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무거운 고민, 상처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

<사랑의 파편> 저자 세영

김미진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2-01 09:49:02


책 소개


[사랑의 파편]은 세영 작가의 소설이다.


책은 각자의 상처를 가지고 만난 남녀의 보편적이지 않은 연애를 통해 '사랑'에 대한 무거운 고민, 상처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단상집 또는 에세이 형식을 갖춘 소설로, 1쪽에 1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고 남자 주인공 30편, 여자 주인공 30편으로 갈래가 나뉘어져 있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세영


독립출판 시집 「각혈」을 시작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종종 플리마켓에 나가 독자들에게 책을 건넨다.


94년 초겨울에 태어났다.


목차


1. 그녀에 대한 파편


2. 그에 대한 파편


본문


새 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처음 비가 오는 날이었다. 쉬는 시간, 강의실은 그것과는 별개로 들떠있었다. 비가 온다는 우울에 잠긴 것은 나뿐인 듯싶었다. 그런 동떨어진 기분으로 강의실 창 밖에 시선을 두었다. 봄비는 떠나려는 겨울을 그리워하며 우는 것 같았다. 세차게 쏟아져 내렸다.


피어난 지 얼마 안 된 벚꽃들이 떨어졌다. 시커멓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누런 꽃잎들이 표류했다. 우산을 쓰지 않은 여자가 그 위를 걷고 있었다. 그녀가 발을 뗀 자리마다 봄은 구겨졌다.



나는 그 께름칙한 장면에서 소년을 보았다. 내가 손을 꼭 잡고 있지 못했던. 그래서 잃어버린. 그녀는 소년처럼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처럼 희미했다. 그게 너였다. 나는 너를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


너를 불러 세웠다. 너는 뒤돌아 나를 본다. 숨을 참느라 고개를 떨궜다. 네 젖은 신발 아래 짓이겨진 꽃잎이 있다. 그때에 내 슬픔은 너를 향한 것이었다. 비어있는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다. 사라지지 않게끔. 그해 우리는 그렇게 만났다.


- 봄, 8페이지 중에서 -


간유리 창으로 얇게 부서지며 드는 햇살은 고운 가루처럼 공기 속에 떠있다. 종이 위에는 나른한 볼펜이 누워있고 책장을 가출한 때 묻은 책들은 오후의 자장가를 부른다. 내가 의자에 앉으면 의자는 무거운 사랑을 시작한다. 나는 잠든 너를 관찰한다.


네 헝클어진 머리칼에는 고단함이 있다. 땀에 전 잔머리가 이마에 글자처럼 적히어 있다. 자면서도 미세하게 떨리는 네 눈에는 불안함, 악몽을 꾸거나, 악몽 같은 하루를 보낸 다음에 그런다. 네 코는 자존감이며 뭣도 그것만은 어쩌지 못한다. 네 입술은 갈망, 나는 침을 삼킨다.



네가 몸을 일으킨다. 덜 깬 눈을 반쯤 뜨고 희미하게 쳐다본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종이비행기로 접어 날렸다. 유유히 날아간 종이비행기는 네 가슴팍에서 추락한다. 너는 그것을 찢고 구겨서 나에게 던진다. 우리는 동시에 웃는다.


- 어느 나른한 오후, 9페이지 중에서 -


내가 외출을 하면 그는 누운 자리에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밤으로부터 나를 지구로 하는 위성이 되어 궤도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그는 머리맡에 시체처럼 널브러진 종이와 함께 누워있다. 종이에 악필로 적어놓은 글을 볼 때면 그의 사랑은 남루한 헝겊조각 같았다. 삭아서 바스라질 것 같아 그를 살며시 안아주곤 한다.


가끔 나를 빤히 쳐다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나도 빤히 쳐다본다. 그의 눈에는 안개가 자욱하다. 저 안개 속에 나를 사랑하는 사내가 있다. 나는 가늠하지 못할 그의 가장 은밀한 곳에 나를 보며 우는 사내가 있다.


- 그의 궤도, 40페이지 중에서 -


그에게 편지를 받는 것은 내 악취미 중 하나다. 온갖 아름다운 표현을 악필로 적어놓은 것도 웃기지만 좋은 말 예쁜 말을 쓰기 위해 관자놀이를 쥐어짜는 그 모습이야 말로 킬링 포인트다. 나는 일부러 그를 떼어놓고 어딘가로 떠나기도 한다. 순전히 그의 편지를 받기 위해서다.


언젠가 한 번, 그에게서 편지를 받고 이별을 통보했다. 편지는 프린터로 깔끔하게 인쇄된 A4용지였고 심지어 내용도 어디선가 복사한 것이었다. 그는 이미 나의 악취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며칠 뒤 악필의 지저분한 편지를 받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바이러스 같은 사랑이라고 말하면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어째서인지 왜냐고 묻지 않는다.


- 악필의 편지와 악취미, 41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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