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나' 또한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저자 노유하

허상범 기자

qjadl0150@naver.com | 2020-03-05 15:35:00

책 소개



<내일은 알 수 없지만>은 노유하 작가의 에세이다.


아빠의 죽음, 식이장애, 고등학교 자퇴, 엄마의 심장질환 수술로 다사다난한 학창시절을 보낸 작가에게 더 이상 힘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비웃듯 작가는 서른셋의 나이에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난치병 판정을 받게 된다.


모야모야병으로 인한 뇌졸중의 위험 때문에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작가는 문득 깨닫는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사는 사람 중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일을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신 또한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10주간 쓴 에세이에는 필자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소망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작가는 바란다.


산다는 건 다르고 또 비슷비슷하기에 지루한 글일 수도 있으나, 이 글을 통해 누군가 잠시나마 웃을 수 있기를,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기를. 별것 아닌 자신의 십자가에 대한 이야기지만, 누군가 이 책을 읽고 각자의 십자가로 인한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기를.




출처: 페브레로



저자 소개



저자: 노유하





목차



0. 여는 글 1



1. 내 일 4


1.1. 추진력과 지구력 / 1.2. 일시불의 나날 / 1.3. 너의 쓸모 / 1.4. 내일은 알 수 없지만 / 1.5. 나의 자퇴이야기 / 1.6. 여러분 꼭 하고 싶은 거 하세요! / 1.7. 그래요. 나 이기적인 교사입니다. / 1.8. 욕심쟁이, 우후훗! / 1.9. 불편하고 두렵고, 또 수치스러운 일(feat. 애증의 소론도) / 1.10. '나'를 인터뷰하다. <내 일> 편



2. 내 사랑 63


2.1. 봄날의 마끼아또 / 2.2. 나의 프러포즈 이야기 / 2.3. 나의 돌봄제공자 / 2.4. '나', '너' 그리고 '우리' / 2.5. 문과 아내 이과 남편 / 2.6. 가을방학 / 2.7. 울 줄 아는 남자라서 / 2.8. 똥꿈과 로또 / 2.9. 제주도 한 달 살기, 저희가 한 번 해봤습니다만 / 2.10. '나'를 인터뷰하다. <내 사랑> 편



3. 내 가족 125


3.1. 프리랜서의 추억 / 3.2.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1 / 3.3.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2 / 3.4. 그녀로 말할 것 같으면 3 / 3.5. 우리,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3.6. 당신이 허락한다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 3.7.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까? / 3.8. 웰컴 투 유뷰월드 / 3.9. 가족의 탄생 / 3.10. '나'를 인터뷰하다. <내 가족> 편



4. 내 친구, 그리고


4.1. 우리들 이야기 / 4.2. 힐링수국 / 4.3. 네 가슴에 자유를 허하라. / 4.4. 김지영씨와 정대현씨 모두 행복한 세상을 위하여 / 4.5. 당신의 짜장면은 무엇입니까? / 4.6. '나'를 잃지 않는 삶 / 4.7. 욕망해서 외롭고, 그래서 아름다운 / 4.8. 영화, 그리고 영화제 / 4.9. 당신이 사랑하는 소설의 첫 문장 / 4.10. '나'를 인터뷰하다. <내 친구, 그리고> 편



5. 닫는 글 244





본문



자반은 전신에 퍼지더니 급기야 입 안으로 올라가 큰 피멍울까지 만들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응급실에 간 나는 혈소판 수치가 2천밖에 되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았다. '아니,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13만 이상이어야 할 혈소판의 수치가 2천이라뇨.' 의사의 말에 따르면, 지혈 작용을 하는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다 보니 모세혈관들이 터져 자반이 생긴 것이고, 심하면 장내 출혈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더구나 나는 모야모야병 환자이기 때문에 특히 뇌출혈의 위험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이것 역시 원인을 밝혀야 했기에 악명 높은 골수 검사를 했다. 다행히 골수에는 이상이 없었고, 그 결과에 따라붙은 내 병명은 특발성혈소판감소성자반증(이하 혈감증)이었다. 즉, 원인을 알 수 없지만 혈소판이 감소하여 전신에 출혈이 생기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것이었다. 혈감증 역시 흔치 않은 병이었으므로 6개월 사이에 나는 희귀난치병을 두 개나 가지게 된 것이다.



- 신은 견딜 수 있는 만큼의 고통을 준다던데··· 그렇다면 신이시여, 저를 너무 과대평가하신 것 아닌가요? 저는 생각보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갑작스레 닥친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아 하루에도 몇 번씩 신에게 이렇게 항변했다. 그리고 날마다 두려움에 떨었다. 작은 두통에도 혹여나 뇌출혈일까 봐, 피부에 빨간 점이 생기기라도 하면 혹시나 혈소판 수치가 떨어졌을까 봐 전전긍긍했다.



- 이것 보세요 신(神)님. 제가 이렇게 쫄보라고요. 어떻게 저를 좀 평가절하해 주실 수 없을까요? (굽신굽신) 아니면 둘 중 하나라도 좀 없애 주시면 안 될까요? 멀쩡한 사람도 많은데 저만 희귀병이 두 개라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때론 이렇게 신에게 따지기도 하며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낸 지도 이제 1여 년에 가까워졌다. 다행히 스테로이드제 복용 이후 혈소판 수치는 정상 범위를 유지하고 있고, 지난달부터는 그나마 먹던 약도 끊었다. (덕분에 리바운드 현상으로 관절염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하지만 완치가 없는 병이기에 병원에 자주 내원해 검사를 받아야 한다.



- 8페이지 중에서 -




이 시대의 아이콘인 이슬아를 사랑한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사는 나의 배우자 슝이도 그녀를 사랑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몹시 질투나는 일이지만, 그 대상이 이슬아이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랑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와 나는 그녀의 저서 <일간이슬아>를 서로의 인생 책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책 속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도망치는 건 부끄럼지만 도움이 된다(上, 中, 下)' 편을 좋아한다. 이슬아와 친구 울, 그리고 울의 남자친구 류.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한 일본 여행기를 담은 에피소드다.



그녀의 친구 울은 목과 어깨의 끔찍한 통증과 걸핏하면 탈이 나는 위장으로 늘상 고통받는다. 자그마한 체구때문일까. 더위와 취위를 심하게 잘 타기도 했다. 그날도 역시 울은 물놀이를 한 후 쉽게 올라가지 않는 체온으로 힘들어했다. 슬아와 류가 따뜻한 모래를 양손으로 퍼 날라 해변에 누워 있는 울의 몸에 덮어주며 그나마 울은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슬아는 생각한다. 적어도 지금은 울이 많이 아프지 않고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게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리고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름다운 시리하마 해변에서 나는 울의 젖은 수영복을 벗겨 주고 따신 모래나 슬쩍슬쩍 덮어주었지만, 울과 함께 사는 류가 해야할 일은 그보다 훨씬 더 많고 촘촘할 것이다. 아픈 본인인 울이 해야 할 일은 그보다도 더 많고 끝없을 것이다. "



나는 이내 슝이 떠올랐다. 환자인 나를 위해 그가 했을 많고 촘촘한 일들을.


작년 가을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도, 올봄 혈감증(ITP)이 발병했을 때도 내 옆에는 엄마와 함께 항상 슝이 있었다. 나의 병휴직 신청을 위해 필요한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직장에서 내 짐을 챙겨 오고, 내 상태를 주변인에게 알리는 이 모든 것이 슝의 몫이었다. 그는 퇴원 후, 다섯 살 배기 아이의 속도로 걷는 나와 보폭을 맞추어 걸어 주기도 했다. 스스로에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는 내 기분을 달래 주는 것 역시 그의 몫이었다.



함께 외출을 할 때면 슝은 혼자일 때보다 더 바빠진다. 뇌혈관의 급작스러운 수축이나 팽창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외출 시 내게 필요한 물건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계절마다 달라지는데, 봄ㆍ가을과 겨울에는 털모자, 장갑, 목도리 등의 방한용품이, 여름에는 해를 가려줄 통풍 좋은 모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원활한 혈류의 흐름을 위해 수시로 물을 마셔야 했기 때문에 외출 시간에 따른 양만큼의 물도 늘 필요하다. 한 번의 외출을 위해 슝은 이 모든 것을 챙겨야 하고, 그래서 슝의 가방은 항상 무겁다.



어제는 가슴 저쪽으로 밀어 놓았던 우울함이 나를 찾아왔다. 잠시 외출을 다녀온 슝은 방 한 켠에 쪼그려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놀라서 달려왔다.



- 무슨 일 있어?


- 나 우울해.


- 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 SNS를 하는데 너무 부럽잖아. 나도 안 아프면 좋겠다고, 이 병이 없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나도 친구들처럼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하고 싶어. 남들처럼 조금 무리해 가면서 일도 하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어. 그런 생각하니까 너무 우울해.



슝은 그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그리곤 말했다.



-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 그래도 작년보다, 6개월 전보다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졌잖아. 꽃꽂이도 배울 수 있고, 화실도 다니게 됐잖아. 심지어 이렇게 글도 쓸 수 있게 됐고.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해. 우리, 하지 못하는 것보다 할 수 있게 된 것에 집중하자.



슝의 위로를 받은 나는 우울함을 조금 털어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슝을 보며 문득, 나는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힘듦과 아픔을 그간 어디에 호소했을까. 아마도 슝은 '보호자'라는 책임감 때문에 함부로 자신의 힘듦을 드러내지 못했을 것이다.



- '2.3. 나의 돌봄제공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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