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잡지 다채, 2호의 소재는 '플레이리스트'

[다채 2호 (4 PACK)] 저자 다채

허상범 기자

qjadl0150@naver.com | 2020-03-10 10:25:41

책 소개



<다채 2호 (4 PACK)>은 다채에서 발행한 매거진이다.


「모든 사람이 지닌 크고 작은 다른 점이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시작된 잡지입니다. 우리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고 충실하게 담아냅니다. 평범하기 때문에 연대할 수 있는, 평범하지만 사실은 각기 다른, 그런 이야기.」


'다채'는 한 호마다 하나의 인터뷰 소재를 가지고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잡지로, 1호 '지갑'에 이어, 2호의 소재는 '플레이리스트'다.


<다채 2호>는 한 권의 책이 아닌, 네 개의 패키지로 만들어졌다. 각 패키지에는 플레이리스트로부터 시작된 개인의 이야기, 다채 편집진이 선물해 주고 싶은 콘텐츠, 그리고 엽서와 스티커 두 장이 들어있습니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 다채



회색빛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각자가 크고 작은 다른 점들을 지니고 있는데, 드러내지 않아요. 드러낼 기회가 없기도 하죠. 그렇게 자신의 색깔을 잊어가요. 누구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드러내고, 각자의 다른 점이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섯 명의 팀원들이 패기롭게 《다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목차



첫 번째 인터뷰: 블루미 / 첫 번째 선물: 옆자리 식물 / 두 번째 인터뷰: 백광열 / 두 번째 선물: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세요? / 세 번째 인터뷰: 혁 / 세 번째 선물: Q에게 / 네 번째 인터뷰: 윤 경 / 네 번째 선물: 이공이공 공일공일





본문



플레이리스트 보고 궁금했던 게, 혹시 '랄라스윗'이라는 아티스트는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저희한테는 좀 생소했거든요.



처음에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예요. 제가 노래 들을 때 가사를 찾아서 보는 편이거든요. '랄라스윗'을 처음 듣는데, 가사가 되게 감성적이고, 멜로디랑 목소리가 맑더라고요. 한편으로는 좀 슬프고 우울하기도 하고. 그래서 중고등학교 때 많이 듣다가 작년 즈음에 콘서트도 갔어요. 심지어 사연을 받아서 진행하는 콘서트였는데, 혹시나 될까 말까 하고 제 사연을 넣었거든요? 그런데 된 거예요! 바로 앞에서 제 최애곡과 사연이 나오는 걸 보면서 진짜 펑펑 울었어요. 혼자 있어서 처음에는 '옆에 누가 같이 있으면 포근하고 좋았겠다' 생각했는데, 완전 입 틀어막고 눈물 콧물 다 쏟아내는 바람에 혼자 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와··· 혹시 어떤 사연이었나요?



조금 히스토리가 있어요. 사실 제 인생을 말할 때 우울증, 정확히 말하면 조울증을 빼놓을 수가 없어요. 지금 22살이니 우울증을 앓은 지 거의 7-8년 됐어요. 중학교 때 처음 우울증이 왔고 점점 심해져서 중학교를 그만뒀어요. 이후에 나아지는 듯싶어서 검정고시를 치고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좋아지다가 재발을 한 거예요. 결국 다시 검고(검정고시)를 치고, 그러니까 총 두 번 치고, 수능도 보고 지금 대학교에 왔어요. 지금을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쓰고, 어느 정도 나를 표현하면서 조금씩 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연을 콘서트에 보내셨던 건가요?



네. 제 사연이랑 '오월'이라는 노래가 같이 나왔는데 정말 위로가 됐어요, 정말로. 심지어 제 최애곡이었거든요. 이게 '5월에 축복 속에서 태어난 아기가 자라면서 풍파를 맞지만, 그래도 눈부시게 빛나는 축복받은 아이다'라는 내용의 가사에요. 랄라스윗 곡마다 느낌이 다른데 이 곡은 가사랑 멜로디가 예쁘고 따뜻해요.



진짜 랄라스윗을 안 좋아할 수가 없겠네요. 곡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다른 랄라스윗은 곡을 들려드리자면··· 'Good Bye'라는 노래가 있어요. (음악을 틀며)멜로디는 되게 반짝반짝한데 가사를 보면 조금 놀라실 수도 있어요.



(음악을 듣고) 가사가 조금 어두운 느낌인데 그걸 정말 밝은 멜로디와 목소리로 가사를 전하는 것 같아요.



그죠. 가사에 정말 공감하면서 들었어요.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조심스럽게) 그러니까 이 곡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정말 힘들 때 많이 들었죠. 학교 끝나고 아파트 옥상에서 들으면서 혼자 펑펑 울었던 기억도 있고··· 이런 가사를 오히려 밝게 불러서 더 잔잔하면서도 깊게 다가왔어요.



『안녕, 아련한 것들아


안녕, 꿈꾸던 눈동자


모두 내려두고 난 준비해


이제 인사할게 good bye



안녕, 날 무너뜨린 기억


안녕, 초점 잃은 눈빛


알아 떠나야 할 그때를


지금인 것 같아 good bye



혹시라도 날 찾게 된다면


혹시라도 날 걱정했다면


괜찮아 걱정마 나는 사라져야 해


그건 날 위해서야



어지러운 나의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오늘이


내일의 기대로 치유되기엔


너무 깊이 패어버려서 모른 척 할 수 없어


가야해 내가 떠나온 곳으로



혹시라도 날 기억한다면


혹시라도 날 추억한다면


아니야 괜찮아, 나는 잊혀져야 해


그건 널 위해서야



잃어버린 것을 또 찾아 헤매이는


바보 같은 짓 더 이상 하지 않아


내게 주어진 그대로 따를게


모두 여기까지야 난 여기까지



마지막인 이 공기도 지워내는


이 순간의 날 잡지 못해


good bye』



왜 이 노래를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나요?



그때 심정을 다 대변해주는 느낌이었거든요. 우울증이 심했을 때 여기 가사처럼 정말 무기력하고 아무 희망도 없고, (머뭇거리며) '나는 왜··· 못 죽고 이러고 있지? 진짜 죽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가사에서 결정적인 부분은 이 선택이 날 위한 거라는 거예요. '떠나는 건 날 위한 거고, 나를 잊어달라. 이건 널 위한 거다' 이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걸 유언으로 남기면 가수분들께는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그런 걱정까지 했었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 (웃음)



조심스럽지만 이런 애기를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중학생 때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셨어요?



사실 딱히 막 특정한 사건이라든지 그런 일은 없었거든요. 모르겠어요. 학교 가면 맨날 엎드려서 울고 있고, 정신 차려보면 팔이 엉망이 되어 있는···? 학교를 그만두고 약을 먹는 과정이 계속되면서 조울증이 거의 내 일부가 된 것 같아요.



혹시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계기가 있나요?



네. 처음에는 '환자'라는 느낌이 싫어서 부정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한 게 결정적인 계기인 것 같아요. 작년 이맘때쯤 입원하면서 어쩔 수 없이 중도 휴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뭔가 기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연락할 친구도 없고 말하고 싶은 건 많아서 'Part of me blue'라는 이름의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거든요. 거기에 떠들기 시작했죠. 그러면서 일 년이 넘어가고, 글이 백 개가 넘어가고, 천 개가 넘었어요. 감성들이 마구 차오르는데 어떻게 달랠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기엔 무서웠던 거죠. 처음엔 그냥 있는 대로 막 써 내려갔어요. 그러면서 지난 글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기도 하고요.



승화할 방법을 찾은 거네요. 너무 다행인 것 같아요. 아까 그림도 그린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리게 되셨나요?



사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입시 미술을 하긴 했어요. 결국 전공으로 다른 걸 하게 됐지만 입시할 땐 스트레스를 진짜 많이 받았어요. 일단 학원 자체가 되게 힘들었어요. 입시 막바지에는 선생님들이 평가하는데 그림을 막 찢었어요. 12시간을 학원에서 그림만 그리니 정말 그림 그리는 계기가 된 기분이었어요. 제가 원하던 건 그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막 1대 1 상담받다가 울고, 학원 실기 시험 때 패닉이 와서 흰 종이에 아무것도 못 그리고 있다가 결국 화장실에서 혼자 울고. 아··· 너무 끔찍했어요. 대학을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었던 거죠.



좋아하는 걸 하는데도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입시 하실 때랑 다르게 지금은 스스로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니시까 어떠세요?



되게 좋죠. '내가 처음 그림을 좋아했던 게 이런 기분이었나?' 싶어요. 이제는 내가 하고 싶어서 그리고, 인스타에도 올리고, 내가 그린 그림으로 굿즈도 만들고 하니까. '취미지만 나중엔 이걸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요.


작년부터 간단한 그림이랑 글로 인스타그램에 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내기 시작했어요. 계정을 만들고 다른 계정들도 찾아보다 보니 다들 나처럼 조용히 숨어 지내서 그렇지 비슷한 사람이 되게 많다는 걸 느꼈어요. 익명이니까 더 편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기도 했고요. 지금은 새 캐릭터도 생겼어요. (웃음) 이 아기 같은 캐릭터인데, 되게 웃기지만 이름도 있어요. (쑥스럽게) 어린 콩이라고 불러요.



(웃음) 왜 어린 콩이에요?



되게 창피한데··· 제 이름이 영(Young) 빈(Bean)이라서. (수줍게) 그··· 그래서 얘는 살짝 어린 자아와 같은 존재예요.



(폭소) 귀여워!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전공이 뭐예요? 계속 미술 쪽을 하고 계신 건가요?



아니요. 교육 심리학과를 다니고 있어요. 마지막까지 고민하다가 이쪽으로 오게 됐어요. 내가 심리적으로 힘들었으니까 이걸 배우면 나한테도 도움이 되고, 혹시 남한테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지금가지는 괜찮고 재밌는데, 전문적으로 하려면 엄청난 투자와 사명감이 필요하단 걸 알아서, 진로로는 계속 고민하는 단계예요.



많이 알수록 많이 보이잖아요.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게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에 대해서, 남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니까.



그래서 처음엔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프로이트의 이론을 배우면 유아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니까 어린 마음에 괜히 과거의 나에 대한 원망이 일고 그랬지만, 조금씩 받아들이게 됐어요. 공부하면서 오히려 '내가 우울해지고 싶어서 우울한 게 아니라 화학적 뇌의 불균형 이런 게 원인이구나' 했죠. 처음엔 자책도 많이 했거든요. '난 도대체 왜 이럴까···' 그 틀에서 절대 벗어나질 못했는데, 학문으로 배우니까 제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더라구요. 심리학은 기본적으로 과학인데 그거를 아예 몰랐었죠. 그런 과학적인 팩트들이 자책하는 걸 덜어주고, 한결 편안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들어서 그렇지만.



확실히 묻어두는 것 보다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묻어 놓는다고 영원히 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언젠간 튀어나오기 마련이고. 확실히 글로 풀면 뭔가 해소되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느낌이에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쓰다 보면 '과거는 그냥 과거다' 하면서 멀리 떨어져서 볼 수도 있고, 갈무리하게 돼요.


그동안 저는 표현을 잘 못 하는 편이었어요. 일단 말이 없어졌고요. 부모님이 처음 제 병을 알게 된 것도 병원에 와서 제 팔을 보고 나서예요. 집에 난리가 났었죠.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부모님 지인께서 정신과를 추천해주셨는데 부모님 반응이 "우리 딸이 미쳤냐. 그런 데를 가게" 이랬어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되게 좋지 않았죠.



- "이 곡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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