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닥다닥 어깨를 맞대고 있는 가구들처럼 빼곡히 배치된 한 사람의 슬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저자 정재호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1-25 19:27:04


책 소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정재호 시인의 시집이다.


지난해 [참을 수 없어 쓴 詩]를 출간한 시인은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러한 날들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 달, 딱 한 달뿐이었다. 그렇게 책을 출판하고 삼 개월이 지났지만 원고료는 하나도 받지 못했다. 시인은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공모전을 준비하며 도서관에서 종일 시를 썼다. 어머니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원하는 글을 써도 된다는 것을, 꿈으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뜨겁게 보낸 여름을 지나 가을, 시인은 공모전에 떨어졌고, 날이 갈수록 글을 쓰는 것에 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인은 시를 쓰다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내가 겪고 있는 슬픔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오는 감기 같은 것은 아닐까, 각자의 상황은 다르지만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지금 이 고독함을 기록하는 것은 스스로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한 마음인 걸까, 아무래도 그렇겠지? 나는 아파본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글이라는 형태로 행복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세상에 필요한 밝은 사람이니까.'


시인은 머잖아 이 시기가 오는, 벌써 이 시기를 겪고 있는,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그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번 시집을 만들었다.


정재호 시인의 시집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정재호


1997년 세상에 필요한 밝은 사람으로 태어났다


2018년 대한문인협회 최연소 시인으로 등단했다


대표작으로는 [참을 수 없어 쓴 詩] 시집이 있다


목차


전이하는


슬픔 8


1부


반딧불이 12 / 꿈 13 / 도스토옙스키 14 / 너의 얼굴을 덮었다 15 / 시간 16 / 행복유예 17 / 心 18 / 잔존기억 21 / 안녕 22 / 파도와 등대 이야기 23 / 참을 수 없어 쓴 詩 24 / 청춘 25 / 누군가의 연약한 영혼을 다루는 일 26 / 술 39


2부


멀어진 것들에 관하여 42 / 관계 43 / 친구 44 / 후회 45 / 순례 그리고 길 46 / 소망 47 / 무관심 48 / 愛 49 / 잘 자 50 / 그날의 밤 52 / 버티고개 53 / 버스 54 / 현실세계 56 / 상실 57 / 애도 58 / 변화 60


3부


첫사랑 78 / 상처 79 / 서머싯 몸 80 / 사라진 여유 82 / 이별식탁 85 / 햄릿 86 / 시 87 / 겨울의 초상 88 / 여름의 장례를 위하여 겨울에 장례를 89 / 하와이에서 있었던 일 90 / 미아 92 / 불청객 93 / 無 94 / 오늘 할아버지가 죽었다 95 / 잠 99 / 여행 100


마지막으로


새벽 110


본문


무한한 가능성 하나만을 믿고


세상에 도전했던 날들이 있었다



실패를 거듭했으나


성공의 시작은 실패부터라고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봐도


성공은 아득히 먼 만 너머의 불빛처럼


결코 손에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믿음으로 나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확실한 보상을 움켜쥐러


어둠 속 사람들 대열에 합류한다


희망의 불빛과는 다른 생존의 불빛이


별들을 삼킨 공장에는 별빛이 없었다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슬픔' 중에서 -


상실감도 없는 실망도 없는


이 도시에서 나는 허공을 벗 삼아 헛소리를 해댔다. 며칠을 앓아누워도 나를 찾아오는 객이 없는 방에는 이른 밤만이 찾아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깼을 때였다. 언제나 그렇듯 빛이 들어오는 걸 힘겹게 막고 있는 커튼은 지쳐 보였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약봉지는 고통이 없어 보였다. 완벽한 우울함 그대로였다. 머리맡에 놓아둔 물을 한잔 마셔야만 속이 풀릴 것만 같아 반쯤 감긴 눈으로 머리맡을 더듬거렸는데 차갑게 식어 있어야 할 컵은 따스한 온기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건 컵이 아니었다. "일어났어요?" 그건 그녀의 발목이었다. "연락이 너무 없길래 무작정......." 그녀에게는 없지만 나에게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마음이란 게 울컥했다. 외로웠다고 보고 싶었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마음이 없으니까. 내가 아무리 그녀를 사랑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 나는 계속 잃어만 가야 할 테니까. "볼이 뜨거워요 내 손보다 더." 친절한 그녀의 손에서 마음과는 별개로 독립적인 무언가 느껴지는 게 서글펐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결국엔 참지 못한 내가 말했다. "나를 안고 싶으면 안아도 내가 필요하면 나를 사용해도 좋아요 당신은 이 도시에서 모든 것들을 손에 쥘 수 있어요 단 마음이란 것을 제외한." 그녀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 창문을 열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커튼을 걷고 빛과 바람을 너무도 쉽게 방으로 들였다. 바람이 내 방에 잠시 머물다가 나의 간절했던 바람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완벽한 이 도시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心' 중에서 -


죄 없는 밤에도 나는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너를 생각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기 때문에


- '도스토옙스키' 중에서 -


주위에는 쉴 새 없이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그걸 따라잡기에도 벅찼다 쉬고 싶은 날에는 쉴 수도 없었고 아픈 날에는 너무도 아파야만 했다 가끔 울적할 때면 나의 청춘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행복하냐고 그럼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대답을 유예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 질문에 관하여 답을 할 자신이 없기에


- '행복유예'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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