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칼럼] 소재원의 그릇된 소신, 그리고 ‘암살자(들)’의 역사 오독

PLAN/SERIES / 한지원 기자 / 2026-10-05 15:53:52
▲ 이미지=영화 '암살자(들)' 포스터

 

창작(創作)
1. 방안이나 물건을 처음으로 만들어 냄.

2. 예술 작품을 독창적으로 짓거나 표현함.

3. 거짓으로 지어낸 말이나 일을 비꼬는 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개봉 이후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의 경계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논쟁에 대한 의견을 묻는 요청을 여러 차례 정중히 사양했지만, 소재원 작가의 발언을 접하고 생각을 달리했다.

 

소재원 曰 “이 정도 창작도 안 되나.”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이 정도의 ‘상상력도 허용하지 못하냐’는 주장이다.

 

당연히 창작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역사적 사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것 역시 창작의 영역이다.

 

그러나 창작의 자유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중대한 의혹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피격돼 사망한 사건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다. 당시 수사와 재판을 통해 사건의 경위가 규명됐고, 범인 문세광에 대한 사형도 집행됐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돼 기존의 역사적 해석을 수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기존 사실관계와 다른 중대한 의혹을 제기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특히 영화는 역사책과 다르다. 강렬한 이미지와 서사를 통해 관객에게 특정한 인상을 남긴다. 실제 사건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을 영화적 상상력으로 구체화한다면, 단순한 창작을 넘어 대중의 역사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영화일 뿐’이라는 설명만으로 그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재원 曰 “역사는 특정인의 것이 아니다.”

 

당시 역사의 곁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살아남은 자’라는 주장이다.

 

역사가 특정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역사적 사건은 사회 전체의 기억이 될 수 있고,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경험과 기억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역사가 모두의 것이라는 것과 한 가족이 겪은 죽음까지 타인의 창작을 위해 자유롭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육영수 여사를 어머니로 잃은 유가족에게 그날은 ‘역사적 소재’가 아니다. 어머니의 죽음이고, 가족의 상실이며, 평생 이어지는 기억이다.

 

누군가에게는 영화의 소재일 수 있지만, 유가족에게는 삶의 비극이다.

 

따라서 “역사는 특정인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아무리 보편적인 명제처럼 들린다 해도, 어머니를 잃은 유가족에게는 자신의 가족사가 타인의 창작과 해석을 위해 자유롭게 재구성될 수 있다는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헤아려야 한다.

 

역사가 모두의 것이라면, 그 역사 속에서 희생된 사람과 남겨진 가족의 아픔 역시 모두가 존중해야 한다.

 

역사를 공공의 기억으로 만드는 것과 타인의 상처를 공공의 창작 소재로 소비하는 것은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창작에도 선은 필요하다.

 

이번 논란은 정치적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간단하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 없는 중대한 의혹을 덧붙이는 것까지 창작의 자유로 인정해야 하는가.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려 실제 사건에 대한 새로운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게 만드는 것까지 같은 의미의 창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실존 인물의 죽음을 다룬다면 유가족의 아픔을 고려하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다.

 

창작자에게 상상할 자유가 있다면, 유가족에게는 그 창작물에 상처받고 문제를 제기할 권리도 있다.

 

창작의 자유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권리가 아니다.

 

역사는 창작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기록과 증언, 당사자의 기억, 유가족의 상처가 함께 존재하는 공공의 기억이다.

 

그렇기에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는 창작자에게는 자유로운 상상만큼이나 사실에 대한 책임이 요구된다.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과 역사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다르다.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도 바로 이것이다.

 

창작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역사 앞에서는 그 자유만큼 책임도 무거워야 한다. 누군가의 어머니를 잃은 아픔까지 ‘창작의 소재’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역사는 모두의 것이지만, 누군가의 죽음과 상처까지 모두의 창작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개인과 공동체가 지켜야 할 약속 위에 세워진다. 창작 역시 그 약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실을 지킬 수 없다면 함부로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상처를 다룬다면 먼저 그 아픔을 헤아려야 한다.

 

그것이 창작의 자유를 지키면서도 역사와 사람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그릇된 소신은 창작의 독이 될 수 있다.

 


▣ 칼럼니스트 한정근 | 아시아브랜드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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