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날아라 고양이> 저자 강윤호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1-29 00:30:21
책 소개
[날아라 고양이]는 강윤호 작가의 단편소설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믿기 힘든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는 사람들.
세상의 끝에서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시간.
참기 힘든 층간 소음에 대한 이야기.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강윤호 작가의 소설 [날아라 고양이]의 세계로 흠뻑 빠져보자.
저자 소개
저자: 강윤호
2019.01 단편소설 [선이란 무엇인가] 출간
2019.07 문집 [이웃집 책방] 출간 (공저 참여)
글을 씁니다.
언제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단지 꼭꼭 숨겨둘 뿐이에요.
목차
뱀 7
날아라 고양이 23
신종 바이러스 63
마포대교의 밤 77
201호 109
본문
효경이 집에 처음 간 게, 아마 사귄 지 이 주 정도 되었을 때일 겁니다.
집은 중구청 앞에 지하철 공사 중인 쪽으로 보면 바로 보이는 주상복합 빌라고요, 거기를…… 투룸이라고 하면 되려나? 조금 넓은 거실이 하나 있고, 거기에 조그만 방이 하나 붙어 있는 그런 곳이거든요. 베란다고 있기는 한데 없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너무 작아서. 빨래 건조대 하나만으로도 꽉 차는 정도? 그래도 건물은 꽤 높았어요. 효경이가 9층에 살았는데, 위로 몇 층 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집안 전체에 고소한 듯하면서도 지릿한 냄새가 가득 배어있더라고요. 말할 것도 없이 고양이 때문이었습니다. 고양이가 있다는 얘기를 미리 듣기는 했었는데, 집에서 그런 냄새가 나니까 처음엔 조금 놀랐어요. 기분 좋은 냄새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불만스럽게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도 고등학생 때는 햄스터를 기른 적이 있고, 햄스터도 냄새는 나거든요. 그래서 냄새 조금 나는 정도 가지고는 아무런 불만도 생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건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무튼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마자 거실 한 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 포장해 간 음식을 내려놓았어요. 아, 음식이요? 조각피자랑 치킨 샐러드, 그리고 맥주……? 더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기억이 안 나네요.
비닐 봉투에서 바사삭하는 소리가 나니까, 소리를 듣고 베란다 안쪽에 숨어있던 고양이가 슬금슬금 기어 나왔어요. 회색하고 검은색 줄무늬로 덮여 있는 몸에, 발이나 주둥이 쪽은 온통 새하얀 녀석이에요. 양말 신은 것처럼요.
녀석은 도도한 걸음으로 천천히 나오다가, 저를 발견하고는 깜짝 날라서 쨉싸게 캣 타워 위로 올라갔습니다. 제가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효경이가 저한테 이야기해주더군요. 이름은 쿠키이고, 남자애라고요.
쿠키……
처음에는 낯설어서 그런지 저를 경계하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알아서 다가오더군요. 귀여운 녀석이었습니다. 예쁨받을 만한 행동을 곧잘 해요. 간식도 잘 받아먹고, 저한테 붙어서 자기 몸을 비비기도 하고, 제 앞에 벌러덩 누워서 자기 불알이 있던 자리를 할짝거리기도 했습니다. 아, 이해하시죠? 수컷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더이상은 수컷이 아닌…… 뭐 그런 녀석이에요. 흐흐.
웃기지 않으세요? 이럴 땐 좀 웃어주시지.
아무튼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녀석에게 푹 빠지게 되더군요. 워낙에 귀여운 녀석이라서. 제가 자기 고양이를 예뻐하니까 효경이도 만족스러워하는 듯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여자친구와 귀엽고 애교 많은 고양이. 완벽하죠?
그날 이후로 저는 틈만 나면 효경이 집에 놀러가고 싶어했어요. 저도 그렇고, 효경이도 직장에 다니는 입장인지라 원하는 만큼 자주 만날 수는 없었는데, 둘 다 시간이 맞을 때면 저는 꼭 '쿠키를 보고 싶으니 집에서 시간을 보내자'라며 효경이를 조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효경이는 제가 자기 집에서만 데이트하려고 하는 게 어딘가 못마땅했던 모양이에요. 자주 만나는 것도 아닌데, 때때로 밖에서 데이트다운 데이트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저를 집에 안 들이려고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그냥 같이 있으면 있는 거지, 꼭 밖에 나가서 뭘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요. 아무튼 뭐, 그랬습니다.
- '날아라 고양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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