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페르소나로 이루어진 세 가지 이야기

<주인공 없는 각본> 저자 오미연

김미진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2-01 12:34:19


책 소개


[주인공 없는 각본]은 오미연 작가의 소설이다.


소설은, 작가의 경험과 느꼈던 감정을 바탕으로 세 가지 이야기로 만들었다. 각각의 여자 주인공들은 마음속 깊이 갈등하기도 하고, 자신을 떠나보내기도 하고, 자신의 일상을 전시하기도 한다. 모두 작가의 페르소나이기도 한 이 여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문제에 대해 결론짓지 못한다. 설사 결론을 내렸다 해도 미래에 대한 여지를 남겨준다. 작가가 이 세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스스로 했던 고민 과정을 정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과정이야말로 작가에게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주인공 없는 각본'의 탄생 계기가 되었다.


작가는 바란다.


"저의 책을 읽고 마음에 잔상이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오미연


목차


총 78페이지


본문


아니,


나는 나의 대지를 건들지 아니하고 홀씨를 없앤다.


꼭 없앨 것이다.


이 홀씨는 사실 굉장히 가벼운 존재였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손으로 먼지 떼듯 떼 내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내 머릿속에는 쓰레기통이 1초도 걸리지 않고 바로 만들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나의 공간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미 실행하였고, 끝냈다. 행동은 의외로 간단했다. 그것이 다른 쓰레기와 먼지 더미 속에서 뒤엉켜 곰팡이가 되든지 뭐가 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홀시는 그렇게 사라졌고 공간을 게워냈다. 이곳에 약간 홈이 파여있어도 메꿀 수 있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쌓이니까.


이리도


이렇게도


쉽게 제거가 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왜,


고통스러움을 달고 다녔을까.......


나는 곧이어


공 위에서 넘어지는 것을 결심하고 손을 쥐고 눈을 감고 쿵- 떨어지고 스노우볼 속에서 흔들리는 방향에 둥-둥- 몸을 맡겨 동화시키고 바다를 빨대로 꽂아다 쑤우우웁- 마셔버리고 동상을 와장창! 깨뜨려버리고 태풍의 눈 속 감정을 휙- 날려버리고 이 모든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불꽃처럼 일어나 파바밧! 터지면서 곧 마그마로 촤랏- 바뀐다. 그리고 나는 내 식도를 타고 올라와 해방된다.


- 12페이지 중에서 -



처음에는 이해가 된다. 아니, 안된다. 의 연속이었다. 1년은 이해가 되었다고 여겼고, 1년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하루는 완벽하게 그의 입장에 서서 알았다고 자부하였고, 그의 시선으로 사물과 상황을 바라보았다. 통달한 듯 전부 이해를 하였다. 다른 하루는 도저히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준을 넘어섰기 때문에 길을 가다가도 괘씸했다. 혼자 여러 개의 입장을 만들어 놓아서 어느 입장으로 결론을 내려야 할지 방황했다. 그러나 실로 덧없는 짓이었다. 두 가지가 각자 입장을 지키려 하면서 혼재되었다. 마치 해리포터와 볼드모트의 최후 결투에서 합쳐지는 것처럼. 지킬 앤 하이드처럼. 열네 살에 처음 먹어보았던 아이스크림 토네이도처럼.


그렇게 내 안에 공존하는 이면의 맛은 씁쓸하였다. 설사 이해를 한다고 해서 그 맛은 조금 더 달아지지는 않았다. 변함없이 쓴맛이었다.


그중, 시간이 알려주었다.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방법을. 그것은 반드시 같은 상황에 반대 입장이 되어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나에게 반복하고 보여주었다.


반복되는 상황에 아픔이 맴돌지만 끝까지 가져가본다. 굳이 나누진 않는다. 인사이드아웃의 새드니스와 조이가 합쳐지는 것처럼.


- 33페이지 중에서 -


자신이 태어난 20세기를 좋아하며 21세기에 활동하고 있는 사람. 낯을 가리지만 사실은 대담하다. 그리고 길고 검은, 하지만 끝이 조금은 푸석한 생머리를 늘어뜨린다. 하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때나, 정말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면 머리를 질끈 묶는다. 그녀는 남들에 비해 4-5년은 앞서있는, 시대에 맞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 37페이지 중에서 -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에요?' 하는 질문을 떠오르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진지한 얼굴, 진지한 표정으로 대뜸 엉뚱한 짓을 곧 잘하는 그녀였다. 예컨대 머리 위에 주먹한 공을 올려놓는다든지(본인은 중심을 잡기 위한 연습이라고 한다.), 치통이 있는 사람처럼 손수건으로 얼굴 전체를 둘러 묶는다든지, 입으로 만화 효과음을 만들어내면서 걸어 다녔다.


...그래서 가게에 들어선 손님들은 그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또, 밖에 걸어 다니면 거리를 지나가던 행인들이 그녀를 궁금해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냐하면 전시관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쇼윈도 안에 들어가 '그녀 자신' 을 전시했다. (드디어) 쇼윈도 안에 자신의 애장품들, 일상 물건들, 포스터-그 외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의 한 장면들-와 1인용 소파를 디피했다. 누가 보아도 하나의 방이었다.


- 46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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