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한 상상력으로 바라본 28개의 반항적이고 풍자적인 초단편소설들
<혐기성생명체> 저자 오민근
김미진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2-01 10:16:50
책 소개
[혐기성생명체]는 오민근 작가의 초단편소설이다.
책은 [허공을 달리는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예 출발하지 않은 사람의 기록보다 일단 출발해서 뛰다가 넘어진 사람의 기록이 더 높다. 선수는 출발선에서 다른 선수들과 바글바글 몰려있을 때보다 트랙에서 홀로 뛸 때 더 자유롭고 창의적이다. 바글바글 몰려있는 걸 선호한다면 선수가 아니라 관중이 되어라."
그렇게 달리기 선수는 자신을 속박하는 트랙을 벗어나 허공을 달리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허공을 달리는 신기한 사람을 보기 위해 모여들고 그곳에서 그는 공중으로 솟구쳐 하나의 별이 된다.
그리고 [기동성]을 추구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
"인간은 땅에서 걷고 뛰었다. 그러나 매를 쫓아갈 순 없었다. 그는 매를 타고 날고 싶었다. 기동성을 가진다는 것. 그것은 더 멀리서 더 높이서 더 많은 것을 가진다는 걸 의미한다."
그는 더 멀리서 더 높이서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무한한 기동성을 추구하다 육체를 버리고 스스로를 데이터화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어디에든 존재하는 그를 사람들은 신이라고 부른다.
[혐기성 생명체], 대기 오염으로 산소로 호흡하는 게 불가능해진 세상, 산소를 증오하는 혐기성 생명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놈부터 마스크를 벗겨라. 검은 이빨이 말했다. 놈들이 환호했다. 이제 보니 놈들 모두 이빨이 새까맸다. 신입은 발길질을 하며 강하게 저항했다. 신입도 호흡을 최대한 참고 있었는지 얼마 가지 못해 캑캑댔고 남은 산소를 다 마셔버렸다. 산소를 다 썼나 보지. 걱정 말라고, 오염된 산소가 여기 충분하니 들이마셔 보라고. 네가 선택받은 자인지 확인해보겠다. 놈들이 신입의 마스크를 벗겼다. 신입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숨을 참았다. 놈들이 내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어 도울 수 없었다. 칼이 문제가 아니라 이미 나 역시 호흡할 수 없어 돕는다 해도 둘 다 질식할 게 뻔했다. 남은 산소량 6%."
이 밖에 우리 사회를 조금 특이한 상상력으로 바라본 28개의 반항적이고 풍자적인 초단편 이야기들을 지나 책은 [집단생존본능]에 대한 수업으로 마무리된다.
이제는 더 이상 상식적이지 않은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사회.
그 사회 속의 비상식적인 이야기들을 상식적으로 풀어낸 28개의 초단편소설들을 [혐기성생명체]에서 즐길 수 있다.
저자 소개
저자: 오민근
목차
허공을 달리는 사람 4 / 기동성 14 / 군계일학 21 / 고시전 24 / 혐기성생명체 44 / 무지개우유 61 / 부모맞춤서비스 67 / 파괴자 71 / 자살공화국Ⅰ 72 / 뚱토론 78 / 소리빛 83 / 자유인 85 / 컴포지션 96 / 하늘배 102 / 충무로계급제 105 / 파리에서의 점심식사 110 / 꿈에 112 / 긴급통화조치법 115 / 초콜릿향 합성착향료 0.24% 116 / 자살공화국Ⅱ 118 / 감기인 127 / 고객상담 133 / 모범시민 138 / 기억상실증Ⅰ 143 / 중력종말론 151 / 기억상실증Ⅱ 169 / 구름사냥꾼 162 / 집단생존본능 166
본문
"실내산소공급세 이달말 5% 인상할 것."
"초미세먼지농도 지난달보다 1% 높아져… 전체 대기중 60%차지."
"지난해 연간 공기 오염 사망자 수 1억 돌파."
"빈곤층 호흡권 보장문제 심각, FREE OXYGEN ZONE 확대 요구."
"혐기성 생명체 유통조직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
"신형 산소발생기에 유해물질 검출…인체에 큰 위험 없다."
"혐기성세균 감염 공포 확산."
"사람은 누구나 건강한 실내공기를 호흡할 권리가 있다."
이번 달 들어서 혐기성생물에 대한 민원 신고가 두 배로 뛰었다. 어떤 미친놈들이 이제는 혐기성생물을 대량 사육하기 시작했다는데 아직 정확한 소재파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기환경부의 내부 수사팀이 조사하고 있는데 진전이 없는 듯하다. 피해신고가 치솟는 이유가 혐기성생물 대량사육건과 연관이 있는듯싶다. 어서 빨리 그런 미친놈들을 수사팀이 잡아 들여야 일이 좀 편해질텐데.
혐기성 생명체가 날로 늘어감에 따라 깨끗한 산소의 비중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혐기성생물이라는 것이 등장한 게 이제 십 년이 좀 넘은듯한데 그동안 잠잠하다가 요새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어렸을 적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그저 작고 귀여운 외계생명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오염되지 않은 산소가 희미하게나마 존재했기 때문에 혐기성 생물들이 크게 자라지 못했다. 통계를 보면 인간의 평균신장이 십 년 새 6센티가 줄어든 것에 반해 포획되는 혐기성 생물들의 크기는 그새 1미터나 자랐다. 전날 포획한 녀석만 해도 기존에 보급되던 포획망에 들어가지 않아 절단을 내야 했다.
혐기성생물에게 산소는 독이다. 태초에 산소를 만드는 엽록소가 등장했을 때 혐기성생물은 대량 살상당해 이미 사라졌었다. 그러나 대기오염의 결과로 산소농도가 점차 옅어지자 혐기성생물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환경이 만들어져버렸다. 자연스럽게 혐기성 생물들이 다시 나타났고 혐기성 생명체들은 스스로 생존을 위해 혐기성세균을 공기 중에 퍼뜨려 산소농도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혐기성세균은 독성 가스를 내뿜는데 이 세균이 산소로 호흡하는 생명체의 폐에 대량 흡수되면 생명체가 즉사한다. 만약 혐기성생물이 실내에 들어오기라도 한다면 산소 공급기가 정상작동하더라도 공기 중에 독성 가스를 퍼뜨리기 때문에 산소로 호흡하는 인간 및 다른 생명체에게 치명적이다.
혐기성 생물들이 점점 많아지면 대기 중 안전한 산소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산소 공급기에서 더 많은 산소를 소비해야 한다. 매월 내야 하는 산소공급세가 늘어난다는 뜻이다. 산소공급세는 거주지의 면적과 그곳에 거주하는 구성원의 비율로 기본 공급 가격이 한 달 단위로 책정된다. 실내에 설치된 공기측정기에서 들숨과 날숨 사이의 산소량, 이산화탕소량 변동 값을 분석해 산소 소비량을 분당 측정하여 세금을 부과하고 배출 확인된 오염물질에는 따로 벌금을 부과한다. 외출 시에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충전식 휴대용 산소 공급기의 사용료도 매달 내야 한다. 이것들을 내지 못하면 산소를 공급받지 못해 정상호흡을 할 수 없게 되고 오염된 산소 흡입으로 죽게 될 것이다.
- '혐기성 생명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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