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시선에 개의 눈을 더한 독서
<읽는 개 좋아> 저자 구달
오도현
kwonho37@daum.net | 2019-12-25 20:51:21
책 소개
[읽는 개 좋아]는 구달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는 개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견공 집사이다.
책은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달라진 일상과 세상을 보는 달라진 관점을 담았다. 책이 주는 다양한 교훈과 경험은 반려견 '빌보와 함께' 또는 '빌보를 통해' 깨닫고 감응한다. 반려견 빌보와 함께 하는 삶, 책 읽는 삶, 개 좋은 것들이 가득한 글 쓰는 삶을 엿볼 수 있다.
개인의 작고 사소한 경험이지만, 이 사회가 내비치는 '개'에 관한 편견을 정확히 문제라 여기고 작은 행동으로 변화되길 꿈꾸며, 사랑하는 반려견 '빌보'와 함께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길 꿈꾸는 견공 집사 구달의 이야기는, 읽는 것을 좋아하고 개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좋아할 책이다.
저자 소개
저자: 구달
근면한 프리라이터. [아무튼 양말], [일개미 자서전], [한 달의 길이],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공저)를 썼고, [블라디보스토크, 하라쇼], [고독한 외식가] 등 독립출판물 4종을 쓰고 그렸다. 하지만 동네 주민들 눈에는 그저 '개 바보'일 뿐. 가끔 원고를 구상하기 위해 혼자 동네를 거닐 때면 사람들이 다가와 묻는다. "빌보는요?"
반려견 빌보 양육비를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 일주일에 사흘은 양말가게로 출근하고 있다.
목차
여는 글 8
개의 눈으로 독서 12 / 미래에서 온 닥스훈트 20 / 두 빌보 이야기 26 /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동물 36 / 이 죽일 놈의 이갈이 46 / 진정한 우정은 우정이 아니었음을 52 / 비밀의 풀숲을 달리다 60 / 공감의 이유 70 / 카를교에 서서 82 / 세상을 바꾸려는 작은 노력 92 / 누군가에게 응원이 되길 104 / 개를 위한 법은 없다 112 / 산책이 뭐라고 124 / 메밀막국수의 추억 134 / 나의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140 / 개와 인간이 살고 있습니다 148 / 슬픔을 덜어주는 따뜻한 온기 158 / 쥐와 개와 인간이 얽힌 세상 164
맺는 글 170
본문
나는 주로 침대에서 책을 읽는다. 낮에는 웅크려 엎드린 자세로 읽고, 밤에는 모로 누워서 읽는다. 그런데 종종 천장을 바라보고 똑바로 누워서 가랑이를 O자로 벌린 채로 독서를 이어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빌보가 내 다리 사이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하기 때문이다. 푹신한 강아지 전용 방석을 몇 종류나 사드렸지만 소용없었다. 결정적으로 졸음이 몰려오면 기어이 인간 넓적다리에 머리를 대겠다고 난리다. 침대가 비어 있으면 본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 황당해하는 얼굴이란! 머리 위로 말풍선이 뜬다. "어이가 없네?" 인간 집사는 잽싸게 하던 일을 멈추고 서둘러 침대로 점프해 이불을 덮고 자는 시늉을 할 수밖에.
빌보에게 두 다리를 내어주고서 이어지는 독서는 특별하다. 다리가 특별하게 저리기도 하거니와 아니 그게 아니라, 빌보의 따뜻한 온기가 넓적다리를 타고 올라와 심장을 한 바퀴 돌아 내 눈에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 같다. 책을 붙든 채로 나는 더 자주 울고 웃는다. 더 크게 눈을 뜬다. 전지적 개의 시점으로 문장을 곱씹는 버릇마저 생겼다. 오늘의 이 문장이 그랬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말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26쪽)
인류학자 김현경의 저서 《사람, 장소, 환대》는 어떻게 사람이 인정받는가로 사회를 정의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겪은 작은 소동을 떠올렸다. 산책 도중에 잠시 쉬려고 카페를 찾았을 때 일이다. 인터넷에서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여부를 검색하고, 매장에 전화를 걸어 반려견과 함께 가도 되는지 확인했다. 온라인상에 기재된 정보와 실제 운영 정책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기에 더블 체크는 필수다. 흔쾌히 오시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카페.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다. 정원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 목을 길게 빼서 입구 안으로 집어넣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까 전화 드렸는데요. 개 있어도 괜찮죠?" 돌아온 답변은 '동반'의 의미를 재정립한 참신한 발상으로 나를 당황케 했다. "아유, 그럼요. 개는 저쪽 나무에 묶어두고 들어오시면 돼요."
- '개의 눈으로 독서' 중에서 -
"얘 깍쟁이예요."
등산복을 입은 털보 사장님이 티코 뒷좌석에서 강아지 목덜미를 덥석 집어 들어 내 동생에게 건네며 말했다. 깍쟁이? 순둥이 레트리버, 겁쟁이 치와와, 장난꾸러기 비글, 똘똘이 푸들, 뽀뽀쟁이 몰티즈 같은 표현은 들어봤어도 깎쟁이 닥스훈트라니. 낯선 표현에 당황한 동생이 속으로 허둥대는 사이 털보 사장님은 사료며 배변패드 등을 마저 건넨 뒤 유유히 떠났다고 한다. "깍쟁아, 잘 지내!" 이 말 한마디를 남기고. 2015년 10월 3일. 청명한 가을, 날씨 좋은 개천절 휴일에 하늘이 열리고 빌보 a.k.a. 깍쟁이가 우리 집에 왔다.
빌보는 과연 깍쟁이였다. 밥을 먹을 때도 어찌나 까다롭게 굴든지.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 주었더니, 입으로 떠서 바닥에 쫙 뿌린 다음에 한 알씩 집어 오독오독 씹었다. 다음부터는 나눔 접시를 꼭 준비하라는 듯이. 졸린데 가족들이 잘 생각을 안 하면 코로 종아리를 툭툭 쳐서 눈치를 줬다. 빨리 이부자리 안 펴고 뭐하냐고. 배변훈련을 하루 만에 마스터하고는 자유자재로 써먹었다. 심기가 불편하면 엉뚱한 곳으로 당당히 걸어가서 보란 듯이 실례를 했다. 나도 당했다.
-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동물, 37페이지 중에서 -
책은 생각보다 훨씬 쉽고 유익했다.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문장이 약간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개의 다양한 행동과 반응을 담은 삽화는 한 컷 한 컷이 교과서였다. 콘라트 로렌츠가 직접 그렸다고 하는데, 실제로 자신이 키우고 관찰한 개를 대상으로 그려서인지 묘사가 생동감 넘쳤다. 그 그림들을 통해 나는 개가 언어가 아니라 몸짓으로 말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입 양쪽 끝이 위로 당겨져 있으면 즐겁다는 뜻이고, 꼬랑지를 말아 뒷다리 사이에 끼우면 무섭다는 뜻이구나. 칭찬해주면 입꼬리를 당기고 혼내면 무서워서 꼬랑지를 내리겠네. 비둘기파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 근거가 삽화에 다 그려져 있었다.
책에서 습득한 지식에 비둘기파의 주장을 조합하여 교육 방침이 정해졌다. 잘못한 일을 매섭게 혼내는 대신 잘한 일을 아낌없이 칭찬하기. 빌보가 엉뚱한 곳에대가 실례하면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심하게 치웠다. 빌보가 배변판을 사용하면 나라를 구한 영웅처럼 대접하며 칭찬을 퍼붓고 간식을 주었다. 자기와 안 놀아준다고 토라져서 길쭉하게 엎드리면 빌보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방으로 슬쩍 피했다. 빌보가 장난감을 물고 방으로 오면, 그때 우쭈쭈쭈 칭찬을 퍼부은 다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신나게 놀아주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빌보는 이내 요령을 터득했다. 사고를 쳐서 주의를 끄는 방법으로는 원하는 걸 얻기 어려우니,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요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책파-비둘기파 연합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사고 치는 횟수가 확연히 줄었다. 간식값을 대느라 허리가 휘는 약간의 부작용이 뒤따르긴 했지만.
빌보는 원하는 건 반드시 요구하고 감정은 꼭 표현하는 개로 자랐다. 배가 고프면 난타 공연을 하듯이 밥그릇을 두드린다. 산책하러 나가고 싶으면 산책 가방을 코로 툭툭 친다. 술래잡기를 원하면 장난감을 물고 와서 엉덩이를 흔든다. 창문을 활짝 열어 바람을 쐬고 싶을 때는 거실 창틀을 앞발로 벅벅 긁는다. 배변판에 쉬를 하고서는 냉큼 간식상자 앞으로 달려가 의기양양하게 턱을 치켜든다.
-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동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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