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김민관 작가
‘응답하라 1호기’
‘현재 제트기에 의해 추격당하고 있다 오바’
‘신속히 그곳을 빠져나와라’
‘알았다 오바’
지구인에게 포착됐다.
큰일이다.
올해 동료들의 비행기는
지구인들에게 포착되는 경우가 많아져서
현재 깊은 주의를 요하고 있는 중이다.
제트기 한대가 더 따라붙는다.
‘더 이상 도망칠수가 없다 포탈을 쓰겠다’
‘포탈은 안된다’
‘하지만 이대로는 붙잡힌다’
‘불시착하라’
‘알았다 오바’
상부에서 명령이 떨어졌다.
비행기 상부를 열자 뜨거운 지구의 대기가 느껴진다.
나는 서둘러 안전띠를 풀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가방에서 낙하산이 펴지면서
동시에 뭔가가 비행기 바깥으로 떨어졌다.
‘안돼’
물병이다.
내 목숨같은 물병.
낙하산은 바람의 힘을 따라 하늘로 솟구치는데
물병은 아래로 떨어진다.
지구인들은 내 비행기를 쫓아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지구에 떨어진다.
화끈거리는 바닥.
여기가 어디지.
‘비켜’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내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
뒷모습을 보니 짧은 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머리에는 하얀 띠를 두른 사람이다.
‘서울시 동구 마라톤 대회’
굵은 글씨가 새겨진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낀다.
아직 사람들이 내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
나는 서둘러 주머니 속 주사기를 꺼내
변형 물질을 몸에 주사했다.
그러자 모습이 지구인과 비슷하게 변한다.
‘나와요 나와’
이번에는 여성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비틀거리고 있는 그 여성은
근처에 비치되어있던 물병 하나를 집었다.
꿀꺽꿀꺽
물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 들어간다.
내가 있는 곳은 도로 한복판.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까 나를 치고 지나갔던 아저씨와
지금 이 여성이 대회의 꼴찌인 것 같다.
주위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냉큼 웃통을 벗었다.
그리고 그녀를 따라 맨몸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의심을 사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물병을 찾을길이 영영 묘연해지기 때문이다.
물병은 우리 행성의 신분증과 같은 기능을 한다.
저 여자를 따라가 볼까.
그녀는 몇 번씩 멈추어섰다가 다시 달렸고
나는 그때마다 그녀를 뒤에서 바라보았다.
마침내 골인지점이 보인다.
시상식을 하는 곳에는 사람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고
다만 몇 사람만이 서서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응원 하고 있다.
그녀가 스파트를 냈다.
그리고 결승지점에 대자로 드러눕는다.
나는 가장 꼴찌로 들어와 근처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그러니 한 남자가 다가와 수고했다며 물병을 건넨다.
이것은 내가 잃어버렸던 물병과 비슷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 것은 아니다.
‘참가상입니다’
바닥에 누워있는 여성에게도 누군가 물병을 가져다준다.
뚜껑에 박혀있는 저 별모양.
저게 내 물병이다.
‘잠깐’
그녀가 나를 본다.
나는 그녀에게 성큼 걸어가 물병에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몸을 웅크리더니
나를 힘껏 밀어서 넘어뜨렸다.
‘뭐하는 짓이에요’
‘그거 내 겁니다’
‘뭐요? 참가상이 네거 내거가 어디있어요’
‘아니요. 그건 내 겁니다’
그녀는 말을 잃은 듯 나를 쳐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곳을 빠져나갔다.
이럴수가.
물병을 빼앗겼다.
우리 행성에서는 물병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나에게는 현재 비행접시가 불시착한 것 보다도
물병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녀를 따라가야 한다.
그녀는 얼마후 자신을 따라오는 존재를 눈치채고
여러번 나를 확인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머리만 긁적였다.
허름한 빌라가 나온다.
그녀가 묻는다.
‘여기까지 따라 들어오려구요?’
‘물병을 줄 수 없습니까’
‘이봐요, 당신도 물병을 받았잖아요’
‘그건 특별한 물병입니다’
‘이건 나에게도 특별한 물병이에요.
내가 이 마라톤을 뛰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요?’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터뜨린다.
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눈물을 훔치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큰일났다.
물병이 없으면 나는 고향으로 돌아갈수가 없다.
어찌해서 비행기를 찾는다 해도
병이 없이는 운전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병 입구에 있는 별 모양의 자석.
그것이 비행기를 운전하는 열쇠다.
정말이지 큰일이 일어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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