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앍 작가의 생활 소설 모음집

<세상만사 그런대로> 저자 읽앍

김미진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2-01 16:46:39


책 소개


[세상만사 그런대로]는 읽앍 작가의 소설이다.


책은,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 되겠소만 자신만의 적당한 높이를 찾기 위해 계속 공을 던지며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구러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2,000자 짧은 소설 39편에 담아냈다.


읽앍 작가의 [세상만사 그런대로]는 독자들에게 울고 웃는 시트콤과도 같은 이야기들을 선사할 것이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읽앍


내가 지닌 얘기들을 내 스스로 엮는다면 세상살이 모든 것이 그 얼마나 즐거울까요? '읽'다보면 '앍'소리가 나는 짧은 소설로 여러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읽앍'입니다.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주옥같은 시트콤들의 뒤를 잇고 싶은 마음을 담아 생활 소설 모음집 [세상만사 그런대로]를 만들었습니다.


목차


1부 세상만사 모든 일이 뜻대로야 되겠소만


3억 5천 15만 원짜리 만남 11 / 검은 거래 17 / 근정전에서 21 / 나쁜 손의 주인은 누구인가 27 / 대한연필깎이박물관 31 / 독자와의 만남 36 / 마이아토닉 염소 40 / 바람을 피우려거든 45 / 복수하는 사람 49 / 분홍색 연구 53 / 불꽃놀이 57 / 비둘기 63 / 사라진 담배 68 / 삼진아웃 74 / 억울하닭 78 / 엎질러진 우유 81 / 열람실 괴담 88 / 장난질 94 / 체험 밥의 현장 100 / 평창의 밤 105


2부 그런대로 한 세상 이러 구러 살아가오


5월 15일 113 / 구릿빛 진실 117 / 나 뾰루지 났지? 121 / 눈물 젖은 초코과자 124 / 다른 말투 속 그녀 128 / 돌리고돌리고 135 / 마음의 안대 141 / 만년분 146 / 몽환 150 / 명절선물 156 / 브로콜리 너땜에 160 / 빨간 맛 162 / 새싹들이다 166 / 세 번째 단추 170 / 은혜 갚을 아저씨 177 / 의정부행 막차 181 / 이름궁합 184 / 지구 밖으로 장외홈런 188 / 포춘 쿠키 198


본문


선생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 이야기 좀 들어보세요. 처음에는 고향에 계신 우리 어머니 때문이었어요. 이 못난 아들, 언제쯤이면 막내며느리 데리고 고향 내려오나 명절 때마다 한숨짓는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싶었거든요. 큰 형님은 비행기 타고 바다 건너 외국에서 형수님 데리고 오느라 1000만원도 넘게 썼고, 작은 형님은 무슨 결혼 회사에 가입해서 맞선 본다고 500만원도 넘게 썼다는데, 저라도 좀 아껴보려고 했죠. 처음에는 분명히 저한테 15만원이라고 했거든요. 일단 15만원을 내고 만나면,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결혼까지 가겠거니 싶었죠.


뭐 그렇다고 제가 형님들보다 잘난 것은 없어요, 사실. 그냥 형님들보다 나이도 어리고 아버지 닮아서 남자답게 생기기도 했고,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형님들 말이 나와서 그런데, 형님들처럼 돈을 써서라도 색싯감을 찾아야 하나 슬슬 고민이 됐던 건 사실이에요. 핸드폰 연락처를 열어서 가나다순으로 줄 세워서 몇 바퀴를 돌려봐도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볼 여자 하나 없으니 얼마나 딱해요. 그래도 비슷한 처지의 친구 몇 놈 불러내서 한 잔, 딱 한 잔만 하는 게 낙이었는데 그 녀석들도 하나둘 자기 짝 찾아 알콩달콩 연애 놀음하더니 식 올린다고 청첩장 돌리고는 연락도 끊기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나 보면서 TV 속 사람들과 술잔을 주고받다가 잠드는 게 일상이 되었죠.


그런데 얼마 전, 메시지 알림 소리에 핸드폰을 열어보니 '조건 만남, 외로운 밤 혼자라면 연락해주세요♡'라는 문자가 온 거예요. 보낸 사람 번호를 아무리 되뇌어 봐도 누군지 알 수 없었어요.


- '3억 5천 15만 원짜리 만남' 중에서 -


"이게 무슨 일이야!"


홍주는 교실 벽 너머 들려오는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복도로 나왔다. 복도가 비어 있는 것을 본 그는 옆 반 교실의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옆 반 담임교사인 완승이 교실 뒤편 사물함 근처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홍주가 다가가니 울상이 된 완승이 눅눅하게 젖어버린 그림 하나를 들어 보였다.


"미술 시간에 애들이 그린 작품을 게시판에 붙이다가 교감 선생님 전화 받고 교무실에 다녀왔는데 글쎄 이 그림 위에 우유가 엎질러져 있는 거 있죠?"


홍주는 완승이 들고 있던 그림을 살펴보더니 사물함 위에 쓰러져있던 우유갑을 들었다. 그는 코에 걸친 안경을 올려 쓰고는 우유갑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완승에게 물었다.


"선생님이 교실을 비운 시간은 얼마나 되지요?"


"글쎄요, 애들 보내고 바로 붙이다가 내려갔다가 왔는데…."


"그러면 이십 분 정도 되겠군요."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시는 거죠?"


홍주는 우유갑을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입을 대는 부분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 '엎질러진 우유' 중에서 -


"아빠, 우린 올림픽 보러 평창 안 가?"


"평창? 올림픽은 텔레비전으로 보는 게 제일 잘 보여. 가면 춥고 잘 보이지도 않아."


아이들은 올림픽이 시작하기 전부터 난리였다. 학교며 어린이집에서 몇 주 전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쳤는지, 집에 와서는 올림픽 이야기뿐이었다. 첫째는 체육 시간에 컬링을 배웠다며 집 안 구석구석을 대걸레로 닦고 다녔고, 둘째는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다 넘어져도 좋다고 다시 뛰어올랐다. 셋째는 그 좋아하던 뽀로로도 마다하고 수호랑과 반다비 그림만 그려댔다.


아이들의 호들갑 속에서 문득 30년 전 서울에서 열렸던 올림픽이 떠올랐다. 개막식이 끝나고 한동안 굴렁쇠만 굴려댔던 체육 시간, 올림픽 경기를 보고 왔다는 친구들의 자랑에 쉬는 시간마다 북적거렸던 교실의 모습.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인데 아이들에게 올림픽의 추억을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입장권을 알아보았지만,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인기 종목 입장권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지만 다섯 식구의 밥값에 숙박비까지 합치면 한 달 월급을 고스란히 바쳐야 할 정도였다. 아이들을 어떻게 달래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구청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썰매 종목 초대표가 있는데 보러 가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처음 보는 종목에 시간대도 늦어 망설였지만, 수화기 너머 이야기를 엿듣던 첫째의 등쌀에 결국 평창 행을 결정했다.


올림픽은 올림픽이었다. 하루 묵기로 한 리조트에는 꽤 많은 외국인이 보였다.


- '평창의 밤' 중에서 -


남수는 고시원 벽에 걸어둔 옷들을 바라보았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옷들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남수는 정장을 발견하고는 웃으며 꺼내어 들었다.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보러 다녔던 시절에 샀던 상의에 단추가 세 개 달린 정장이었다. '젊은 감각을 유지해야 하는 우리 회사에는 어울리지 않는 옷이군요.'와 '우리 회사는 안정감과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복장을 갖추어야 하기는 하지만, 단추 세 개 달린 옷은 조금 답답한 느낌이네요.' 사이에서 갈 곳을 잃었던 남수는 늘 채워야 할지 말지 애매한 세 번째 단추처럼 세상에 매달린 채 하루하루를 애매하게 버텨나갈 뿐이었다.


- '세 번째 단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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