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간직한 이들에게

<당신께선 영영 이 편지를 모르셔야 합니다> 저자 현상현

허상범 기자

kwonho37@daum.net | 2019-11-23 00:07:21



책 소개


[당신께선 영영 이 편지를 모르셔야 합니다]는 현상현 작가의 에세이다.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 형식의 시에세이, 산문집이다.


작가가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써오던 글들은 어느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더 나아가 책으로 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말한다. 언젠가 자신이 사랑하는 S에게 전하리라 다짐하며 쓴 한 권의 연서이자 응원과 위로로 용기를 주신 많은 분들께 드리는 한 권의 답서라고.


현상현 작가의 에세이 [당신께선 영영 이 편지를 모르셔야 합니다]는 그리움을 간직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출처: 인디펍]

저자 소개


저자: 현상현



목차


서문


1장. 당신의 이름을 내 입에 담그면 싱그러운 여름이 몇 송이 꽃처럼 피어날 테니


2장. 이런 파렴치한 생각들로 제 밤하늘은 치 떨리게 아름답습니다.


3장. 우리 천천히 오래도록 맑아지자


4장. 사랑하는 S에게


본문


오뉴월 흑연 같은 밤하늘에


지난해의 일기를 빼곡히 적어두었습니다.


무릎베개 위로 널브러지던 밤과


별들 사이로 불어오는 풀내음과


깜빡 잠들었다 설핏 깨어나면


몸을 기울이며 웃어 주던 당신


따위의 글이 적혀있는


'그해 여름 우리는...'


꼭 그렇게 시작하여


'제 모든 계절이 되어주세요'


라고 끝맺는 일기를 적어두었습니다.


- 일기, 10페이지 중에서 -


발목에 석양이 찰랑일 때마다 제 지친 버릇을 핥아주세요.


가장 빛나는 별을 교살하며 어둠 속에 수장될 때에도


또박또박 목놓아 우는 이 축축한 안부를 쓰다듬어주세요.


느리게 웃는 게 꼭 저 같아서


당신을 거울처럼 비춰볼 때면 허무도 향기로웠답니다.


당신은 저를 비웃으면서도


해변, 하얀 빵조각, 오후 3시의 분식집


아기의 손등, 산호초 따위의 낱말들로 나풀거렸죠.


덕분에 제 발음은 당신 앞에서만


조율되지 못한답니다.



노을은 무성하고


제 입 속엔 낮게 가라앉은 역설이 있답니다.


노을은 무성하고


혀 위에서 범람하는 고약한 당신의 이름 하나 있답니다.


- 이름, 11페이지 중에서 -


당신은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고 했지요.


무릎 나온 잠옷을 입고 영화를 보거나


낡은 다방에서 마시지도 못할 쌍화차를 주문해보는 것.


잊혀가는 가수의 허름한 공연을 찾아가는 것.


꼬옥 안아온 그 모든 일을 우리가 재잘거릴 때


제 천장엔 별자리가 새겨졌답니다.


하나하나 맞장구칠 때마다 우린 반짝였고,


당신은 제 밤하늘이 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세어보던 밤은 겨울까지 닿고


오늘도 그대 생각에 달이 가득 찼습니다.


작은 노랫말들로 달력을 채웠으니


당신께서도 지난날을 사뿐히 추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달력을 넘기며, 12페이지 중에서 -


물어보기도 전에 울어버리는 간곤한 꿈은


새벽에만 풍요로워지니


사방이 동화 속인 양 나빠지기에 퍽 좋았습니다.


연일 사랑은 끝이 났다고 쓰면서도


다시 떠오르고 다시 지고 다시 내리쬐고 모호하게 죽었다가


뜻밖에 부활하길 반복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도


가난한 제 목청은 당신을 웃게 할 음표 하나 그려낼 줄 모르니


미끄러운 자기연민 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답니다.



예컨데 가뭄 든 비유로는 사랑하는 이를 잠재울 수 없는 법이며


제 아무리 소나타에 소나타를 덧씌워도


세레나데가 될 수 없는 법이니까요.


- 세레나데, 18페이지 중에서 -


지나치게 분분하여 오히려 가난해지는 고백이 있습니다.


'사랑해요. 내 사랑' 따위로 떠돌면서


부끄러움도 없고 자존심도 없이


달콤한 말들만 녹여 먹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버석한 제 입술을 핥을 때면


달고 시큼하여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숨결이 느껴지곤 하는데


이는 필시 당신께서 묻혀두신 것이라 믿겠습니다.


이깟 새콤달콤한 눈물만 마시면서도


저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무력한 목구멍이 들썩이는 건 분명


당신이 얄미워서가 아니라 그리운 탓일 뿐이니


밤은 위태롭게 흔들려도 계절은 가지런히 흐릅니다.


사랑해요. 내 사랑.


이토록 달콤한 당신을 어찌 입 밖으로 꺼내 보일까요.


때론 당신 생각에 울음마저 사리물고 싶은 그런 밤이 있습니다.


- 부끄러움, 40페이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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