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망각의 동물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써나갈 것입니다.
[저는 망각의 동물입니다] 저자 김대일(글) 김희은(삽화)
김미진 기자
rlaalwls@naver.com | 2020-03-05 15:40:00
책 소개
<저는 망각의 동물입니다>는 김대일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김대일 작가의 일기와 단상을 모아 엮었으며 김희은 작가가 삽화 작업에 참여했다.
김대일 작가는 책을 집필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저는 비록 '누구나' 편에 속한 사람이지만 제가 느낀 감정과 일상의 것들을 표현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했습니다. 어떨지는 당신의 판단에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저자 소개
저자: 김대일(글), 김희은(그림)
목차
총 78페이지
본문
망각이 발현되기 위해 필요한 요소가 있다면
맹세코 그건 '허기'다.
돌아서면 배고프고 돌아서면 배고프다.
- '허기' 중에서 -
어제 몸무게를 측정하였다.
결과는 참담.
살도 찌고 내장지방도 늘어나고 체지방도 늘었고 엉망진창이었다.
너무 화들짝 놀라 어젯밤에 곧바로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면서 다짐했다.
내일부터는
눈을 뜨는 순간 개구리처럼 튀어 올라 하루를 시작하리라.
-
아침이 밝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
난 어쩔 수 없는 인간인가 보다···.
더 이상 내가 싫어지면 안 될 것 같아 뭉그적거림을 최소화했고
평소보다 조금 일찍 침대를 빠져나왔다.
그래도 양심은 있나 보다.
긴 휴일이 끝난 다음 날은
언제나 그렇듯 잔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평소보다 많다.
덕분에 오랜만에 보람찬 느낌을 획득하였다.
"그래, 나는 그래도 양심은 있는 사람이야!
비록,
살이 조금 찌고 아침에 조금 뭉그적거렸지만 오늘 열심히 살았잖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미워질 것 같다.
- '무한 반복' 중에서 -
나도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너를 알 수 있겠어요.
너의 마음 헤아렸던 것은 경험에서 나온 추측일 뿐이에요.
미안하지만
너를 잘 알아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나도 모르는 나를 너무 믿지도 의지하지도 말아주세요.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주세요.
너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잖아요.
- '자주 하는 실수' 중에서 -
온도가 낮은 것도 아닌데 춥다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겨울의 시작부터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이번 겨울이 끝나고
새로운 겨울이 찾아올 때도 이 말을 하고 있겠지···.
겨울의 온도든 봄의 온도를 하고 있는 겨울이든
겨울에는 늘 이런 말을 할 것 같다.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겨울의 어느 날' 중에서 -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안다.
자세히 보면 다르다는 걸 알면서 꼭 먹어본다.
후회를 하지만 이미 늦었다.
후회의 수습을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겨우 원래의 상태가 된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내 앞에는 새로운 유형의 똥이 등장한다.
이 똥은 왠지 달라 보인다.
그래서 결국 또···.
-
이런 식으로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반복된 실수로 이루어진 인생이지만 과정을 들여다보고
떠올려보니 그리 나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
그래도 다음번에는 안 먹어야지.
- '실수가 아닐지도' 중에서 -
나같이 귀가 가볍고 얇은 유형의 사람에게는
단어 하나가 많은 것을 바꾸기도 한다.
'극혐'이라는 말을 모르고 살았을 때는
'싫다' 또는 '너무 싫다' 이 정도의 표현을 사용했는데
'극혐'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난 이후에
이 표현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어느샌가 나도 쓰고 있었다.
싫어하는 대상 그것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혹은
내 속사람이 그 대상을 싫다고 느끼는 감정의 질량은
이미 정해져 있는데 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면서
질량의 크기는 분명 바뀌는 것 같다.
그것을 꺼내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표현이
예전에는 '싫다'였고 지금은 '극혐'이다.
'극혐'이라는 말을 쓰면서부터
싫어하던 것들이 더 싫어지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속을 비우고 천천히 돌이켜보면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에
더 과격해지고 필요 이상의 싫음 에너지를 발생했던 것이다.
바르고 고운 말을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극혐'이라는 말을 '극혐'하기로 했다.
- '극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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