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적 관계의 씁쓸한 뒷맛
저자 홍유진
오도현
kwonho37@daum.net | 2020-05-31 12:03:00
책 소개
[컵라면 소녀]는 홍유진 작가의 어른들을 위한 지독한 동화 시리즈의 1편이다.
평범한 구멍가게에서 살던 컵라면 소녀는 주인아주머니가 보던 아침 드라마의 영향을 받아 TV 같은 연애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세간에서 보기에 소녀는 연애를 하기엔 그닥 예쁘지도 않고 너무 평범하기만 하다. 때문에 소녀의 지인, 아니 지물은 연애 팁을 알려준답시고 컵라면 소녀에게 온갖 오지랖을 떨지만, 오히려 이것이 컵라면 소녀의 연애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홍유진 작가의 [컵라면 소녀]는 미디어에서 상품화된 연애 클리셰나, 연애 상대의 평가 척도가 되어버린 외모지상주의 등, 겉멋만이 중심 가치가 되어버린 '인스턴트 관계'를 은유적으로 다룬다. 포토콜라주 삽화를 곁들여 더욱 인스턴트 같은 이미지의 컨셉을 잘 살린 책으로, 홈리스 자립 프로젝트 월간지 [빅이슈] 2016년 11월 호에 간략히 소개된 적이 있다.
저자 소개
저자: 홍유진
1인 출판 레이블 [狂傳社(광전사)]의 전속작가 겸 대표 겸 편집부장 겸 영업부장 겸 알바생. 하필 '유진'이란 이름이 80년~90년대생 사이에선 남녀 불문하고 너무 흔하게 쓰던 것이라, 독립출판을 할 때 책에 저자명을 적어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이 고민이었다. 그래서 가상의 회사인 [광전사]의 로고를 만들어 붙인 게 지금의 유령출판사 전속 작가겸 대표겸…(후략) 생활의 시작.
2016년 [컵라면 소녀]와 [흡혈공주]를 시작으로 [망한 여행사진집], [사망견문록] 등의 독립출판물을 제작하였다. 그 중 [망한 여행사진집]은 작가의 민망함을 판 대신 독립출판계에서 약간의 유명세를 벌어들인, 뜻밖의 출세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목차
총 66페이지
본문
옛날 어느 동네 골목길 안쪽에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크기는 작았지만, 간식거리라면 없는 게 없는 곳이었죠. 그리고 가게에서 조금 안쪽, 진열장 가운데 층에는 한 컵라면 소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소녀는 밋밋한 흰 그릇 몸뚱이에 맛도 별로 맵지 않은 평범한 컵라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원래 속으로는 생각이 참 푸짐했던 아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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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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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위 칸의 언니들은 전부 고풍스러운 색의 종이에 금색 글씨가 쓰인 겉옷을 입고, 간혹 금색이나 은색 속옷으로 몸을 곱게 싼 언니들도 있었습니다.
반면 소녀의 포장은 뚱뚱하고 수수한 흰 그릇 몸뚱이가 전부였습니다. 컵라면 소녀는 사실 자신이 아주 평범하다 못해 못났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소녀는 창피해 얼굴을 푹 숙인 채로 과자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저도 언니들처럼 예쁘게 꾸미면 누가 절 봐줄까요?"
"당연하지. 남자들이란 다 똑같아!" 과자 칸의 언니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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