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재주가 없는 한 사람의 솔직한 이야기
[진심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재주가 없습니다] 저자 유선영
김미진 기자
qjadl0150@naver.com | 2020-01-05 10:33:00
책 소개
<진심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재주가 없습니다>는 유선영 작가의 산문집이다.
책은 우울했다가 즐거웠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달라지는 우리의 감정처럼, 특정한 주제가 없이 불규칙하고 다중적인 작가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았다. 진심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재주가 없는 한 사람의 시시하고 사사로운 불완전한 이야기를 통해, 진심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한 재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유선영 작가의 산문집 <진심을 다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재주가 없습니다>는 작가의 진심이 담긴 솔직한 글들로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저자 소개
저자: 유선영
목차
1부 걸어가다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 9 / 오라버니 12 / 구미호 이야기 14 / 조카 17 / 거북이 21 / 복통 25 / 길상사에서 27 / 재즈바 30 / 황금 저금통 38 / 장미꽃 한 송이 41 / 향수 44 / 선영(善寧) 48 / 운수 나쁜 날 58 / 꽃보다 할배 62 / 교통사고 67 / 국화 70 / 숨은그림찾기 72 / 서브웨이 76 / 체육관 이야기 80 / 스물일곱의 파리 84
2부 서성이다
3부 멈춰서다
풍자 141 / 꼰대 145 / 키다리 아저씨 149 / 누구를 위한 축제인가 154 / 사랑에 대한 고찰 158 / 광복절 165 / 마음이 병든 사람 169 / 서울과 지방에 대한 고찰 172 / 문래동 182 / 습관 186 / 건강과 행복 190 / 가면 193 / 슬럼프 195 / 확신 198 / SNS와 글 200 / 인내 205 / 무지(無知) 208 / 버킷리스트 210 / 상(喪) 217
4부 바라보다
봄 225 / 여름 안부 228 / 고운 말을 쓰면 자다가도 하드가 생깁니다 233 / 명절 236 / 가을 240 / 꿈 243 / 소설 247 / 다정한 크리스마스 250 / 서른이 되었습니다 253
Epilogue 257
본문
요란한 벨 소리에 겨우 눈을 뜬다. 스팸전화다. 밤새 근무하고 아침에 퇴근한 탓에 시간 개념이 없다. 몇 시쯤 되었을까, 찌뿌둥한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암막 커튼을 걷으니 강렬한 햇살이 안구를 강타한다. 해가 중천에 떠 있다.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은 시간. 대충 씻고 편한 옷으로 챙겨 입은 뒤 책이나 읽을 겸 밖으로 나선다. 일단은 밥을 먹어야겠지. 자주 가는 국밥집으로 향한다. 문 앞에 걸려있는 표찰. 오늘은 쉽니다. 그래, 오늘은 쉬는 날이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그냥 옆에 있는 맥도날드로 향한다.
만만한 게 햄버거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버거 세트를 시켜 우걱우걱 늦은 점심을 먹는다. 열심히 허기를 달래고 있는데, 저 멀리 카운터 앞에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저금통을 들고 서있다. 계속 매장 안을 돌아다니는 아이. 시선을 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를 본의 아니게 듣고 만다. 아까부터 저 아이 매장 안을 어슬렁거렸다, 부모님도 없이 혼자 온 것 같다, 저금통을 들고 왔는데 돈이 모자라서 주문을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어린 것 같은데 혼자 온 게 대단하다, 뭐 그런 이야기. 얘기를 들어보니 저 아이, 분명 혼자 온 것 같다.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저금통을 들고 온 것 같은데 돈이 모자라서 주문은 못 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양인 듯했다. 햄버거를 먹으며 나의 시선은 줄곧 그 아이를 향했다. 매장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를 저 어린아이가 저금통을 들고 혼자 돌아다니는데, 매장 직원도 손님들도 그 연유를 궁금해하거나 시선을 건네는 이 하나 없다. 나는 먹던 햄버거를 정리하고 아이에게로 향한다. 황금색 돼지 저금통을 들고 있는 아이. 가까이서 보니 내복 차림에 외투를 걸쳤는데 외투도 얇은 데다가 그마저도 곳곳이 해져있다.
"꼬마야 혼자 왔어?"
해맑게 "네!"라고 대답하는 아이.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햄버거가 먹고 싶어서 왔는데 돈이 모자라서 주문을 못 하고 있다고 한다. 저금통을 보니 천 원짜리 한 장에 동전 열댓 개가 전부였다. 무슨 햄버거가 먹고 싶냐고 물으니 해피밀 세트가 먹고 싶단다. 콜라 말고 오렌지주스를 마실 거란다. 장난감은 저걸로 고르겠단다. 분명 처음 먹는 것은 아닌 듯한데, 사연이 궁금하기도 하고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어 나는 아이가 원하는 해피밀 세트를 주문했다. 자리에 앉아 나는 아이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나이는 몇 살인지, 부모님은 어디 가셨는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조심스레 물어본다는 것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최조를 하고 있었다. 자칫 무서울 수도 있었을 텐데, 아이는 씩씩하게 대답한다. 8살이고, 집은 바로 옆이라고 한다. 아빠랑 삼촌이랑 같이 사는데 아빠와 삼촌은 저녁 9시에 들어오고, 아빠랑 삼촌이랑 같이 햄버거를 먹으러 왔었는데 너무 먹고 싶어서 저금통을 들고 왔단다. 또 엄마는 대구에 있고 약속을 해야지 만날 수 있다는 얘기도.
조막만 한 입으로 햄버거를 허겁지겁 먹으며 해맑게 대답하는 아이. 대답은 분명 해맑은데 표정은 어딘가 주눅이 들어있다. 나는 차마 다음 말이 떠오르지가 않아 아이가 먹는 모습을, 그저 웃으며 지켜본다.
아이에게 나중에 저금통이 꽉 차면 그때 삼촌한테 꼭 햄버거 사줘야 한다며 약지를 내밀었다. 아이는 꼭 그러겠다고 깍지를 끼었다. 그리고 해피밀 세트를 하나 더 포장하여 손에 쥐여주고는, 다음부터는 절대 혼자 오지 말고 아빠랑 삼촌이랑 같이 오라고 당부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불편한 마음을 억누르며 집으로 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가던 아이가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더니 내게 해맑게 손을 흔든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최대한 해맑게 웃어 보이며, 세차게 손을 흔든다.
- '황금저금통' 중에서 -
게으른 몸을 일으키는 데에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강력한 동기부여는 없다.
반대로 꾸준한 자기관리는 언제든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임을 뜻한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미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사랑도 체력이다. 맞아도 체력이 좋아야 덜 아프고, 상처도 체력이 좋아야 빨리 아문다. 언제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지나간 인연을 되새김질하며 자학하고 있을 것인가.
당신의 사랑은 실패하지 않았다. 일어나서 거울을 보라.
사랑에 실패는 없다.
사람에 실패가 있을 뿐이다.
어서 일어나요.
운동합시다, 사랑도 하고.
- '운동합시다, 사랑도 하고' 중에서 -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물의 깊이야 잠수를 하든 돌을 묶어 던지든 그 끝을 알 수 있건만, 사람 속은 그 끝이 어딘지 당최 알 수가 없으니. 하물며 속이 새까만 사람이야 오죽하려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심연을 잠영하고 잠영하다 익사하여 둥둥 떠오르는 수밖에.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익사했던가. 내 마음속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시체가 쌓여있는가. 시체가 넘실대는 새까만 속을 누가 들여다볼 것인가. 물속이든 사람 속이든 빠져 죽는 것은 매한가지라. 이왕이면 사랑하는 이의 심연 속에서 영영 헤엄치다 죽고 싶어라.
- '익사(溺死)' 중에서 -
어릴 적엔 타인의 도움이 절실했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타인의 도움은 부담이 되기 일쑤였다. 도움의 의의가 순수한 선행이나 호의였을 수도 있겠으나, 정작 현실에선 대가 없는 호의란 길거리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줍는 일처럼 만나기 힘든 행운이었다.
나 하나 건사하며 살아가기도 벅찬 세상은 사람들을 생존에 충실한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갔다. 그것은 분명 본인을 먼저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타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나 이해마저도 사라지면서 사회라는 단어가 무색하도록 사람들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한 관계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요즘 자존감을 높이는 법에 대한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같은 책에선 세상 사람들은 당신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며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말고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내' 세상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방법들은 그 본질을 조금만 벗어나도 소통의 부재라는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곤 하였다. 그것은 우리의 직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수많은 책에서 자신의 소신과 맞지 않는 회사는 과감히 퇴사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자신과 맞는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참지 말고 어디서든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한다. 여기서 큰 오류가 발생한다. 어디까지가 당당한 것인가? 자신의 소신에 맞지 않는 것이 회사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는가? 회사의 시스템이 부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신이 객관적이지 못한 것이라면? 자신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개인적인 불만이 아닌 직장의 구성원으로서 공통된 생각인가?
회사를 들어간 것은 당연히 돈을 벌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회사에서 월급을 받기 위해선 그 월급만큼의 노동을 회사에 제공해 주어야 한다. 부당함을 참아선 안 되지만, 부당함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기 전에, 부당함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볼 필요가 있다. 퇴사는 최후의 수단이다. 맞춰가려는 노력도 없이 자신의 소신에 맞지 않는다고 퇴사를 거듭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회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자신은 어디에서도 당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직장은 엄연한 공동체다. 타인과 조율하는 것을 불필요하다고 여기고 자신의 소신만 내세우고 싶다면, 직장을 다닐 것이 아니라 직장을 차리거나 개인적인 일을 하면 된다. 물론 기업의 사장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요즘 '꼰대'라는 말이 부쩍 많이 들리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 '틀딱'도 같은 맥락의 신조어다.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이나, 직장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설교를 하거나 주관적인 충고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많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꼰대라는 말이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 꼰대라고 불리는 인물은 소수에 가깝다. 특정 몇몇 진상들을 제외하고,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들도 많다. 직장에서 선배가 후배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고 할 때, 그것이 분명 필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지신이 듣기 싫다는 이유로 상대를 꼰대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조언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선 듣기 싫은 말이라도 꼭 들어야만 하는 말들이 있다. 직장의 구성원으로서 맡은 책무를 다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것으로 업무에 관한 내용이 그렇다. 후배님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말이 길어지기도 하고, 사적인 경험을 빗대어 이야기하기도 하니 지루하고 듣기 싫을 수 있지만, 상대가 악의적으로 나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조금은 상냥하게 대할 수는 없는 걸까. 후배님들은 선배님들이 무슨 말만 하면 꼰대로 치부해 버린다. 자연스레 선후배 간의 대화는 단절되고, 선배님들은 말하기에 앞서 후배님들의 눈치를 보기 바쁘고, 후배님들은 맡은 업무에 책임감과 능력이 현저히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는 월급만큼의 할당량을 회사에 정확히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덕분에 회사는 점점 삭막해져 간다. 나 역시 공과 사는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당당하게 살기, 자존감 높이기가 불러온 이런 사막화 현상으로 인해 나는 종종 숨이 막힌다.
나는 생각한다.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 하고, 듣기 싫은 말은 그 내용이, 그 마음이 어떤 것이든 소통을 차단하고 보는 태도야말로 정녕 꼰대가 아닌지.
배려와 이해가 사라지고 이기심만이 남은 직장이란 사막에서, 웃음꽃이 피길 바라는 것은 그저 신기루처럼 허황된 것에 불과한 것일까.
- '꼰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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