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레터] #19 임인년, 호랑이를 그린 그림

용감하고 맹렬한 호랑이를 그린 선조들

이수아

sua@artlamp.org | 2022-01-13 16:44:06

사진: 민화호도(民畵虎圖), 한국 광복이후, 종이, 전체길이 110.2 전체너비 81.4, 세로 81.8, 가로 54.0,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광복 이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랑이를 주제로 한 민화. 부드럽고 생동감 있는 필치는 자연스레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액운을 막아주는 호랑이와 함께 호랑이 기운을 듬뿍 받아보자. [제공 = 아트램프]

검은 호랑이의 해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들 어떤 새해 소원을 비셨나요? 저는 올해도 즐겁고 행복하게 예술을 즐기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고 소원을 빌었답니다.


호랑이의 해. 왠지 호랑이가 주는 용맹하고 강렬한 기운을 받을 것만 같습니다. 이번 아트레터에선 호랑이를 그린 작품들을 살펴보며 더욱 용감하게 2022년으로 나아가 보길 바랍니다.



1. 두 마리의 호랑이


사진: 쌍호흉배(雙虎胸背), 조선, 섬유, 18.3x16.9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제공 = 아트램프]

이 작품은 두 마리의 호랑이가 그려진 흉배(胸背)라는 뜻을 지닌 쌍호흉배(雙虎胸背)입니다. 흉배는 우리가 조선시대의 관리의 의복을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가슴과 등 부분의 네모난 장식품을 말합니다. 무관의 경우 당상관(정당에 오를 수 있는 품계 높은 관직)은 호랑이가 두 마리인 쌍호(雙虎), 당하관은 호랑이가 한 마리인 단호(單虎)로 정해졌다고 해요. 그렇다면 이 흉배는 무관 당상관의 흉배임을 알 수 있겠죠?


지금처럼 기계가 자수를 놔주던 시대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꼼꼼하고 화려하게 수 놓인 흉배가 있다니 놀랍지 않나요? 정교하게 수놓아진 흉배는 우리의 조상들이 얼마나 뛰어난 손기술을 가졌는지 알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2. 역동적인 호랑이


사진: 윤덕희, 격호도(擊虎圖), 조선 후기, 비단, 28.0x20.7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제공 = 아트램프]

윤덕희는 턱수염이 수북하게 난 자화상으로 유명한 윤두서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요? 윤두서 특유의 화풍과 묘하게 닮아있는 윤덕희의 그림은 익숙한 듯 새롭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역동적인 자세로 호랑이와 대치하고 있는 인물의 모습을 그렸어요. 형형한 안광을 지닌 호랑이가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물어뜯을 것만 같은 긴박함이 화면을 전체에 두드러집니다. 결코 크지 않은 화면 속에 담은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장면 속에 몰입하게 만들기 충분합니다.



3. 용맹한 호랑이


사진: 맹호도(猛虎圖), 조선, 종이, 96x55.1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제공 = 아트램프]

맹호도는 말 그대로 용맹한 호랑이를 그린 그림입니다. 이 작품에서 재미있는 점은 호랑이의 몸통 부분이 꽤나 사실적으로 묘사된 것에 비해 얼굴은 단순한 캐릭터처럼 표현되었다는 것입니다!


호랑이의 얼굴만 봐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거예요. 바로 '민화'입니다. 맹호도는 민화 호랑이 그림의 한 종류입니다. 용맹한 호랑이라고 이름을 붙이기엔 어딘가 얌전해 보이는 게 꼭 고양이를 그린 것만 같지요. 지금 보고 있는 맹호도는 호랑이에 대한 공포를 살짝 비틀어 해학적으로 표현한 특징이 있습니다.



4. 사실적인 호랑이


사진: 마루야마 오쿄(圓山應擧), 원산응거필호도(圓山應擧筆虎圖), 비단, 일본 근대, 세로 191x가로 58.5x축 길이 65.4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제공 = 아트램프]

이 호랑이는 위에서 본 호랑이들과 조금 다른 분위기가 풍기지 않나요? 맞습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한국화와는 다른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입니다. 바로 마루야마 오쿄가 그린 일본화 기법의 호랑이 그림입니다.


마루야마 오쿄는 일본 에도시대 중기의 화가로 마루야마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나라의 사생화와 서양화의 원근법을 합쳐 새롭고 독특한 느낌의 사실주의적 화풍을 만들어냈어요.


일본화는 정교한 구도와 화려한 색채로 동북아 3국의 회화 중 장식적인 느낌이 가장 크다고 설명드렸었죠. 근경을 가득 채운 대나무 이파리와 바위 어딘가에 서서 포효하는 듯한 호랑이의 모습 그리고 여백으로 남겨둔 원경은 철저한 계산 아래 그림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래를 빼곡하게 묘사하고, 상단으로 올라갈수록 과감하게 묘사를 삭제함으로써 상상할 수 있는 여지와 함께 자연스레 숨을 터뜨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 마루야마 오쿄의 작품을 감상해보세요.



5. 까치와 호랑이


사진: 호작도(鵲虎圖), 조선, 종이, 134.6x80.6cm,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대한민국. [제공 = 아트램프]

우리나라의 민화를 얘기할 때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까치와 호랑이를 그린 호작도(鵲虎圖)예요. 어쩌면 가장 한국적인 그림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민화에서 호작도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민화는 조선 후기 서민층에서 유행한 장식용 그림이죠. 그림에서 보이는 각각의 요소마다 개별 의미가 있어 한 화면에 모였을 때 더 큰 에너지를 가져다준답니다.


까치, 호랑이, 소나무의 세 가지의 요소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이 작품은 한국인의 정서를 가득 담고 있습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고 밤에 까마귀가 울면 대변(大變)이 있다’라는 속담이 있듯 까치는 우리 문화에서 길조로 인식되고 있어요. 소나무는 어떤 난세에도 굽히지 않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합니다. 호랑이는 사방신에 속해있을 만큼 수호적 영물로 인식되었죠. 어떤가요? 좋은 의미의 소재들을 잔뜩 넣은 그림이라면 이 모든 게 합쳐졌을 때 더 큰 시너지를 낼 것 같지 않나요?


호작도는 액운을 막아주는 벽사(辟邪, 악운을 물리치는 것)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새해가 되면 집집마다 호작도를 걸어두어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기원했어요. 힘차게 밝아온 새해, 호랑이 그림을 보며 건강한 기운을 잔뜩 얻어가는 것은 어떨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아트레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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