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어느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썼던 일기들

[카페일기] 저자 정승환

김미진 기자

rlaalwls@naver.com | 2020-03-22 16:39:52

책 소개



<카페일기>는 정승환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작가가 제주의 어느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썼던 일기들을 모았다.


밖에서 바라보는 낭만적인 섬 제주가 아닌,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 애쓰며 살았던 한 자영업자의 기록이기도 하며, 아주 작은 섬에서 행복을 움켜잡았던 세 식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승환 작가의 에세이 <카페일기>는 카페를 운영하며 겪는 자영업자의 고충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 속에도 일상의 기쁨과 행복이 소소하게 피어나는 것을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들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스토리지북앤필름


저자 소개



저자: 정승환





목차



총 132페이지





본문



2015. 8. 27.


카페를 인수한 지 한달이 되어간다. 여름이 끝나가고 손님은 뜸하다. 유리창 너머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힐끔 안쪽을 쳐다본다. 들어오지는 않고 보기만 한다. 우리도 본다. 유리창 너머 세상을. 창이 얇은 줄 알았는데 참 두껍다.



2015. 8. 28.


새로운 메뉴 출시를 위해 이것저것 장비도 재료도 늘어만 간다. 나가는 돈은 많고 들어오는 돈은 적다. 계절이 바뀌어간다. 버텨야 한다. 버텨야 산다.



2015. 9. 6.


적어도 너와 나는 서로를 응원할 수 있겠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못마땅해 하더라도. 너와 나는 내일도 함께 마주앉아 웃으며 커피 한잔은 할 수 있겠지.



- 9페이지 중에서 -




2015. 11. 11.


수능 찹쌀떡 시즌으로 우리도 드디어 오늘 하루 '없어서 못 파는' 지경도 경험해 보았다. 물론 애초에 준비된 재료가 많지도 않았지만. 조금씩 장사에 대해 배워가는 중이겠지. 세 식구가 먹는 소박한 저녁상이 주는 행복감까지.



2015. 11. 17.


생강청 작업. 새벽 3시에 끝났다.



2015. 11. 25.


우리 카페는 매주 수요일에 쉰다. 매주 수요일엔 꼭 비가 내린다. 진짜 어이가 없다.



2015. 11. 26.


강풍에 카페 문이 덜컹거린다. 우박이 쏟아지고 천둥까지 친다. 이런 지독한 날씨에 그래도 손님 두 팀이 다녀갔다는 게 기적이다. 겨울이 정말 걱정이다. 아침엔 "치킨집 사장님만큼 힘든 카페 사장님.. 1년에 10%씩 폐점" 이란 기사를 봤다.



2015. 12. 8.


카페를 하면 '내 시간이 많아진다'고들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혼자 감당해야 할 시간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직장을 다녔다면 동료나 상사와 분담했을 그 시간들이 온전히 내 몫이다. 즐거움도 괴로움도 불안함도 지루함도 전부.



2015. 12. 10.


어젯밤엔 잠자리에 누워서 둘이서 로또에 당첨 되면 어떻게 돈을 쓸지 구체적으로 논의하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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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4.


아주 오랜만에 카페에 나와 장사를 했다. 손님을 받고 차를 내주고 자리에 앉아 창 밖을 보고 내가 선곡해 놓은 음악들을 들었고 그 사이에 해가 졌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손님들을 보내고 혼자 앉아있다.



2017. 2. 9.


주유소 일기. 먼 훗날 눈보라가 몰아치는 날 창 밖을 보며 한번쯤은 오늘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 눈바람을 맞으며 손과 귀가 얼도록 주유구 앞에서 서있던 나. 신발이 다 젖었다며 맨발에 슬리퍼로 오토바이를 몰던 퀵배달 아저씨의 웃음도. 그리고 곧 잊겠지.



2017. 2. 15.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린다. 볕 좋은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에 책을 뒤적이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고 산책을 하고 평소 가보고 싶었던 맛집을 찾아가 저녁을 먹는. 그런 휴일을 자주 보낼 수 있는 시간과 돈과 여유가 있다면, 하고 상상하고 있다.



간간이 전화로 수제청 주문을 받는다. 주문을 받을 때마다 쏭과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한다. 오늘도 했다.



- 78페이지 중에서 -




2017. 6. 21.


매일 티비와 트위터와 인스타를 보면서 내가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곳을 보고 꿈꾼다. 베트남의 식당들과 그리스의 바다와 파리의 공원같은, 지금 이곳이 아닌 다른 곳. 여기와 다른 색의 바다와 하늘들. 누군가에겐 내가 살고 있는 이 섬이 그런 곳이겠지.



2017. 7. 1.


모처럼 둘이 함께 장사를 했다. 메론빙수 손님이 많았다. 6월 31일이었던 어제까진 전혀 생각 안했는데 7월 1일인 오늘부턴 바다를 생각했다. 여름 해변. 반짝거리는 모래. 출렁이는 물결. 그 위에 떠있는 나를 상상하며, 빙수를 팔았다.



2017. 7. 20.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낸 버스운전기사의 근무표를 보니 하루 평균 일하는 시간이 14시간이었다고 한다. 내가 일하는 시간하고 똑같네. 자주 가는 편의점의 직원은 늘 손님들에게 크고 밝게 인사하며 활기가 넘친다. 가끔 서로 날씨 얘기를 나누는데 그래도 본인은 땡볕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한 거라고 말했다.



길고 꽉 찬 하루를 보내고 쏭과 나란히 잠자리에 누우면 어둠 속에서 서로 말한다. 사랑해. 너밖에 없어. 아주 짧은 시간. 피곤해서 일분도 지나지 않아 잠이 들 것이므로, 다른 말들은 다음에 하기로 한다.



- 90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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