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제 사랑을 이별의 프롤로그쯤으로 생각하기로 합니다.
[이별의 프롤로그는 가끔 너무 아름답다] 저자 박지수
오도현
qjadl0150@naver.com | 2020-04-22 17:47:53
책 소개
<이별의 프롤로그는 가끔 너무 아름답다>는 박지수 작가의 에세이다.
다음은 책에 수록된 소개 글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들과 언젠가 이별을 해야 합니다. 어쩌면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은 조금 멀리서 이별을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제 사랑을 이별의 프롤로그쯤으로 생각하기로 합니다. 이별의 프롤로그는 가끔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오래 아파해야 했습니다.
당신이 한 이별의 프롤로그는 어땠나요. 이제 우리 함께 몇 장의 페이지 위에 담담히 이별의 에필로그를 써 내려갈 수 있기를.」
박지수 작가의 에세이 <이별의 프롤로그는 가끔 너무 아름답다>는,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연인들이 겪는 이별의 아픔에 담담한 위로와 공감을 전한다.
저자 소개
저자: 박지수
목차
총 88페이지
본문
나는 이제 너와 함께 사랑하고 있는 것보다는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서로의 아가미가 되어 호흡하자.
밀려오는 모든 것들을 가끔은 거스를 수 없더라도.
깊은 영원 속을 헤엄치다가
사랑과 생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
우리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어.
어느 한 쪽의 영역을 넓혀나가려 애쓰는 일은
어느 한 쪽의 영역을 갉아먹곤 했어.
자연스럽게 포개야 해.
그때 너와 내가 비로소 선명해질 수 있어.
같은 시야를 가진 채 유유히 나아갈 수 있어.
세상 위로 부드러운 흔적을 새겨갈 수 있어.
- '사랑과 생의 경계' 중에서 -
서랍장을 뒤지듯이 살아왔다. 그것도 아주 샅샅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랬다. 나는 그 안에서 늘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채 가득 차 있는 나의 서랍. 그 안에서 무언가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수없이 흐트러뜨리는 과정이 동반되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의 존재가 기억도 나지 않을 때쯤 나는 우연히 당신을 발견했다.
우리는 자주 함께 와인을 마셨다. 어렸을 땐 와인이 다 똑같은 포도주스 맛이 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와인을 잘 모르는 나는 그림과 글자로 빼곡한 라벨을 한참 동안 들여다봐도 맛을 가늠할 수가 없다. 고심 끝에 고른 어떤 와인은 떫기만 했다.
- '당신과 마신 와인의 도수는 높다' 중에서 -
겨우겨우 사랑을 끝낸 나는 어떤 날엔 쌀국수를 먹다가 문득 네가 덜어가지 않아 그릇에 잔뜩 남아있는 양파들을 보고 다시 아파할 것이다. 푹 익어 힘없이 흐물거리는 게 나와 닮아 서글퍼질 것이다. 나는 네가 떠나면 혼자가 되는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양파가 이만큼이나 남아있고 내가 편식이 너무 심하다던 네 꾸중도 귓가에 죄다 남아있어. 잔여물들 속에 파묻힌 나는 네가 훌쩍 떠나가 버린 이유가 혹시 내가 편식이 심해서였을까 생각해보기도 할 것이다. 또 그 생각이 남아버린 한 더더욱 혼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날 나는 쌀국수를 먹다가 양파를 하도 오래 쳐다봐서인지 눈이 매울 것이다. 눈물이 핑 돌 것이다.
- '베트남 음식점에서' 중에서 -
잊고 싶은 추억들은 몹시도 눈치가 없어서 우연히 나를 마주치면 반갑다고 인사를 해댄다. 소심한 나는 길목을 걷다 저 멀리서 그것의 흐릿한 형상만 봤을 뿐인데도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쿵쾅거린다. 마주치고 싶지 않아 숨죽여 지나치려 한다. 추억은 그런 나를 가만두지 않고 기어코 가까이 다가와선 해맑게 웃는 얼굴로 오랜만이라며 아는 척을 한다. 잘 지냈어?라고 묻는다.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닌가 봐. 목구멍까지 말이 차오르지만 용기가 없어 꿀꺽 삼켜버린다.
- '아는 척'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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