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즈 : 허상범]
단비
허상범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이제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살갗에
삶에 대한 모든 감각이 무뎌져 가는 것만 같았다.
아주 딱딱하게 굳어버린 그것은
그 작은 풀잎이 고개를 드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숨 쉬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목을 겨누고 있는 타들어가는 더위가
유일한 벗인 줄만 알았다.
물러지면 약한 것이라고
딱딱하게 굳어야만 강하고 단단한 것이라고
그렇게 여겼건만 비가 내렸다.
그렇게 갈구하던, 바라던 것이.
왜 이제서야 왔냐고 수많은 물음을 내던져도
돌아오는 대답 없이 내리기만 할 뿐.
물러져만 가는 살갗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집어삼키자
이제는 그저 체념한 채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으니
물러지고 묽어져 녹아내리는 것은 살갗이 아니었다.
매일 밤, 그 누구도 들을 수 없도록 숨죽이며 흐느끼며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아 커다랗게 딱지가 내려앉은 상처였다.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그것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자니
더 이상 야들야들 해진 살갗을 뚫고 올라올 새싹이 두렵지 않았다.
조용히 비가 내렸다.
단비. 그래, 단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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