 아침에 하기로 했다.
짜파게티와 수육과 김치와 시금치와 밥을 먹었다. 친구는 비건이라서 수육을 다 강아지 주려고 했는데 플렉시테리언인 내가 와서 다행히도 내가 다 먹었다.
왠지 강아지의 식량을 빼앗게 된걸까ㅎㅎ
밥을 다 먹고 간식도 먹었다.
집 내부는 꽤 추웠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겨울인데 좀 추워야지.
(-위쪽 지역에 살고 있는 나의 방은 건물 구조탓인지 한 겨울에도 문을 닫아놓으면 실내온도가 웬만해선 23도 밑으로 내려가질 않는다. 사실 요즘에는 더워서 일부러 문을 열어놓을 때도 있다. 보일러는 틀 일이 없다. 그래서 오랜만에 추운 실내에 있게 되어서 반가운 마음에-)
친구가 전기장판위에 이불도 깔아놓고 잠 자리를 준비해놓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 해 첫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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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 이 친구와 즉흥적으로 군산에서 새해를 봤는데 올 해는 순천에서 새해를 본다.
요즘엔 매년 새해를 이 친구와 보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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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는 오늘이 새해라는걸 알까
과거, 미래, 현재, 작년, 새해 라는 개념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 같다.
자연과 동물들은 매 순간을 그저 살아갈 뿐.
그럼에도 매우 규칙적으로 질서있게 자연스럽게 살아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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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2019년은 마치 흐르는 시냇물처럼, 강아지와 고양이와 맷돼지처럼, 길가에 핀 풀 꽃 처럼, 그저 매 순간 자연스럽게 살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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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운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상처를 받더라도, 고립되더라도, 그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살아지다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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