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사랑, 그 지독하고도 향기로운 것들에 대하여
[지독하고도 향기로운 것들] 저자 이한나
오도현
qjadl0150@naver.com | 2020-04-13 19:39:33
책 소개
<지독하고도 향기로운 것들>은 이한나 작가의 단상집이다.
작가가 말하는 지독하고도 향기로운 것들은 '관계'와 '사랑'이라고 한다. 책은 사랑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향기가 났지만, 악취가 되기도 했던 그것들을 글로 써 내려갔고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기록했다.
유독 이번 글들은 울며 쓴 글들이 많아서 책에 대한 애정이 깊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전작 <왜 하필 나는 어른이 되어서>처럼 이번 책 역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본 사랑과 이별에 대해 말한다.
"글이라는 게 참 신기하게도 생각하게 만들고,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답을 찾아내는 경우가 많아요. 사랑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끝내 답은 찾지 못하였고, 또 이별에 대한 글을 쓸 때면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뒤따라와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순리이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하루 이틀 계속해서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간 답을 찾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해요. 혹 그런 날이 온다면 좋아해야 할지는 모르겠네요."
이한나 작가의 단상집 <지독하고도 향기로운 것들>은 사랑을 하고, 이별을 앓았던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저자 소개
저자: 이한나
안녕하세요. <왜 하필 나는 어른이 되어서>를 출간하였던 이한나입니다.
첫 책을 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과분하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많은 독자분들에게 사랑받아 지난 5개월 동안 아주 행복하고도 소중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독립출판으로 첫 책을 내고 5개월의 시간이 흘렀는데 짧으면 짧은 시간,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문장을 만드는 일을 해 그것들을 엮어 또 한 권의 단상집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목차
총 168페이지
본문
습관처럼 너의 일상을 엿보는 일을 이제는 그만하기로 했다. 너의 사랑을 뒤에서 지켜볼 때의 감정이 이제는 전처럼 같은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아서일까,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미안해서일까, 아니면 너와의 진짜 이별을 한 걸까.
너와 함께했던 겨울, 너는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 핫팩을 사다 줬었는데 나는 핫팩보다 따뜻한 너의 마음이 아까워서 그것을 2년 동안 책상 서랍에 고이고이 간직했었다. 이별 후에도 서랍 속에 있는 핫팩은 꺼내지 않았다. 이 핫팩마저 사라지면 너의 흔적과 우리의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아무리 추운 날에도 사용하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고 제법 쌀쌀해진 요즘, 이제는 서랍 속 핫팩을 꺼내도 될 때가 온 것 같다. 나도 너를 놓고 나의 길을 걸어보려 하니 부디 너도 지금처럼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 '이 글이 마지막 이별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중에서 -
요즘 이별이 철이라던데, 연달아 이별 소식을 듣고 있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달래려 포장마차에 갔다. 친구는 울먹이며 네가 그래도 문과 출신에 글을 잘 쓰니 마지막 인사 정도는 멋지게 적어달란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널 도울게. 친구가 건넨 핸드폰을 받았고 묵묵히 마지막 인사를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철 따라 내가 한 이별도 이쯤이라 그런 것인지, 친구가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친구가 되어, 내가 그가 되어, 이름 모를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핸드폰을 돌려받은 친구는 이건 너무 슬픈 거 아니냐며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대개는 이별 직후 헤어진 연인의 욕을 한다. 화가 난다는 이유로 세상에 하나밖에 없다던 사람이 남보다도 못한 형편없는 쓰레기가 되고,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잘 먹고 잘 살아 라는 말을 하고 싶다던 친구의 마음과는 다르게 차분하고도 다정한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마음에 없는 못된 말들은 결국은 스스로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시작보단 끝이 더 기억에 남는 간사한 인간에게 말이라는 건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후회할 걸 아주 잘 안다. 후회로 남을 말보단 우리의 지난날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좋은 추억으로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과거가 되어주자고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오늘 나는 우는 친구를 앞에 두고 보는 내가 다 속이 쓰려 계속해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 '포장마차에서' 중에서 -
술만 마시면 인형 뽑기를 하고, 즉석 사진을 찍으려 하고, 군것질을 하는 덕에 주머니 속엔 동전이 쌓이는 일이 허다했다.
오늘도 역시나 그런 날 중 하루였고, 평소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공중전화박스가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굴러다니는 동전을 찾고 500원짜리 하나를 넣어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술이 스며들어 심장이 뛰는 것인지,
오랜만에 네 목소리를 들을 생각에 심장이 뛰는 것인지 헷갈렸다.
익숙한 컬러링이 들릴 거라 생각했었는데 없는 번호라는 멘트가 나왔다.
-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아, 번호를 바꾸었구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씁쓸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어제 전화를 걸었더라면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어긋난 타이밍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술을 마신 몇 시간 전의 나를 탓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몇 달 전의 나를 탓해야 할까.
수화기를 내리자 반환되는 동전은 챙기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될 때를 대비해 남겨두기로 했다.
- '없는 번호' 중에서 -
애지중지 귀하게 여기던 것도 시간이 흐르면 낡고,
예쁘고 아름다운 젊음 역시도 결국 시들기 마련이다.
사랑도 서로의 손때가 타면 결국 낡아버리고 해지는 것처럼.
사랑과 동시에 이별이 뒤따라온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을 한다.
암묵적인 이별을 약속한 채로.
- '구두계약' 중에서 -
산문보단 운문을 쓰고 싶었다. 산문은 한 번 읽히는 글이고 운문은 여러 번 읽히는 글이라고 하던데, 나는 너에게 운문 같은 존재가 되고 싶었다. 운율이 있는 글, 꺼내고 싶을 때 다시금 꺼낼 수 있는 그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 '운문(韻文)' 중에서 -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하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지나간 인연이 혹여나 놓친 관계는 아닌가 하며 뒤돌아보기도 하고,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곤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다 한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또 아닙니다. 삶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과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토록 어려운 마음이 혹여 나에게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하며 혼돈에 빠지곤 합니다. 어느 날은 현실에 치이고 사는 게 바빠 누군가를 그리워할 겨를이 없다가도 또 어느 날은 한 대상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나를 위해, 나를 지키려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나만을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또 어느 날은 뒤돌아서서 등 돌린 당신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하고, 그곳에 한동안 멈춰 서성이기도 합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이고 이런저런 감정에 휩쓸려 마음의 변화가 여럿 있지만 이 또한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어 감사를 느낍니다. 오늘은 그날의 추억에 서성이며 등 돌린 당신을 만져보려 손을 뻗지만, 결국 닿지 않는 손길에 체념하며 더욱더 멀어지는 당신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느 날 중 하루인 것 같습니다.
- '마음 읽기, 마음 일기'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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